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묻고 현장이 답하다> 15cm에 가로막힌 하루 (한성대신문, 558호)

    • 입력 2020-08-3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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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0-08-31 20:44

<편집자주>

나 말고 다른 사람. 그의 문제를 알기 위해서는 그에게 묻는 것보다 그가 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지 않던가. 종이에 적힌 자료보다 한 번의 경험이 더욱 현실적이다. 나를 그로 바꾸기 위해 신문사 밖으로 향한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생생한 문제를 발견하기 위해.

첫 시작은 신체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함이다. 학교로 향하는 순간부터 집에 돌아오기까지. 짧은 계단, 식당의 작은 문턱, 길 위의 돌부리 하나가 그를 가로막는다. 신체장애인의 심정을 헤아리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등굣길과 하굣길, 교정, 카페 등 우리가 자주 가는 장소를 다녀보았다.

김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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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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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가는 길

1호선 회룡역 옆 버스정류장에서 등교를 시작한다. 휠체어를 펴고 앉는다. 평소였다면 뛰어 올라갔을 계단을 뒤로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잠시 뒤 내려온 엘리베이터 칸. 휠체어가 겨우 들어간다. 긴 복도를 지나 또 엘리베이터를 만난다. 아직 엘리베이터 2개를 타야 승강장에 도착할 수 있다. 회룡역 승강장까지는 20분 이상 걸린다. 걸어서 가면 5분이다.

승강장에 들어와 노선 표지판을 본다. 창동역에서 환승을 해야 4호선을 탈 수 있다. 한성대입구역까지는 12개 정거장을 지난다. 평소라면 도착한 위치에 타거나, 환승에 유리한 칸으로 간다. 하지만 휠체어에 탄 채로 지하철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각 객차 끝에 있는 출입구로 가야한다.

역 안에 전동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스크린도어가 열린다. 전동차를 향해 휠체어 바퀴를 힘껏 굴린다. 그 순간. 단차 사이에 바퀴가 걸린다. 식은땀이 난다. 같이 간 기자가 뒤에서 밀어준 덕분에 단차 사이를 지난다.

전동차 안에 휠체어 전용공간이 보인다. 휠체어를 뒤로 밀어서 세웠다. 그런데 휠체어를 고정하는 벨트나 장치가 보이지 않는다. 전동차가 흔들릴 때마다 휠체어가 뒤로 밀려난다. 한 손은 손잡이를 다른 손은 바퀴를 잡는다. 손에 땀이 흥건하다.

몇 정거장 지나치고 나니 처음 들어올 때는 느껴지지 않았던 시선이 느껴진다. 승강장 문이 열릴 때마다 휠체어를 쳐다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 내려다보는 시선이다.

창동역으로 열차가 진입한다. 손에 다시 힘을 준다. 승강장에 내려 주변을 살펴본다. 엘리베이터가 보이지 않는다. 휠체어를 끌고 돌아다니지만 환승을 할 수 있는 통로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다시 1호선에 탑승한다. 다음 환승이 가능한 곳은 동대문역이다. 12개 정거장을 다시 지나야 한다. 평소보다 7정거장을 더 가야 등교를 할 수 있는 셈이다.

캠퍼스에 들어서서

캠퍼스에서 휠체어를 타기 전, 먼저 장애학생지원센터에 연락한다. 교내 장애학생지원센터는 몸이 불편한 학생을 위해 장애학생보조기구를 대여해 준다. 전동휠체어, 휠체어용트레이 등 각종 장애학생보조기구가 있다. 전동휠체어를 빌리기로 하고 신원과 대여 목적 등을 밝힌다.

휠체어 전원을 켜고, 학교 정문에 들어선다. 일단 학교 홈페이지에 있는 장애인 보행 동선도를 찾는다. 동선도에는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길이 표시돼 있다. 우선 공학관에 가보기로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연구관으로 향한다.

창의관 앞을 지나 연구관에 들어선다. 엘리베이터 입구 넓이가 전동휠체어의 폭과 딱 맞는다. 정확하게 맞춰서 들어가야 부딪히지 않는다. 위층에 도착한다. 이번엔 후진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나가야 한다. 조종이 서툴러 입구에 한 번 부딪힌다.

연구관 뒤로 나오니 공학관으로 가는 경사로가 있다. 공학관으로 올라가는 인도에는 턱이 있기 때문에 차도로 갈 수 밖에 없다. 지선관 뒤쪽에서 후진하는 트럭이 갑자기 다가온다. 부딪힐 뻔했지만 가까스로 피한다. 위를 보니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전동휠체어로 올라갈 수는 있지만 위험해 보인다. 결국 왔던 길로 돌아간다.

