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화정> 너무 많은 자유는 또 다른 구속일까? (한성대신문, 559호)

    • 입력 2020-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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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0-09-20 13:36

‘감정대리인’, 최근 발표된 트렌드 중 하나로, 말 그대로 자신의 감정을 대리인에게 맡긴다는 뜻이다.* 무엇이든 네 이버지식인에 묻고, 지식인을 진짜 사람으로 착각하는 시대, 정보의 과잉과 가짜 뉴스 속에서 결정 장애를 겪고 있 는 시대, 이제 인간은 원초적 본성인 감정조차도 타인에게서 얻고자 하는 것일까?

“신은 죽었다.” 니체의 선언 이후 인간은 제한된 육지의 삶을 벗어나 망망 대해를 즐길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는 폭풍우로 죽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게 했지만,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수평선 너머를 보고 싶어 하는 인간의 호기심은 항해를 포기하지 않게 했다.

신이 정해준 대로가 아닌 각자가 삶의 주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달콤했다. 영리한 인간은 폭풍을 통제하고 필요시 적절한 정도의 햇살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 다른 이의 햇살을 가리거나 나의 폭풍이 누군가를 헤치지 않는 한 서로의 항해 방식에 왈가왈부하지 않을 제도를 구축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과 자살은 늘고 있고, 분노와 폭력을 주체하지 못해 ‘자유’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한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인 빅터 프랭클 박사는 현대인의 우울증과 자살, 분노의 원인을 ‘의미의 상실’에서 찾는다. 이런 병적 증상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라는 것이다.

두 세 살만 되도 스스로 운동화 끈을 매겠다고 우길 정도로 행위에 대한 결정권은 인간의 삶을 추동하는 힘이다. 자기감정의 주인이기를 포기한 사람들, 이들이 삶의 추동력을 포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인간은 애초에 완전한 자유를 감당할 힘이 없는 존재였을까? 폭풍을 견디고 통제하며 더 많은 햇살을 받기 위해 자신이 만든 세상, 그 속에 갇힌 것일까?

* 김난도 교수는 이들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는 감정대리인이다. 이들은 연애 리얼 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대리 연애 감정을 느끼거나 명품을 시청하는 행위로 소비를 대신하는 유형이다. 둘째는 감정대변인 유형이다. 이들은 리액션을 대신하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을 즐기고 뉴스를 읽을 때도 댓글을 먼저 읽는 유형이다. 셋째는 감정 코칭 및 감성 큐레이션 유형이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에 맞추어주기를 희망하는 유형이다.

나은미(상상력교양대학 기초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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