<사회> 학생 따라 예비군 훈련 가는 ‘학습권’ (한성대신문, 599호)

    • 입력 2024-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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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4-04-22 00:00

매년 참여해야 하는 학생예비군

보강 미진행 등 문제 다수 발생

학습권 보장 법령 강제성 높여야



제56주년 예비군의 날이었던 지난 5일, 윤석열 대통령은 축전에서 “학생예비군의 학습권 보장 등 예비군 권익을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여러 대학에서 학생예비군의 학습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예비군은 전쟁 등 국가비상사태 하에서 현역 군부대의 활동에 동원될 목적으로 1968년 창립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예비군은 훈련자의 직업에 따라 ▲동원예비군 ▲향토예비군 ▲지역예비군 ▲대학직장예비군 ▲어민예비군 ▲선박예비군 등으로 편성된다. 병 전역 시 1~4년차까지는 2박 3일간 시행되는 동원훈련을 받아야 하고, 5~6년차까지 연 20시간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라면 동원훈련 대상에서 제외돼 하루 8시간 진행되는 학생예비군 훈련을 받으면 된다.

『예비군법』 제5조에서는 예비군 훈련으로 인한 동원 명령을 받은 사람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명령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당한 사유 없이 동원에 응하지 않거나 훈련 기피 목적으로 거주지를 거짓으로 변경했을 경우 동법 제15조 제4항에 의해 3년 이하의 징역 혹은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예비군 훈련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법령도 존재한다. 『예비군법』 제10조와 제10조의2에서는 피고용인이나 학생이 예비군 훈련을 받을 때, 그 기간을 휴무 또는 결석으로 처리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등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17조의3에서도 예비군 훈련으로 인해 수업에 결석했을 경우 출석으로 인정하고, 수업 관련 자료나 보충 수업을 제공하며 성적 처리 등에 있어 불리한 처우를 하지 않도록 명시하고 있다. 예비군 훈련으로 인해 수업 공백이 발생했을 때 출석 인정 및 학습권 보장을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본지는 일선 교육현장에서 대학생 예비군의 학습권이 어떻게 보장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예비군 훈련에 참여해야 하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학생예비군 학습권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본 설문조사는 4월 8일부터 16일까지 구글폼을 통해 진행됐으며, 250명의 학생예비군 훈련 대상자가 응답을 남겼다. 조사 결과 관련 법령에서 출석 인정을 보장하고 있음에도, 예비군 훈련으로 인해 결석 처리된 사례가 일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비군 훈련 참여로 인해 수업에서 결석 처리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예(4.4%)’, ‘아니요(95.6%)’의 응답이 기록됐다.

