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자와 함께하는 시사한잔> 국회 민낯 들춘 ‘검수완박’ (한성대신문, 578호)

    • 입력 2022-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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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2-05-16 00:00

‘검수완박’. 지난달 내내 지겹도록 들어온 단어일 것이다.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축약어인 검수완박은 흔히 이번에 상정된 검찰 수사권 분리 법안을 지칭하는 말이다. 결국 해당 법안은 한 달이 넘는 치열한 공방전 끝에 올 9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은 내용도 사회적 의견이 엇갈리지만, 통과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문제시됐다. 종래에는 ‘폭력 국회’, ‘동물 국회’라는 촌평을 피하지 못했다.

쟁점이 되는 법안은『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이다. 두 법안의 개정안이 모두 통과되면서 ▲검찰의 직접 수사권 축소 ▲수사 검사와 기소 검사 분리 ▲검찰의 별건 수사 제한 등이 현실화될 예정이다. 실제로 이번 『검찰청법』 개정안에 따르면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를 기존 6개에서 부패·경제 범죄 등 2개로 대폭 축소시키고, 자신이 수사한 범죄는 기소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또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서는 별개 사건의 수사를 명백히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즉,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와 이를 기소해 재판을 치르는 검사를 분리한 것이다.

문제는 법안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국회의 추접한 모습이었다.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동원된 온갖 ‘꼼수’와 추태는 절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본래 국회는 재적 의원 과반이 출석해 그중 과반의 의원이 찬성하면 법을 통과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안건조정위원회’가 구성되면 해당 법안의 입법은 제자리에 멈춘다. 안건조정위원회는 여야가 동등한 숫자로 구성된다. 이중 2/3 이상이 동의해야 다시 입법 절차가 개시되는 정책으로, 다수당의 횡포를 막기 위한 장치다. 이번 법안 처리 과정에서 민형배(무소속)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당시 야당 측의 안건조정위원으로 속하면서 ‘꼼수 탈당’ 논란이 불거졌다. 애초에 검수완박을 당론으로 채택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해당 안건위에 속했다는 점에서 위장 탈당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몸싸움과 온갖 욕설은 국회가 무법지대인 것 마냥 즐비했다.

‘회기 쪼개기’ 수법도 고개를 들었다. 필리버스터가 국회의 *회기가 끝날 때 동시에 종료되는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필리버스터란 국회 본회의 표결 직전, 합법적으로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것을 보장하는 제도다. 회기는 의결로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수적으로 우세한 정당이 회기를 일찍 끝내버리면 다음날 바로 본회의를 다시 열고 필리버스터의 방해 없이 본투표를 시작할 수 있다. 이번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 법안 역시 회기 쪼개기 전략이 작용해 당시 야당 측의 합법적 합의를 묵살하고 빠른 시일 내에 처리될 수 있었다.

이러한 ‘안건조정위원회’와 ‘필리버스터는 2012년 『국회법』 개정을 통해 신설된 제도다. 이는 본래 거대 정당의 횡포를 막기 위해 고안됐으며, 이를 가리켜 ‘국회선진화법’이라 부른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바라보며 국회선진화법이 무용지물 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장영수(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안건조정위원회의 통과 과정을 두고 변종 날치기 입법으로 평가된다”며 “이러한 점에서 이번 법안 처리 과정은 정당한 입법 절차로 바라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금번의 사건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기에 국회의원들의 민주적 절차에 대한 의식이 제고돼야 함을 꼬집었다. 하상응(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모든 제도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존재한다”며 “법과 제도의 맹점을 찾기 전에 그것의 운용 방식을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기 : 국회가 개회한 때부터 폐회할 때까지의 기간

한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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