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기자의 사(史)담> 조선의 테크노크라트 이천 (한성대신문, 555호)

    • 입력 2020-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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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0-04-27 00:05

테크노크라트(Techocrat). 과학적 지식이나 전문적 기술을 소유함으로써 사회 또는 조직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일컬는 말이다. 사·농·공·상이라는 강력한 계급 질서 속 유교를 중시하고 기술을 천시한 조선에도 테크노크라트가 있었다. 그는 바로 이천(1376-1451). 한국 과학사의 황금기를 이끈 인물이다.
이천은 과학과 금속관련 기술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었다. 이를 눈여겨본 세종대왕은 금속활자인 갑인자의 제작을 이천에게 맡겼다. 이천이 만들어낸 갑인자는 기존의 활자보다 훨씬 선명하고 바른 모양의 글자를 인쇄했다. 이는 당대 최고 수준의 기술력이었다.
갑인자의 제작 이후 이천은 세종의 지시로 천문관측기구 제작에 돌입했다. 그는 장영실과 함께 간의와 혼천의 제작에서 핵심적인 인물로 활약했다. 임종태(서울대학교 과학사및과학철학협동과정) 교수는 “이천과 장영실은 혼천의·간의·간의대 제작에참여했다. 장영실은 기계 제작 분야에, 이천은 금속 주조에 두각을 나타냈다”며 “이에따라 역할을 분담했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설명했다.
이천은 기술 개량에 도움이 된다면 당시 조선보다 한 수 아래로 취급했던 여진과 일본의 기술까지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합리적인 면모도 보였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조선은 단련이 어려운 무쇠로 대포를 만들어 어려움을 겪었고, 이때 이천이 여진의 기술을 받아들여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또한 이천은 무인으로서도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세종 때 있었던 대표적인 군사업적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대마도 정벌에서 큰 공을 세워 충청도 병마절도사에 임명됐고, 그의 말년에 이뤄진 여진 정벌에서는 대승을 거뒀다.
특히 「세종실록」에 따르면 이천은 군사분야에서 자신의 기술력을 마음껏 뽐냈다.그는 화포 개량, 선박 개량, 성 건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업무를 수행했다. 임 교수는 “그는 일종의 군사엔지니어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천은 기술자이자 무인으로서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임 교수는 “이천은 유교 경전과 시문을 짓는 능력으로 정부 관료가 되던 시대에 자신의 기술적 능력, 합리적 경영 능력으로 관료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드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기술의 향연이 벌어지는 현대사회에서 테크노크라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조선 초기의 관료사회에서 그는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기술로 활약했다. 그가 남긴 결과물은 ‘조선의 테크노크라트’ 라는 그의 위명을 오늘날까지 밝게 비추고 있다

최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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