뿐만 아니라 결석 시 수업 자료를 제공받지 못하거나, 제공받았음에도 수업 자료가 질적 측면에서 개선이 필요한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예비군 훈련으로 인해 수업에 불참했을 때 수업 관련 자료를 제공받으신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예(58%)’, ‘아니요(42%)’의 응답이 집계됐다. 제공받은 자료가 정규수업의 내용과 차이가 있고 자료만으로는 수업 내용의 전부를 파악할 수 없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화공생명공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심재민 학생은 “강의가 수반돼야 수업 자료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며 “자료가 있어도 강의를 수강한 사람과 아닌 사람은 내용을 이해하는 데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훈련 참여에 따른 학습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보충 수업은 더욱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응답자들은 ‘예비군 훈련으로 인한 결석 이후에 보충 수업을 받으신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예(15.2%)’, ‘아니요(84.8%)’라고 답변을 남겨, 80%가 넘는 응답자가 보충 수업을 제공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강현권(경기과학기술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는 “예비군 훈련 참여로 인해 결석하는 인원이 소수일 경우 교수 입장에서는 기존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로 인해 예비군 훈련에 참여한 다수의 학생들은 강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예비군 훈련으로 인한 결석으로 강의 내용 파악에 난항을 겪으신 경험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예(56%)’, ‘아니요(44%)’의 답변이 기록됐다. 남서울대학교 스포츠비즈니스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원준혁 학생은 “예비군 훈련 참여로 인해 수업에 결석해 진도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이 컸다”며 “제공받은 수업자료만으로는 강의 내용 파악에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 교육현장에서 학생예비군의 학습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원인으로는 학교 자체 규정의 미비함이 꼽힌다. 본지가 수도권 4년제 대학 71개 대학*에 학생예비군 학습권에 관한 규정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전수조사한 결과, 14개 대학(19.7%)은 규정에 학습권 보장이 명시돼 있지 않고 교수의 재량에 맡기고 있었다. 정일동(경북과학대학교 군사행정과) 교수는 “학습권 보장 등의 사항을 교수 재량으로 맡길 경우 교수의 편파적인 조치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예비군법』과 『고등교육법 시행령』의 학습권 보장 관련 조항의 강제성이 부족한 것 또한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예비군법』의 관련 조항은 ‘예비군 훈련을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 등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불리한 처우’라는 표현이 모호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어 구체적으로 학습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구체적인 학습권 보장 방법을 명시하고 있으나 처벌 조항이 없어 강제성이 부족하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서울 소재 대학에서 예비군 훈련으로 인해 수업에 불참했다는 출석 성적을 감점한 사례가 있었으나 경찰은 학교 측에서 불이익 최소화를 위한 공문을 발송했다는 점에서 ‘혐의없음’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강 교수는 “법령은 세부적인 내용을 시행규칙에 명시해 구체적으로 처벌이 이뤄져야 하지만 불이익이라는 표기는 광범위한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예비군 훈련에 참여하는 학생의 편의를 위해 훈련장까지의 교통 여건을 보장하는 ‘예비군 버스’도 운행하지만, 그마저도 운행되지 않거나 편도로 운행되는 등 불편이 발생한다. 실제로 ‘귀하의 학교는 예비군 버스를 운행합니까?’라는 질문에 ‘예(78.5%)’, ‘아니요(21.5%)’의 응답이 기록됐다. ‘예비군 버스의 운영 형태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는 ‘왕복(76%)’, ‘편도(24%)’의 응답이 기록됐다. 심 학생은 “훈련장까지 이동하는 데 드는 택시비 15,000원 가량을 4명이서 분할 결제하면 약 3,700원으로, 예비군 훈련 시 지급되는 교통비 8,000원 내에서 해결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러나 택시비 분할 결제를 위해 4명을 모으기는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예비군 훈련 참여로 인한 결석 시 출석을 인정해주고 보강을 진행하거나 수업 자료를 제공하는 등 학습권 보장을 위한 조치가 학교 규정에도 명확하게 명시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교수의 재량에 의한 조치가 아닌 학칙 등으로 강제해야 학습권 보장을 위한 조치가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규석(군인권센터 기획정책팀) 팀장은 “각 대학에서 학생들을 위한 조치를 학칙으로 제정하고 교수와 근로계약 시에 이를 명기하는 방식으로 실효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수업 자료 제공만으로는 강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에, 보충 수업이 필수로 진행될 수 있도록 대학본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수업자료와 보충 수업의 질적 향상을 위한 조치도 동반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김기환(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예비군 훈련 일정과 대학의 교육 일정을 맞추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며 “불가피하게 어렵다면 수업을 녹화해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예비군에 대한 불이익을 예방하기 위한 법령이 지금보다 강제성을 갖도록 개정돼야 한다는 해결책도 제시된다. 법을 위반해도 처벌 수위가 낮거나 이뤄지지 않아 실질적으로 효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에 법령의 강제성을 제고하고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조언이 뒤따른다. 조 팀장은 “예비군 훈련 참여로 인한 성적 불이익을 불법화하는 등 구체적인 논의가 있어야 현행 제도 보완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대학본부 차원에서 예비군 훈련을 위한 행정 서비스 확대의 필요성도 제시된다. 현재 예비군 버스를 운행하고 있지만 버스를 넘어서 훈련의 편의성을 제고하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 팀장은 “예비군에 대한 관심과 처우개선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수도권 4년제 대학 71개 : 『고등교육법』 제2조에서 규정하는 ‘대학’‧‘교육대학’, 산업‧전문‧원격‧기술대학과 각종학교, 학생예비군 훈련 대상자가 없는 여자대학교를 제외한 범주이며, 이원화 캠퍼스는 본교와 동일한 대학으로 간주하고 분교는 본교와 상이한 대학으로 처리했다.

김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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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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