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학송> 스러져 간 그들을 위해 (한성대신문, 556호)

    • 입력 2020-05-2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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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0-05-25 00:37

착하고, 성실하고, 하고픈 것 많던 스물넷의 청년은 2018년 12월, 끝내 그 꽃을 못 다 피우고 스러졌다. 우리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떠난 그의 이름을 딴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4달.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김용균’을 위한 자리가 없다.

사고 위험이 높은 일을 하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은 개정 전 ‘고용주가 직접 고용하지 않은 노동자의 사고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허점을 가지고 있었다. 원청업체는 책임질 필요가 없으니 위험을 외주화했고, 노동자의 처우와 근무환경은 물 보듯 뻔했다. 2인 1조로 근무해야 하는 매뉴얼은 만성적 인력 부족을 근거로 지켜지지 않았고, 노동자에게는 사고 위험도가 높은 업무가 주어졌다.

개정된 법안에서는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기 위해 도급(일정 기간에 끝내야 할 일을 도거리로 맡거나 맡김)을 제한하고, 도급인의 산업재해(이하 산재) 예방조치 의무를 확대시켰다. 또 안전 조치를 위반한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하고 법의 보호 대상을 ‘근로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시켰다.

하지만 지난달 발생한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고에서 38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정확히 12년 전, 이곳 이천의 한 냉동창고에서도 화재사고가 발생해 4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12년이 흘렀지만 죽음의 양상은 변하지 않았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노동자 사망사고’를 검색해보자. 당장 오늘, 어제, 그저께, 지난주에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 산재사고의 민낯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김용균법은 시행되기 전부터 여전히 허점이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발전소 시설관리 등 위험작업은 여전히 도급이 가능했다. 건설기계 장비에 대한 원청업체의 책임 조항에는 굴착기·크레인·덤프트럭 등 사고 다발 위험이 높은 장비가 제외됐다. 또한 원청업체에 대한 형사처벌 하한선이 마련되지 않았으며,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는 안전 관리자 선임의무 적용에서 제외됐다. 위험이 외주화 될 가능성이 아직 다분하다.

노동자들은 노동시장의 기반으로서 대한민국의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 그리고 열악한 처우다. 정규직 전환은 힘들고 받아줄 곳도 많지 않으니, 힘겨운 환경에서도 그저 열심히 일한다. 언젠가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일터로 몸을 이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 한 해 1,000명의 산재사고 사망자 수를 절반 이하로 줄이는 것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올해는 산재사고 사망자 수를 작년보다 15.2% 적은 725명 이하로 대폭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국가는 편익 계산 없이 노동자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주체다. 더 많은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서 노동자를 위한 버팀목이 돼야 한다.

우리 또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라는 악재 속에서 이들의 죽음을 묵시하지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의 안타까운 죽음이 다른 정보에 묻혀, 세상에 알려지지 못한 것은 아닌가 살펴봐야 한다. 먼저 스러져 간 그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장선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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