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득과 독 사이, ‘가상화폐’ (한성대신문, 575호)

    • 입력 2022-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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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2-03-06 22:47

‘빚투족’, ‘영끌족’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 빚투는 ‘빚을 내서라도 투자한다’, 영끌은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한다’는 의미로 통용되며 흔히 투자에 빠져 가진 자산에 비해 과도한 투자를 하는 사람들을 ‘빚투족’, ‘영끌족’이라 일컫는다. 가상화폐란 실물 없이 전자적 형태로 사용되는 디지털 화폐 또는 전자화폐를 말하며,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큰 자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가상화폐는 투자 시장의 큰 축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MZ세대에서 단타성 가상화폐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 단타성 가상화폐 투자는 위험성을 감수하고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벌기 위해 투자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2021년 발표한「MZ세대의 특징과 금융산업에의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가 가상화폐 등 고위험 가상 자산에 공격적인 투자 성향을 보인다. 2020년 기준 MZ세대가 보유한 가상화폐 계좌는 233만 6,000개로 전체 가상화폐 계좌 511만 4,000개 중 45.7%다. MZ세대의 투자 금액도 다른 연령층보다 현저히 높아졌다. 해당 보고서에 의하면 2020년도 대비 2021년도의 40대 이상 가상 화폐 투자 금액은 약 50% 늘어났는데, 동기간 MZ세대가 투자한 금액은 1년 사이 98% 급증했다.

젊은 세대의 가상화폐 투자 비중이 늘어나면서 청년층의 대출도 증가하는 모양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2021년 발표한 「국내 가계부채 리스크 현황과 선제적 관리 방안」 보고서를 보면 새로 가계대출을 받은 신규 대출자 가운데 30대 이하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49.5%, 2018년 51.9%, 2019년 56.4%, 2020년 3분기 58.4%로 꾸준히 증가했다. 김영재(부산대학교 경제학 부) 교수는 “청년층의 투자 열풍은 20대의 대출 증가로 이어져 경제적 양극화 심화, 황금 제일주의 등 한국 사회의 취약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청년층의 대출이 증가하면서 청년 신용공여 채무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을 통해 발표된 신용공여 잔액 자료에 따르면, 20대의 신용공여 채무자 수가 3년간 4,100명에서 1만 922명으로 약 2.6배 증가했다. 신용공여란 대출, 지급보증, 자금지원 성격의 유가 증권 매입 등 금융거래에서 타인에게 재산을 빌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김종두(서원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큰 금액의 투자가 큰 수익을 가져 온다는 생각으로 투자한 청년들이 최근 하락장에서 손실을 겪어오면서 청년층의 대출 증가와 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젊은 세대에서 가상화폐 투자 열풍이 불게 된 이유는 가상화폐 투자가 공정한 수익 창출의 방법이라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MZ세대의 특징과 금융산업에의 시사점」보고서 속 ‘투자에 대한 MZ세대의 시각’ 분석 결과, 가상화폐는 ‘사회적 배경 없이 동일한 투자 조건과 위험성을 가진다’는 이유로 공정하다고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인식에 대해 김종두 교수는 “가상화폐 시장이 공정하다고 말하는 것은 개인들을 유혹하는 미끼이며 허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근로소득만으로 노후자금을 마련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회 구조도 청년이 가상화폐 투자에 관심을 쏟는 원인이다.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의 2021년 「KB주택가격동향」에 의하면 3분위 가구 및 3분위 주택 가격 기준으로 중위 소득 가구가 서울 중간 가격의 집을 사기 위해서는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평균 17.6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익과 적금만으로는 주택을 구입하고 노후자금을 충분히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가상화폐 선택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분석이 뒤따르는 이유다. 김종두 교수는 “결혼이나 연 애조차도 힘든 상황으로 내몰린 청년 세대가 내 집 마련을 위해 가상화폐 시장에 뛰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주식시장에서 발생하는 패닉바잉 현상의 영향으로 청년들이 가상화폐 투자에 스며들게 됐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패닉바잉이란 가격 상승이나 물량 소진 등에 대한 불안으로 가격에 관계없이 생필품이나 주식, 부동 산 등을 사들이는 현상을 의미한다. 김수현(전남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시장이 급변하면서 패닉바잉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데, 패닉의 상황에서 가상화폐를 친숙한 자산으로 인식하는 청년들이 가상화폐 투자에 빠져 들기에 충분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투자 열풍이 불면서 근로소득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폄하되고 있다는 문제도 거론된다. 더 이상 근로소득만으로는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없고, 고수익 투자를 통한 부의 축적을 기대하고 선망하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쿠키뉴스가 2021년 12월 25일부터 2022년 1월 4일까지 20대 청년 26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자체 인식조사 결과, ‘평생 근로소득보다 주식‧코인‧복권 등으로 버는 게 더 많을 것 같나’라는 질문에 62.8%가 동의했다. 우리금융연구소의「2021년 자산관리 고객 분석 보고서: 팬데믹 시대의 대중부유층」에서도 비슷한 맥락이 나타난다. 근로활동 가치가 낮아졌다고 인식하는 이유로는 ‘부동산·주식 등 자산 가격의 상승에 비해 근로소득 증가가 적기 때문’이 46.1%, ‘물가 상승에 비해 근로소득은 오르지 않아서’가 33.4%로 꼽혔다. 김영재 교수는 “근로의 가치가 존중받을 수 있도록 주택 가격의 안정, 일자리의 공급, 요행에 의한 부의 축적 규제 등 청년층이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두 교수 역시 “청년층은 가상화폐의 가격 등락이나 고수익을 유인하는 메시지에 쉽게 현혹된다. 투자에만 몰두하기보다 직무의 충실성을 갖추는 것이 안정적인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가장 큰 문제는 가상화폐의 거래가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불법행위의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것이다. 불법 행위의 사례로는 ▲구매대행 사기 ▲탈세 ▲도박 ▲다단계 사기 등이 존재한다. 가상화폐 관련 불법행위의 단속 건수는 2017년 41건에서 2020년 333건으로 3년간 약 8배 증가했다. 블록체인 전문 분석 기업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2021년 불법행위와 관련된 가상화폐 거래 규모가 14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6조 8천억 원으로 역대 최대를 달성했다.

