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자와 함께하는 시사한잔> 대형산불, 지핀 것도 키운 것도 사람이었다 (한성대신문, 576호)

    • 입력 2022-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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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2-04-01 17:11

213시간의 악몽, 이번 대형산불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이 하염없이 불을 바라봐야 했던 시간이다. 산불의 규모는 어떻게 야속하게도 속절없이 거대해져 갔을까. 산불이 대형산불로 번지는 재앙은 이번 단 한 번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팽배한 가운데, 결국 이 난제를 풀 수 있는 열쇠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지난달 4일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발생한 산불이 213시간 43분 만에 진화되면서 2000년에 일어난 동해안 산불 이후 역대 최장의 산불 기록을 갈아 치웠다.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시작된 산불은 강원도 삼척시까지 번졌고, 산불의 규모가 막대해지자 울진과 삼척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13일에 주불이 진화되기까지 다행히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서울 면적의 3분의 1을 넘어서는 2만 3,993ha 정도가 피해면적으로 측정되면서 이번 산불은 거대한 재해로 남았다.

이번 산불의 가장 큰 원인은 지구의 기후변화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비록 발화의 원인은 사람으로 추측되지만, 이상기후로 인한 건조한 날씨가 대형산불로 번지게 된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이다. 실제로 산불이 시작된 4일에는 경상북도 일부 지역 및 영동권에 각각 건조경보와 건조주의보가 발령된 상태였다. 강수량과 강수일수도 평년보다 적었다. 이에 대해 서재철(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이번 산불의 원인으로 기후위기가 꼽히는 근거는 올해 겨울철 가뭄이 3개월 동안 이어졌다는 점에 있다. 지난 50년 동안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환경운동연합이 9일 발표한 논평에서도 ‘앞으로 대형산불은 기후위기 적응과 기후재난 대비 차원에서 관리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해당 논평에서는 유엔환경계획(UNEF)의 예측도 언급되는데, ‘기후변화와 토지이용 변화로 인해 2030년까지 극한 산불이 최대 14%, 2050년까지 30%, 21세기 말까지 50% 증가하는 등 산불이 더 빈번하고 강렬해질 것’이라는 내용이다. 실제로 산불 발생은 매해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6년 391건 발생했던 산불은 2018년 496건, 2019년 653건으로 점차 늘어났다. 이명인(울산과학기술원 도시환경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산불은 풍속이 제일 높고, 상대습도가 제일 낮은 3월과 4월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봄철의 온난화 경향과 강수량 감소가 상대 습도의 지속적 감소를 만들어 내 산불 발생이 증가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단일목 위주 조림 사업이 대형산불을 야기한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소나무 위주로 숲이 조성돼 있는데, 소나무는 불에 잘 타기 때문에 산불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홍석환(부산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는 “이번 대형산불은 지금까지의 산림 관리 정책의 실패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며 “소나무 중심의 관리가 30년 넘게 진행되다 보니, 산불에 약한 소나무 숲이 광범위하게 분포됐다. 헐벗은 산에 처음으로 들어와 토양을 좋게 만드는 소나무가 제 역할을 다하고 나면 숲마다 알맞은 나무들이 중심에 서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대형산불의 예방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산불이 발생하는 것 자체는 막기 어려우니, 차라리 산불이 대형으로 번지기 전에 초동 대처로 진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말이다. 구체적 방안으로는 CCTV 증대, 스프링클러 설치, 진화헬기 확충 및 가동률 확대 등이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예방 비용으로 너무 막대한 지출을 감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형산불을 수습하기 위해 사용되는 산림 복구 비용, 피해 복구 비용, 진화 비용 등의 지출이 대형산불을 예방하기 위해 사용되는 금액보다 월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서 전문위원은 “스프링클러 등의 시스템을 갖추지 않는다면 앞으로 피해는 계속 발생할 것”이라며 “산불 진화에는 관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CCTV 역시 진화를 위해 수가 많을수록 좋다”고 말했다.

한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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