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까지, 그 꿈을 함께 꾸다 (한성대신문, 587호)

    • 입력 2023-03-27 00:00
    • |
    • 수정 2023-03-27 00:26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예비사회적기업 몽실커피 이진희 대표

<편집자주>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 새로운 세상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주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보호아동’과 ‘자립준비청년’이다. 아동이 가정 안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못하면 사회에서 아이들을 ‘보호’한다. 상대적으로 일찍 가정을 떠난 보호아동은 아동복지시설의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 이후 자립준비청년이라는 명칭으로 사회에 나선다. 아동복지시설의 생활은 각자 다른 사정으로 시작되지만, 대게 만 18세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종료된다.

자립준비청년은 가정에서 보호받는 대부분의 아동보다 일찍, 홀로 생활을 시작하는 만큼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특히 가정에서 겪을 수 있는 경험의 부재로 인해 삶의 배경지식이 보다 적게 형성되면, 대화의 공통 주제가 충분치 않아 타인과의 관계 형성도 쉽지만은 않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고립되기 시작하면 자존감이 낮아질 수 있으며, 외로움을 크게 느껴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왕왕 있다.

아동복지시설 출신으로, 이 같은 문제 상황을 여실히 느낀 ‘몽실커피’의 이진희(29) 대표는 보호아동과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기댈 곳’을 형성하고자 노력한다. 또한 그저 잠시 기댈 휴식처를 넘어, 사회에서 자립준비청년이 ‘머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이 대표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곳일까. 그리고 그곳에서는 또 어떤 꿈을 꿀 수 있을까.

장현진 기자

[email protected]

▲이진희 대표 [사진 : 정상혁 기자]

아동학대를 겪다 학교 선생님의 신고로 가정과 분리돼, 중학교 때 아동복지시설로 입소한 이 대표. 단체생활과 여러 규율에 얽매이는 것에 지쳐 퇴소를 선택하는 보호아동들도 있는 반면, 그는 아동복지시설에서의 생활이 예상보다 더 편하고 즐거웠다고 회상한다.

“처음에는 고아원이라고 하면 정말 부모가 없는 아이들만 있다고 생각해서 아동복지시설에 대한 걱정이 선행했어요. 그러나 막상 가서 지내보니 가정에서 생활할 때보다 훨씬 편하고 즐거웠어요. 가지각색의 배경을 가진 아이들과 지낼 수 있어 좋았죠.”

고등학생 시절 이 대표는 하루빨리 취업하고자 노력했다. 원칙적으로 자립준비청년은 만 18세 이후 아동복지시설에서의 보호가 종료된다. 그 이후에는 원래의 가정으로 돌아가거나 독립을 해야 한다. 대부분의 보호아동은 가정이 온전치 못했던 경우가 많기에, 원가정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때가 많다. 독립할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말이다. 이 대표는 독립할 자본을 만들기 위해 취업에 몰두했다.

“저는 스스로 앞날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독립을 하고 싶었어요. 이 때문에 돈을 빨리, 그리고 많이 벌고 싶었어요. 그래서 당시에 학교에 존재했던 취업반에 들어갔죠.”

아동복지시설에서 자란 보호아동은 퇴소 일자를 모두 채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사회로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고등학교 3학년 여름, 독립을 시작했다. 알고 지내던 언니의 집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롯이 혼자 나왔던 것이 아니기에 자립준비청년이 흔히 겪는 외로움 등의 문제는 없었으나, 정보의 부재로 맞닥뜨리는 현실의 벽은 있었다고 술회한다.

“빨래 같은 정말 기초적인 생활도 시설에서 처리를 해주기 때문에 세탁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모르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저는 도시가스나 전기를 신청하는 방법을 몰라서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너무나 당연한 기본 상식이라 그런지 당시에는 인터넷에 나오지도 않았어요.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라 요즘은 다르겠지만요. 보일러 온도를 어떻게 조절하는지, 적절한 온도는 몇 도인지조차 알지 못했죠. 가정에서 자라면 당연히 보고 배울 수 있는 기초적인 것들을 저는 전혀 알 수 없었던 거예요. 주변에 물어볼 어른조차 없었으니 정말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죠.”

그는 보호아동이었다가, 자립준비청년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이 대표는 직접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과 같이 시설에서 성장했던 아동들을 떠올리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고등학교 시절에 함께 아동복지시설에 있었던 이들과, 그의 자식들이 가정에서 누리는 것에서 큰 괴리를 느꼈기 때문이다.

“시설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제 자식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것들을, 너무나 사소한 것들까지 당연하게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제 아이를 키우면서 시설에 있던 아이들 생각이 계속 났죠.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때마침 이 대표가 퇴소했던 아동복지시설에서 그에게 ‘1:1 자립멘토링’을 요청해왔다. 그동안 바라왔던 보호아동을 돌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립준비청년이 돼 시설을 퇴소하니, 관계는 끊어지게 됐다.

“제가 맡았던 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어요. 봉사활동을 하면서 함께 외출도 하고 여행도 다녔죠. 그런데 그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동복지시설을 퇴소하게 되니, 저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졌어요. 보호아동과 지속적으로 만날 방법을 강구하다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보자고 결심했죠.”

