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성문학상에는 총 40명의 투고자가 200편이 넘는 작품을 투고하였다. 규모로 보면 예전에 비해 다소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학생이 시를 쓰고 읽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가 대중들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데,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한편으로 뿌듯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도 아쉬움이 없는 것은...
식탁 위에 며칠이나 놓여 있던 바나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껍질까지 까맣게 변해갔습니다. 이대로 더 놔두면 너무 물러지고 썩어서 버려야 할 것 같은데 가족들은 아무도 그 바나나를 먹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도 그랬습니다. 이미 너무 볼품없는 모습이 돼버려서 별로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냥 버리기에도 아깝고 그렇다고...
[삽화 : 김한나(패션3)] 방치 김도경 바나나를 주웠다 생각보다 노랗지 않았다 검었던 것 같다 껍질을 찢고 안을 들여다봤을 때 너무 오래 방치된 것은 그렇다고 달궈진 팬 위에서 잊혀갔던 토스트의 새까만 살을 씹다가 네가 말했다 그날 무식하게 겉면을 태운 슬픔이 긁어낼 가위도 없이...
아홉 편의 응모작 중 「가족」, 「친구」라는 범주를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 작품들이 유독 많았습니다. 지난 2~3년간 우리의 삶을 지배하다시피 했던 전염병의 긴 터널을 지나 온 여파도 있을 것입니다. 소설은 삶을 반영한다는 평범하고도 변함없는 원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심사 기간은 작가 지망생들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군대에서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자유롭게 사회로 나갈 수 없다는 답답함이 소설 쓰기에 힘을 실어 주었다. 평소 문학을 좋아했지만, 그 마음은 독자로서의 경계선 안에 머물렀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뭉근하게 차오른다. 때마침 국방부에서 간부와 용사를 대상으로 병영문학상을 개최한다는 포스터를 접할 수 있었고,...
월세구하기 김남수 이른 아침 햇빛들이 동네 구석구석 한자리씩 차지한다. 그런데 빽빽이 메워진 빛이 닿지 않는 곳에 편의점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맞은편 아파트가 암막 커튼처럼 빛을 막아서고 있다. 허름한 상가에 홀로 번쩍번쩍 간판 불빛을 자랑한다. 편의점과 상가 건물은 마치 봉제 인형과 로봇을 억지로 합체시켜 만든 듯한...
[삽화 : 이수린(ICT 2)] 아이보리 최현아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환승길 풀내에 이끌려 따라간 작은 꽃집 노란 꽃 파란 꽃 널린 깡통 사이 희미한 튤립 한 송이가 말을 걸어온다 혼잣말처럼 들릴 듯 말 듯 이름없이 죽어가는게 슬프다고 나는 우울한 꽃을 집어올려 계산대에 얹고 삼천원을...
최현아(ICT 4) 제 시가 가작으로 선정되었다는 메일을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기쁨은 약이 되기도 하네요. 아픈 몸으로 아르바이트를 겨우 마치고 돌아와 타이레놀 한 알을 먹고 약발이 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내용을 자꾸 다시 확인하다보니 어느새 아픈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사실 중고등학교...
조윤식(서양화5) 제가 쓴 시로 처음 수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선물과도 같은 이 경험에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시를 쓴지는 2년 정도 되어갑니다.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죠. 그전에는 시를 쓴다는 게 다소 부담스럽기도 하고 어려워서 쉽게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남들에게 딱히 하고 싶은 말도...
심사를 위해 투고된 시를 읽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심사였습니다. 좋은 작품이 많아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나라는 즐거운 고민을 하고 싶었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좋은 작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에 대한 자의식이 없이, 시를 쓰겠다는 노력과 언어에 대한 자의식이 없이 단순한 상념의 나열에 그친 시가 많았습니다. 일기장에 적어 놓은 단상들은...
김성달(한국소설가협회) 소설가 36회째를 맞고 있는 한성문학상 현상공모전의 소설 부문 응모작들은 전반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이른 작품이었다. 「어린 양」은 곳곳에 날카로운 표현이 있고 비판 정신이 살아있으나, 사건의 얼개가 미숙하여 균형을 잃은 점, 형상화의 객관성을 얻기 위한 창작의 개념이 아직 부족한 글이라...
김연정(인문 4) 어릴 적부터 국어라는 과목이 이유 없이 좋았고, 문학에 관심이 갔습니다. 그렇다고 뚜렷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백일장 상을 탄 적이 있는데 그때 잠깐 마음이 들떴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이라는 생각이 가득할 때였지요. 이후 글과 관련된 동아리를 하며, 글 관련 상을 자주 받곤...
[삽화 : 이다혜(ICT 4)] 새 신발 김연정 둥 둥 둥. 나는 잔뜩 부은 눈을 차마 뜨지 못하고, 오른쪽 팔만 간신히 이불 밖으로 내밀어 소리의 원흉을 찾았다. 손바닥으로 애꿎은 바닥만 두어 번 치고 나서야 스마트폰을 잡을 수 있었다. 아이씨... 나는 분명 지금 처음 들었는데 벌써 세 번째 알람이 울리고 있었다. 세 번째...
[삽화 : 이수린(ICT 2)] 월식 조윤식 둥그런 보름달이 차오른 듯 가로등 불빛이 비친 동공을 보았다 여름비가 뒤늦게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 그런 밤이었다 하얀색의 기다란 지팡이는 쏟아지는 빗소리와 같은 소리를 내며 조금씩 앞으로 전진했다 다만 내 귓속엔 내가 걸어가는 발자국 여러 개만 울려...
하수구에 애인이 흘러들어갔다 김태은 애인이 하수구에 떠내려갔다. 졸졸졸 소리를 내며 흘러들어갔다. 아, 왠지 오늘따라 운수가 좋았었다. 출근길에 만 원짜리를 줍질 않나, 아침 지옥철에 타니 다음 정거장에서 바로 앞자리가 비질 않나, 내친김에 사원증을 찍기 전 편의점에서 즉석복권을 긁었고 이만 원이 됐다. 우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