현재 가상화폐를 규율하는 유일한 법령은『특정금융 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 인데, 이는 본래 가상 자산을 이용한 자금 세탁을 막기 위해 제정됐다. 특금법만으로는 범죄에 가상화폐를 남용하는 행위를 모두 제재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존재하는 이유다. 범죄로부터 발생한 수익이 대상인 자금 세탁을 방지하는 해당 법안은 사후 조치일 뿐 범죄 예방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정제용(울산대학교 경찰학 과) 교수는 “가상화폐는 다양한 범죄에 활용되고 있다.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법률과 제도의 정비, 기술적 접근을 바탕으로 한 수사당국의 역량 강화 등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국가 차원에서 가상화폐 투자자 보호를 위한 확실한 규제가 이뤄진다면 가상화폐 불법행위가 근절될 희망이 보인다. 미국은 1만 달러 이상의 가상화폐 거래 시 국세청 신고를 의무화해 탈세 등 불법행위를 적발하고 있다. 신고 의무화를 추진해 첨단 기술을 가상화폐 관련 데이터 분석에 활용해 과세 대상 추적과 징수의 효율을 높인바 있다.

우리나라 역시 2020년 3월, 특금법에 가상자산에 대 한 내용을 추가적으로 신설했다. 개정안의 핵심 내용으로는 ▲가상자산과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명확한 법률적 지위 부여 ▲가상자산 사업자의 거래소 운영 관련 의무(신고 포함) 규정화 ▲가상자산 사업자의 거래소 거래 관련 의무(정보제공 포함) 규정화 등이 있다. 본 법률안은 거래소 운영의 건전성 및 거래 방식의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개정됐다. 하지만 거래소 중심의 규제라는 점에서 거래소를 통하지 않는 거래는 포섭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 교수는 “가상화폐의 성격과 법적 지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며 “가상화폐를 통해 불법행위를 하면 추적이 되고 검거가 된다는 인식이 확산돼 범죄의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심리적 경계선을 높이는 노력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는 청년층의 자산 보호와 불법행위 피해 방지를 위해 청년층을 위한 의무 교육도 실시해야 한다. 가상화폐 투자 관련 교육으로 투자의 기본 원칙을 지키며 고위험‧고수익 투자 방식을 지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사기가 이뤄지는 형태나 사후 대처법 등을 교육시킴으로써 가상화폐 사기로 인한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 김영재 교수는 “정부와 대학은 청년층이 불법행위에 희생되지 않도록 사이버 전문 인력 양성과 청년층에 대한 교육 확대를 위한 투자를 과감히 증대해야 한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 자산을 지키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먼저, 가상화폐로 큰 성공을 이룬 사람이 아닌 큰 실패를 경험한 사람을 토대로 경각심을 가지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성공 사례를 중심으로 투자에 열중하다 보면 결국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건강한 투자를 할 수 없게 된다. 김종두 교수는 “성급하게 분위기에 편승 하는 흐름 투자보다는 신중한 투자 즉, 꼴찌 투자를 해 야 한다”며 “남들의 성공을 보면서 나도 성공한다는 확신으로 끊임없이 투자하는 것은 희망보다는 절망에 투자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임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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