▲이진희 대표가 카페 ‘몽실커피’ 내부의 한 공간에 서 있다. [사진 : 정상혁 기자]

이처럼 이 대표가 지금까지 삶의 경험을 토대로 느낀 자립준비청년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인적 네트워크의 결여부터 시작된다. 부모 등의 보호자가 있는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성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어린 시절 자신들을 챙겨주고 보듬어줄 가정이 없었던 아이들은 타인과의 관계 형성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는 결국 정보의 고립을 초래하고 경험의 부재를 낳는다. 아동복지시설이 보호아동에게 필요한 충분한 가정환경을 제공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대표는 자립준비청년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자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몽실커피’다.

“자립준비청년 시절을 겪어봤기 때문에, 더 잘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존하는 경제, 부동산 교육 등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심리와 내면을 다루는 것이 더 필요해요. 내가 왜 일해야 하고,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조차 없는 아이들에게 아무리 좋은 교육을 제공해봤자 받아들이지 못하니까요. 세상엔 재미있고 즐거운 것이 너무 많으니 스스로 뭘 좋아하는지 알아야 살아갈 힘이 있지 않을까요.”

카페를 창업하는 방식으로 보호아동과 자립준비청년을 돕고자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표는 기부나 봉사활동 등의 방법은 결국 ‘일회성’이라고 전언한다. 일시적으로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말이다.

“처음에는 사무실과 같은 공간을 대여해서 보호아동, 자립준비청년과의 모임 장소로 활용하려고 했어요. 근데 아이들 처지에서 생각해보니 사무실이라고 하면 편하게 오기 힘들 것 같더라고요. 고민을 거듭하던 와중에 취약계층에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에 대해 알게 됐고, 이를 카페 창업에 접목했죠.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카페라면 누구라도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장소니까요.”

몽실커피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동시에 목표를 정하고 꿈을 꿀 수 있도록 많은 경험과 정보를 제공한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나들이 프로그램’과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1:1 자립멘토링, 퇴소한 아동들을 위한 ‘커뮤니티 활동’이 존재한다. 이 중 1:1 자립멘토링은 상술한 봉사활동을 지속한 프로그램이다. 3가지의 프로그램 외에도 크리스마스와 같은 특별한 날에는 이벤트성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나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아동복지시설을 퇴소한 선배들이 초등학생, 중학생 아이들과 여러 놀거리를 즐겨요. 예를 들어, 부산의 롯데월드를 방문하거나 태화강에서 자전거를 타요. 1:1 자립멘토링은 정말 다양한 활동이 진행돼요. 아이들의 만족도가 높은 활동 중 하나는 멘토의 집에서 숙박하는 활동이에요. 선배의 집에 방문해 직접 요리와 빨래를 해보며 독립한 이후의 삶을 체험해보는 거죠. 정보와 경험의 부재로 겪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어요. 커뮤니티 활동은 비정기적으로 이뤄지지만, 지속적인 교류 활동이에요. 아동복지시설을 퇴소한 아동과 축구를 한다거나 하는 방식 등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이진희 대표가 ‘KRX 드림나래’ 발대식에서 강연했다. [사진 제공 : 이진희]

이 외에도 그는 다방면으로 보호아동과 자립준비청년을 위해 한 걸음씩 다가가려 한다. 자립준비청년에게 보다 많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문화체험이나 캠핑 등의 프로그램을 추가로 기획 중이며, 아직 만나보지 못한 다른 아동복지시설의 보호아동들과 가정위탁아동들을 고려해, 커뮤니티의 확장을 목표로 삼았다. 또한 그는 자신의 경험과 몽실커피에 대한 강연을 진행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 대표는 최근 한국거래소에서 주최한 ‘KRX 드림나래’ 발대식 행사에서 강단에 섰다.

“자립준비청년을 지원하는 ‘KRX 드림나래’ 발대식에 강연자로 초청받았어요. 제가 활동하고 있는 몽실에 대한 이야기와 탄생 배경을 설명하고, 또 제가 아동복지시설에 들어가게 된 계기와 퇴소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죠.”

‘몽실’은 꿈 몽(夢)과 열매 실(實), 즉 ‘열매를 꿈꾼다’는 의미다. 씨앗의 성장 여부는 지금 당장 알 수 없지만, 씨앗은 반드시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이 대표는 몽실의 브랜드 정체성을 씨앗이 자라 열매를 이룸에 비유한다.

“보호아동과 자립준비청년이 당장의 현실은 땅에 묻힌 씨앗처럼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고 느끼겠지만,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그런 꿈을 가지고, 또 소망했으면 좋겠어요.”

결국 그는 모든 자립준비청년들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다. 특히 사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고 어떤 행위나 경험으로 얻는 행복과 함께, 그저 살아있다는 존재 자체로 행복한 가정도 이뤄보기를 바란다.

“저는 어느 순간 남편, 아이와 함께 길을 걷다가 ‘아, 이게 행복인 거구나’하고 문득 깨달았어요. 여행을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사 먹고 이런 것에서 오는 행복이 아니라 그저 존재 그 자체로 있을 때 행복한 것. 이 감정을 모든 보호아동과 자립준비청년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깨어진 가정에서는 경험하기 힘드니 말이에요. 저도 가정을 이룬 후 생각이 많이 바뀐 것인데, 행복한 가정을 이뤄서 가정에서 얻게 된 결핍 등을 회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댓글 [ 0 ]
댓글 서비스는 로그인 이후 사용가능합니다.
댓글등록
취소
  • 최신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