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한성문학상 - 시 부문 심사평> "시를 쓰는 것은 시적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표현을 찾는 것"

    • 입력 2021-12-06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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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1-12-06 01:32

심사를 위해 투고된 시를 읽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심사였습니다. 좋은 작품이 많아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나’라는 즐거운 고민을 하고 싶었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좋은 작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에 대한 자의식이 없이, 시를 쓰겠다는 노력과 언어에 대한 자의식이 없이 단순한 상념의 나열에 그친 시가 많았습니다. 일기장에 적어 놓은 단상들은 시적 소재가 될 수는 있지만, 그것 자체가 시가 되지는 않습니다.

당신의 이별은 당신의 이별일 뿐이고, 당신의 사랑은 당신의 사랑일 뿐입니다. 이별이나 사랑 같은 보편적 주제는 말 그대로 보편적이어야 합니다. 독자가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독자가 읽고 공감할 수 있을까 싶은 시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계절과 관련한 시도 유난히 많았는데, 겨울에 눈이 오고, 여름에 장맛비가 내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그것이 다른 것과 연결되어 또 다른 상상력을 보여준다면 다른 문제이겠으나, 오롯이 오고가는 계절에 충실합니다. 시는 늘 있는 것을 새롭게 보는 맛이 있어야 합니다. 시적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표현을 찾는 것이 시를 쓰는 사람의 일이지요.

투고자 중에는 시가 아니라, 글을 참 잘 쓰는 투고자도 있었습니다. 잘 쓴 산문에 행과 연을 구분해 놓은 것들이지요. 좋은 글이었지만, ‘시를 쓰는 훈련이 좀 되었다면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들이 었습니다.

투고작 중에서 「월식」, 「아이보리」, 「스노우맨」, 「대나무」, 「종국」 다섯 편의 시를 1차로 고르고, 고민 끝에 「월식」과 「아이보리」 2편을 가작으로 선합니다. 「월식」은 시각적인 이미지조차 소리로 확인할 수밖에 없는 시각장 애인의 눈동자를 포착한 시적 안목과 밀고 나가는 힘이 괜찮아 보였습니다. 「아이보리」는 슬픔이나 외로움을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는, 잔잔한 목소리가 듣기 좋았습니다. 「스노우맨」은 참신한 발상이라는 점에서, 「종국」은 반짝이는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좋았지만, 다소 산문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대나무」는 깔끔한 한편의 소품이었지만, 당선작으로 뽑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당선자들에게는 축하를, 다른 투고자 모두에게 건필을 기원합니다.

강호정(크리에이티브인문학부, 시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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