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기자와 떠나는 문화여행> 정상을 향한 질투의 시선 (한성대신문, 565호)

    • 입력 2021-03-22 00:04
    • |
    • 수정 2021-03-22 00:18

<편집자주>

요즘 넷플릭스나 왓챠 같은 OTT 서비스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는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똑같은 생각을 갖지 않는다. 작품의 온전한 의미는 보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해석은 여러분의 몫이다. 나만의 해석을 찾기 위해, 문화 여행을 떠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경쟁을 경험한다. 스스로의 발전과 성장을 기대하기 때문에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 만약 경쟁의 중심에 질투가 있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그리고 경쟁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타인의 몰락이라면, 그 끝은 어떤 모습일까? 두 번째 여행지는 질투로 얼룩진 경쟁이 가득한 세상이다.

신혜림 기자

[email protected]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공식 포스터

여자 세 명이 건물로 들어간다. 나란히 붙어있는 두 개의 엘리베이터에는 LOW ZONE과 HIGH ZONE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LOW ZONE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선 두 여자는 HIGH ZONE으로 향하는 여자를 향해 허리 숙여 공손한 인사를 건넨다. HIGH ZONE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여자는 당연한 듯 인사를 받으며 자리를 떠난다.

천상의 세계

여자들이 들어간 건물은 헤라펠리스라는 초호화 아파트다. 주민들은 성공한 성악가, 부동산으로 많은 재산을 축적한 CEO, 재단 이사장, 지역구 국회의원 등 모두 재력, 권력,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다. 입주 승인을 받거나 거액의 기부금을 내는 등의 입주 절차가 정해져 있다. 논란이 되는 입주민이 들어오면, 입주자들이 투표를 통해 입주 허가를 철회할 수도 있다.

헤라펠리스에 사는 아이는 명문 고등학교에 다닌다. 고등학교 안에서도 헤라펠리스에 거주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으로 무리가 나뉜다. 심지어 헤라펠리스 입주자를 위한 대학입시 특별반이 존재한다.

엄청난 권력과 재력을 겸비한 사람들이 모여 살며 특권을 누리는 호화로운 건축물. 헤라펠리스는 ‘헤라의 성’이라는 이름에 맞게 신들이 사는 천상의 세계처럼 보인다.

▲헤라펠리스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

신들의 여왕

한 여자가 화려한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여자는 핸드백에서 카드키를 꺼낸다. 카드를 찍은 여자는 100층 버튼을 누른다. 여자가 탄 엘리베이터는 곧장 헤라펠리스의 꼭대기 층, 펜트하우스로 향한다. 헤라펠리스의 가장 위에 사는 여자는 입주민 사이에서 ‘퀸’으로 여겨진다.

퀸은 왜 존재할까? 현대사회가 갖고 있는 모든 물적 가치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 최고를 가릴 필요가 있을까? 퀸은 이름만 있을 뿐, 실제 여왕처럼 다른 입주민을 부리거나 구속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입주민들은 퀸이 되길 소망하거나, 퀸을 경외한다. 더 재밌는 건 입주자들이 최고만 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우열을 가린다는 점이다.

헤라펠리스에는 서로의 서열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많다. 건물 안에는 LOW ZONE과 HIGH ZONE, 100층 펜트하우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가 따로 존재한다. 입주민 전용 엘리베이터와 메이드용 엘리베이터도 구분돼 있다. 특정 층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카드키도 필요하다.

헤라펠리스 입주민의 모습은 ‘강약약강’이라는 말이 아주 잘 어울린다. 자신보다 높은 층에 사는 사람에게는 굽신거리면서, 아래층에 사는 사람을 깔본다. 하찮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헤라펠리스에 입주하려고 하자, 강하게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신이란 결점이 없는 존재다. 신이 서로 우열을 가리는 건 허무한 일이다. 그럼에도 헤라펠리스의 신들은 가지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조금이라도 더 우수한 존재가 되려고 노력한다. 사회의 경쟁에서 승리해 천상의 세계에 도착했음에도 왜 경쟁을 멈추지 않을까? 경쟁이 계속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광기에 사로잡혀 피아노를 치고 있는 여자

질투의 화신

HIGH ZONE으로 향한 여자가 입주민 모임을 열었다. 입주민 사이에서 주인공이 될 자신을 기대하는 여자. 하필 퀸이 여자가 준비한 디저트와 똑같은 디저트를 선물로 들고 나타났다.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퀸이 선물한 디저트를 극찬한다. 그 모습을 본 여자는 자신의 디저트를 싱크대에 던져버린다.

질투는 남을 부러워하는 감정, 또는 그 감정이 고양된 격렬한 증오나 적의를 말한다. 개인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잃게 될 수 있다는 우려나 두려움, 혹은 불안이 질투를 만든다. 여자는 85층에 사는 모습을 뽐내며, 잘 나가는 자신의 근황을 자랑하고 싶었다. 여자는 퀸에게 파티를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 혹은 이미 빼앗겼다는 생각에 증오를 느낀다.

빼앗긴 것을 되찾아오기 위해 하는 투쟁. 헤라펠리스의 주민들이 경쟁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사회에서 했던 경쟁에 관성이 붙어 헤라펠리스 안까지 침투한 것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헤라펠리스에서 벌어지는 경쟁의 중심에 질투가 있다는 사실이다.

괴물이 된 젤로스

헤라펠리스의 경쟁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경쟁의 모습과 다르다. 여기엔 선의가 없다. 나에게는 없고 다른 이에게 있는 것을 채우고자 하는 것이 질투의 본질이다. 질투의 경쟁에 들어선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타인의 것을 빼앗고, 타인을 깎아내리는데 최선을 다한다.

헤라펠리스의 주민들은 능력, 권력, 재력, 명예 등 모든 경쟁의 조건을 풍족하게 갖고 있다. 현대사회의 모든 특권이 모여 있다는 환경과 질투라는 이유가 만나서 일으키는 화학작용은 경악스러운 결과로 드라마에 나타난다.

질투에 사로잡힌 여자는 점점 변해간다. 퀸의 자리를 갖기 위해 퀸의 남편을 유혹하겠다는 극단적인 수를 생각한다. 자신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계속해서 비윤리적인 행동과 떳떳하지 못한 선택을 합리화한다. 경쟁의 선의와 가치를 잊은 채 빈자리만을 채우려고 발버둥치는 괴물의 모습이다.

괴물은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파괴한다. 주민들은 모든 일이 끝나고 어떤 풍경을 보게 될까? 정상에 도착하더라도 앞에 펼쳐진 광경이 아름답지는 않을 것이다.

댓글 [ 0 ]
댓글 서비스는 로그인 이후 사용가능합니다.
댓글등록
취소
  • 최신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