공학관을 포기하고 탐구관을 지나 상상관으로 향한다. 동선도를 보니 진리관 가운데를 통과하는 길이 눈에 띈다. 그런데 진리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난데없이 큰 턱이 보인다. 동선도를 다시 보니 빨갛게 보행로라고 표시돼 있다. 방향을 바꿔 우촌관과 진리관 사이로 빠져나온다. 완만해서 잘 빠져나올 수 있다. 하지만 동선도에는 그곳에 아무 표시도 없다.

창의관에서 시작해 공학관과 탐구관을 거쳐 우촌관, 미래관까지 교내를 다 돌아본다. 4시에 출발하고 학교 한 바퀴를 돌아 정문에 와서 시간을 보니 5시다. 평소 교내를 걸으면 20분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커피가 나오기까지

학교를 다 돌고 나와서 근처 카페를 찾는다. 중문 아래 사거리를 지나니 평소 자주 가는 카페가 보인다. 하지만 가게 입구에는 15cm 남짓의 턱이 있다. 넘어갈 수 없다. 카페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가게에 턱이 보인다. 결국 포기하고 한성대입구역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카페를 찾는다. 보이는 곳마다 입구에 문턱이 있다.

학교 앞에서 골목을 구석구석 훑지만 문턱이 없는 카페가 보이지 않는다. 한성대입구역 3번 출구 앞까지 내려왔다. 카페를 찾아 나선지 40분이 흐르고 나서야 겨우 하나가 보인다. 입구가 경사로로 돼있다.

휠체어를 밀어 경사로를 올라가니 난관에 봉착한다. 문을 열 수가 없다. 자동문이 아니라 손으로 열어야 하는 미닫이 유리문이다. 경사로에 멈춰서 문을 열려면 한 손은 휠체어 바퀴를 잡고 다른 손으로 문을 밀어야 한다. 점점 힘에 부친다. 휠체어가 뒤로 밀려나기 시작한다. 먼저 들어가던 손님이 문을 열어준다. 혼자서 열려고 했다면 절대 열리지 않았을 문이다. 더운 날씨에 등에는 땀이 나고, 손도 부들거린다.

카페에 들어서자 실내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으로 가득하다. 다행히 테이블 간격이 넓어서 휠체어를 끌고도 카페 안으로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 카운터에 주문을 하고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는다. 휠체어에 앉아 자리를 잡기 위해 자리에 있는 의자도 옆으로 옮긴다.

진동벨이 울리고 커피를 가지러 카운터 앞으로 간다. 혹시나 테이블에 부딪힐까 조심해서 휠체어를 민다. 커피를 받으려고 손을 뻗는다. 한 손에 커피잔을 들고 다른 손으로 휠체어 바퀴를 굴린다. 휠체어는 헛돌기만 하고 앞으로 나갈 기미가 없다. 결국 다른 기자가 커피를 옮겨준다. 만약 다른 기자를 대동하지 않고 카페에 들어갔다면 주위에 있는 손님이나 종업원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을 것이다.

다시 집으로가는

집을 가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선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해 버튼을 누른다. 좁은 면적에 휠체어를 끼우고 아래로 내려간다.

한성대입구역에서 교통카드를 찍고 휠체어가 들어가는 문을 몸으로 밀어낸다. 휠체어 통로에 있는 문이 자동으로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니 승강장의 모습이 보인다.

아침에 휠체어 바퀴가 단차에 빠졌던 것이 생각난다. 승강장 문에는 휠체어용 안전발판이 있다는 내용과 역무실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연락했더니 5분 쯤 지나 사회복무요원 두 명이 나타난다. 열차가 오자 출입문에 안전발판을 설치하고 휠체어를 밀어준다. 발판 덕분에 실수 없이 출입문을 건넌다.

다시 동대문역에 도착한다. 1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이동하던 중 마주친 계단 앞에서 휠체어를 멈춘다. 고개를 돌리니 수직형 휠체어리프트가 보인다. 리프트에는 낯선 무전기 모양의 기계와 두 개의 버튼이 있다.

설명서대로 문이 열리는 모양의 버튼을 세게 누르자 알림음이 나온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잠시 후 역무원이 소리를 듣고 다가온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사회복무요원이 와서 열어줄 겁니다.” 설명서에는 혼자 쓸 수 있을 것처럼 적혀있지만, 도와줄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몇 분 뒤 사회복무요원이 와서 열쇠로 문을 열어준다. 승강기 안에는 상승, 하강, 닫힘, 열림 버튼이 있다. 상승 버튼을 계속 눌러야 올라갈 수 있다. 위에 도착하자 아래층에서 봤던 사회복무요원의 모습이 보인다. 그가 다시 열쇠로 문을 연다. 닫힘, 열림 버튼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1호선 17개 정거장을 지나 드디어 회룡역에 진입한다. 다시 엘리베이터 3개를 지나 출발했던 버스정류장 앞에서 휠체어를 접는다. 한성대입구역에서 회룡역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55분. 평소였다면 버스를 타고 이미 집에 도착했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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