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여전히 그늘진 대학 내 육체노동자의 삶 (한성대신문, 569호)

    • 입력 2021-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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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1-11-15 00:27

지난 6월 26일, 청소노동자 A씨가 서울대학교 관악학생생활관 휴게실에서 숨을 거뒀다. 당일 서울 최고 기온은 34.6°C였다.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의 열악한 처우가 연일 언론에 보도됨에 따라 대학 내 육체노동자의 처우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처우 개선을 촉구하는 분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됐지만 개선은 여전히 미비한 실정이다. 이토록 오랜 기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며, 나아가 근본적 해결이 가능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대학 내 육체노동자의 처우 중 가장 큰 문제는 ‘열악한 휴게시설’로 꼽힌다. 육체노동자의 휴게시설은 대부분 지하실, 주차장, 계단 아래에 위치해 있다. 실제로 2018년 8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가 서울 소재 14개 대학 및 3개의 빌딩에서 근무하는 청소노동자의 휴게시설을 조사한 결과, 건물 202곳 중 55곳이 지하에, 50곳이 계단 밑에 설치돼 있었다. 휴게시설이 지하 또는 계단 밑에 위치하면 통풍이 어렵고 소음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경비노동자가 근무하는 87곳 중에는 그 어느 곳도 근무공간과 휴식공간이 별도 분리되지 않았다. 이 경우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휴식권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5평 남짓한 공간, 에어컨 배기관까지 설치된 모 대학교의 청소노동자 휴게실

육체노동자의 ‘높은 업무강도’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고용 인원이 업무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육체노동자 한 명이 방대한 업무를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현(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대표는 “이번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에서 대학은 정원 200명이 넘는 기숙사 한 동을 1명에게 맡겼다. 노동강도가 비인간적”이라고 지적했다. 근무계약서에 명시된 출근시간보다 더 일찍 출근하거나 초과 근무를 하는 청소노동자가 빈번히 발생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추가수당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경비노동자 또한, ‘건물 주변을 청소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청소와 경비 근무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문제는 대학의 ‘고용 방식’에서 기인한다. 대학이 육체노동자를 고용하는 방식은 직접 고용과 간접 고용으로 나뉜다. 직접 고용은 대학이 노동자를 대학 내 직원으로 채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경우 안정적인 근무환경과 정년이 보장된다. 또한 노동자들은 대학과의 소통에서 상당부분 자율성을 가질 수 있다. 반면, 간접 고용은 대학이 용역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노동자를 고용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대학이 용역업체에 하청을 주면 용역업체가 고용한 노동자들이 원청인 대학에서 근무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대학이 간접 고용 방식을 채택한다.

간접 고용 방식에선 노동자들이 휴게시설 개선 등의 요구사항을 용역업체에 전달하더라도 곧바로 해결이 불가하다. 실제로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곳은 원청인 대학이기 때문에 용역업체에서는 정책과 사업 방향을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원청의 허가 없이는 하청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많지 않다.

조혁진(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육체노동자가 간접 고용될 경우 노동자가 근무 중 개선·요구사항이 발생하더라도 대학 측에 직접적으로 요청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강도연(한국산업노동학회) 간사는 “간접 고용 방식은 대학이 근로자 관리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대학이 관리나 부담을 덜려는 방편으로 간접 고용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다.

대학뿐만 아니라 많은 사업장이 육체노동자의 처우를 묵시하자 고용노동부는 2018년 ‘사업장 휴게시설·운영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는 나타나지 않는 실정이다. 조 부연구위원은 “이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에 법적 강제성이 없어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직접 고용 방식을 도입한다 해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학교가 2018년 3월 청소노동자 760명을 직접 고용 방식으로 전환했으나, 이번 서울대학교 관악학생생활관 사례에서 보듯 정년이나 처우는 개선되지 않았다. 직접 고용된 육체노동자 중에서도 6개월 혹은 1년마다 재계약해야 하는 노동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육체노동자의 충분한 인력 배치가 해결돼야 실질적 처우 개선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강 간사는 “많은 대학 내 육체노동자는 고연령이다. 담당구역에 인원을 충분히 배치하거나, 노동 시간을 줄이는 방법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학이 육체노동자에게 부족한 인력으로 넓은 공간을 청소·경비하도록 방임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일부 전문가는 대학 내 육체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대학 기본역량 진단 평가 항목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강 간사는 “육체노동자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대학 기본역량 진단 평가 항목에 추가로 개설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학내 구성원의 인식 개선도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대학 내 청소·경비노동자가 하루라도 학교에 없다면, 깨끗한 시설과 안전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없다. 조 부연구위원은 “육체노동자들이 대학에서 사라지면 학내 구성원들의 불편이 즉각 가시화될 것”이라며, “대학 내 육체노동자는 필수인력이다. 학내 구성원의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과 교육·연구는 육체노동자의 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전했다.

조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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