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글에 대한 호기심이 사람을 향해 번지기까지 (한성대신문, 586호)

    • 입력 2023-02-2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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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3-02-27 00:01

프레시안 편집국장 허환주(국문 01) 동문

<편집자주>

세상의 굵직한 변화는 대개 언론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주체는 십중팔구 ‘기자’다. 회에서 일어나는 사건 현장에 빠르게 달려가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해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기자는 과연 누구인가. 여기, 노동 문제를 치열하게 탐구해 온 기자가 있다. 한성대학교 학보사를 거쳐 인터넷 신문사 ‘프레시안’의 편집국장이 된 한성대신문사 26기 허환주(43)다.

그는 대학에 입학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학보사 생활을 했다. 대학 생활 대부분을 학보사에 쏟아부었던 그는 기자 활동으로 하여금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약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라도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꿈꾸는 작은 변화를 위해 불철주야(不撤晝夜) 달리는 기자가 됐다.

꿈을 향한 확실한 목표만 있다면 그 어떤 배경도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하는 그는 누구보다 뚜렷한 소신으로 업을 이어간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는 종종 찾아오는 회의감 속에서도 여전히 ‘팩트’가 가진 힘을 믿으며 약자를 위해 묵묵히 전진하고 있었다.

박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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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편집국장 [사진 : 김기현 기자]

“당구도 치고 테크노바(technobar)도 다녔어요.” 그는 대학 입학 이전 소위 ‘놀고 먹던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 뚜렷한 목표가 없어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남들이 다 간다는 이유로 대학을 진학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 후 3년을 무작정 놀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대학생활을 하는 주변 친구들이 눈에 밟혔다. 삶에 대한 고민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학 진학을 결심하게 됐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입학했다면 98학번이어야 하는데, 뒤늦게 수능을 치르고 입학해 01학번이에요. 고등학교 졸업 후에 다시 수능을 보기까지의 공백기에는 정말 놀기만 했어요. 노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고민이 생기는 시점이 오더라고요. ‘글을 써보면 어떨까’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니, 글을 제대로 배워보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다고 판단한 거죠.”

그는 글을 쓰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더해 글을 통해 생각을 확장시키고, 생각의 마침표를 찍어보겠다는 결심을 다졌다.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입학한 대학 속 수많은 단체 중 글을 배우기에 적합한 곳은 학보사라고 판단했고 그렇게 활동을 시작했다. 학보사는 그가 글에 대해 첫걸음을 떼는 출발 지점이었다.

허 편집국장의 대학생활은 한성대신문사 그 자체였다. 취재부, 사회부, 학술부, 문화부로 구성돼 있던 신문사에서 그는 취재부와 사회부 기자로 활동했다. 인력난이 심해 신문을 한 번 발행할 때마다 원고지 기준 120매(약 2만 4천 자) 정도를 써 내려가기도 했다.

“저에게 한성대학교는 한성대신문사였어요. 당시에는 수습기자 1년, 정기자 1년, 부장기자 또는 편집국장 1년으로 임기가 구성돼 있어 총 3년을 활동했어요. 저는 편집국장까지 했죠. 매일 먹고 자면서 기사 쓴 기억밖에 없어요. 사람이 부족하니 수업은 거의 못 듣고 학보사에서 살았죠. 후배들이라도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저까지 강의실에 가면 서로 만나는 시간이 거의 없어지니까요.”

3년의 고생은 결코 헛되지 않은 듯하다. 기자가 되기로 한 결심이 수많은 취재로부터 비롯됐기 때문이다. 현장 취재를 하며 대중이 해당 문제를 인지하게 된다면 일련의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믿으며 기자의 꿈은 점차 커져갔다. 그는 어떤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행동 여부는 인식 여부와 무관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자신이 알고 있는 사회의 여러 사안을 대중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렇게 그는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 활동 당시 강원도 인제군 수해 현장을 직접 찾아 간 허환주 [사진 제공 : 허환주]

학보사 활동을 마친 이후 군복무를 이어갔고, 제대 후 본격적인 진로 고민과 탐색의 기회를 가졌다. 때마침 ‘오마이뉴스’의 대학생 인턴기자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해 활동을 시작했다. 기자라는 직업이 자신의 적성에 부합하는지, 그리고 자질은 충분한지 검증해보기 위한 단계였다. 최종적으로는 2009년 1월부터 프레시안에서 일을 시작했다. 한정된 지면에 기사를 담아내는 신문보다 분량에 비교적 제한이 없는 인터넷 신문사의 특징을 장점이라 여겨 프레시안에 문을 두드린 것이다.

“4학년 여름방학부터 계속 인턴 활동을 하던 중에 오마이뉴스에서 공개 채용이 진행됐는데 떨어졌어요. 그래서 인턴을 그만두고 대학을 졸업했어요. 졸업 후에는 ‘민중의 소리’라는 매체에서 2년 가까이 일을 했고, 그때까지의 포트폴리오를 제작해 프레시안으로 이직했죠.”

그는 사회와 노동에 관심을 쏟으며, 발로 뛰어 현장에 직접 방문한 내용을 담아내는 르포르타주(reportage) 기사를 많이 작성하는 기자다. 날 것의 사실이 꿈틀대는 현장에서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기사에 담아내기 위함이다. 허 편집국장은 학보사 활동을 했던 대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회적 약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한다. 그는 사회적 약자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모두가 하기 싫어하지만, 모두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노동이라고 생각해요. 사회 속 인간은 대부분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그런데 노사(勞使) 간의 분명한 대척점이 노동자에겐 상당히 기울어진 언덕이에요. 부당한 노동의 조건과 상황 등에 관해 계속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세상이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이 되리라 믿어요.”

그가 취재와 기사 작성에 있어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은 ‘취재원’의 보호다. 취재원이란 기사 재료의 출처가 되는 모든 것을 의미하지만, 여기서 보호 대상이 되는 취재원이란 기사를 작성하며 만나는 수많은 ‘사람’이다. 기사를 통해 불러오는 공익이 크더라도 취재원의 삶이 망가질 가능성이 있다면 기사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최우선 원칙이다. 허 편집국장은 아무리 대의를 위한다고 한들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다치거나 희생되는 일은 그 자체로 잘못됐다고 강조한다.

“기사를 쓸 때 취재원이 다칠까 항상 염려해요. 간혹 취재원을 속여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도 존재해요. 이를테면 실명을 노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죠. 하지만 아무리 공익이라 할지라도 취재원의 삶이 파괴된다면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허 편집국장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 역시 취재원이다. 주로 취재했던 이들이 사회적 약자, 소수자, 피해자와 같은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겠다는 굳센 다짐으로 일해 왔다.

“기사 자체가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도, 판을 바꾸지도 못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이 자리에 서서 당신들이 입을 여는 동안에 떠나지 않겠다’와 같은 맹세를 해요. 그저 위로가 되고 싶은 것일 수 있죠.”

▲플랫폼 노동을 취재하며 직접 배달 노동을 하고 있는 허환주 [사진 제공 : 허환주]

대의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그는 취재한 기사를 바탕으로 책도 저술한 바 있다. 『현대조선잔혹사』, 『열여덟, 일터로 나가다: 현장 실습생 이야기』, 『라이더가 출발했습니다: 우리가 만든 어떤 편한 세상에 대하여』 등이다. 모두 산업재해에 관한 이야기다. 기사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그 이상의 것들을 말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 책을 집필했다. 그는 씨줄과 날줄로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진 사회, 그리고 그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는 단순히 개인이나 조직의 잘못만으로 발생하지 않음을 피력한다. 예를 들어 혼재된 현 사회에서 노동자의 사망에는 사회 자체의 문제가 기인했다는 말이다. 다양하게 얽혀있는 이야기 하나하나를 전달하기 위해 그에게는 ‘책’이 필요했다.

“기사는 육하원칙에 따라 산업 현장에서 누가, 어떻게, 왜 피해를 입게 됐는지를 설명해요. 저는 구조적인 문제로부터 출발해 남겨진 유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전하고 싶었어요. 가족이 아침에 출근했는데 저녁에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은 너무나 큰 일이니까요.”

▲2015년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허환주 [사진 제공 : 허환주]

2009년 입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와 2023년 1월, 프레시안의 편집국장 직을 임명받은 그는 회사 자체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자신이 하나의 매체라고 생각했던 기자 시절과 달리, 편집국장이 되자 회사 전체가 자신의 브랜드가 된 기분이라고 전언한다.

“이제는 편집국장이 됐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자 업무보다는 조직 운영이나 기사의 방향과 같은 것들을 고민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언론사뿐만 아니라 미디어가 발달하며 이른바 ‘유사언론’이 많아지고, 다양해지고 있어요. 그 속에서 의미 있는 기사를 배출하고 대중을 설득시킬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요.”

글이 쓰고 싶어 대학에 진학했던 그는 한성대학교 학보사의 학생기자 활동을 기점으로 꿈을 찾아 어느새 프레시안의 편집국장이 됐다. 허 편집국장은 기자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꿈을 구체화 하는 단계를 밟아나가라고 당부했다.

“학벌 같은 배경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잘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뽐내는 방식을 고민해야 해요. 단순히 멋있어 보이고 괜찮아 보이는 길을 따라가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남들과 경쟁해서 나의 무기는 무엇인지 판단한 후 잘 활용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꾸준히 기사를 읽어나갈 만큼 좋아하는 기자를 찾는 거예요. 그 기자가 어떻게 기사를 쓰는지 쭉 지켜보면서 취재 방식 등 궁금한 점이 생기면 이메일도 보내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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