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모두의 화장실, 지나쳤던 일상의 권리를 찾아 (한성대신문, 588호)

    • 입력 2023-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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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3-04-17 00:00

[사진 제공 : 모두를 위한 모장실 문화 만들기 모임 ‘모모']

대학가에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하 모두의 화장실)’의 설치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모두의 화장실이란 어떠한 신체나 사회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안전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다. ▲나이 ▲성별 ▲성 정체성 ▲장애 여부 등에 관계없이 하나의 화장실을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모두의 화장실을 보유한 성공회대학교는 지난 3월 설치 1주년을 맞이했다. KAIST의 경우 지난해 12월 모두의 화장실 설치를 완료했으며, 최근에는 서울대학교가 모두의 화장실 도입을 검토했다.

성별 구분 없이 사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모두의 화장실은 남녀 공용화장실과 같아 보이지만, 설립 목적이 엄연히 다르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남녀 공용화장실은 여유 공간이 없어 좁은 공간에 남녀를 모두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화장실 자체가 중요성이 떨어지는 공간이라는 인식에서다. 반면 모두의 화장실은 공간도 여유로울뿐더러, 설계 과정에서부터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한다. 성소수자를 넘어 장애인, 노약자 및 영유아와 그들의 보호자 등이 불편함 없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 박경태(성공회대학교 사회학전공) 교수는 “모두의 화장실은 공간의 문제를 떠나 모든 사람의 화장실 사용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모두의 화장실에는 정해진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보통 가정집 화장실처럼 화장실 한 칸에 볼일과 관련된 용무를 모두 해결할 수 있게끔 설계돼 있다. 여기에 휠체어 사용자가 원활히 이동할 수 있는 출입문과 공간을 갖추고, 대소변기와 세면대를 비롯한 샤워기 등을 구비할 수 있다. 또한 영유아와 부모를 위한 기저귀 교환대부터 유아용 변기, 그리고 장애인을 위한 지지대 등을 갖춘다면 모두의 화장실로서의 요건을 충족했다고 평가된다. 김지학(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은 “모든 사람이 쓸 수 있도록 여러 요소를 고려해 설계된다면 그것이 바로 모두의 화장실”이라고 부연했다.

지난 2017년 서울특별시가 「제2차 인권정책 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시내 공공시설에 모두의 화장실 시범 설치를 검토했으나, 최종적으로는 무산된 바 있다. 모두의 화장실과 관련된 논의와 설치가 활발한 해외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국내에 자리 잡은 성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가 모두의 화장실 관련 논의를 지연시키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오정진(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성별을 구분하며 살고 있다. 화장실이라는 내밀한 영역이 아무 구분 없이 다른 성별에 노출되면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관련 전문가들은 모두의 화장실을 통해 화장실 사용이라는 기본적인 권리가 모두에게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화장실을 원활히 이용하지 못한다면 일상생활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화장실이라는 기본적 권리가 사라지면 건강권, 교육권 등을 침해받는다. 모두의 화장실 논의는 화장실 사용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포함할지, 배제할지의 문제”라고 힘줘 말했다.

성소수자의 기본권을 보장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10월을 기준으로 지난 12개월간 성별이 분리된 공중화장실에서 ‘부당한 대우나 불쾌한 시선을 받을까봐 내 성별 정체성과 다른 성별의 시설을 이용했음’이라고 답한 트랜스젠더는 40.9%였으며, ‘화장실에 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음료를 마시거나 음식을 먹지 않았음’이라고 답한 이들은 39.2%였다. 심지어는 화장실 이용을 포기(36.0%)하거나 제지(12.2%)당하기도 했다. 성전환수술 여부와 상관없이 출생 시의 생물학적 성별과 스스로 정체화한 성 정체성이 다른 트랜스젠더 등의 성소수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실제로 성소수자들은 외부에서 대소변을 해결하지 못해 방광염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모두의 화장실은 성소수자뿐 아니라 다른 사회 구성원의 화장실 사용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어린 딸과 아버지, 노모와 아들, 장애인 여성을 돌보는 남성 활동지원사 등은 어떤 화장실로 향해야 할까. 박 교수는 “성 정체성을 넘어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기에 성중립 화장실 대신 모두의 화장실로 불리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모두의 화장실 설치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제도적 부재라고 입을 모은다.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제7조 제1항에 따르면, ‘공중화장실등’은 남녀화장실을 구분하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해당 조항의 공중화장실등은 대학을 비롯한 공공기관 등의 화장실을 포함한다. 남녀를 분리하지 않는 모두의 화장실이 해당 조항에 저촉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지는 대목이다. 표혜령(화장실문화시민연대) 상임대표는 “해당 조항이 생긴 이후 지어진 건물은 적용 대상”이라고 전했다. 이어 오 교수는 “모든 시민을 위해 남녀를 구분한 화장실이 아닌 모두의 화장실을 설치할 수 있게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두의 화장실 설치를 위해 필요한 공간과 비용이 현실적으로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휠체어 사용자 등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하기에 넓은 공간이 요구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결국 화장실의 절대적인 칸수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또한 모두의 화장실 요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여러 시설물이 필요하기에 비교적 더 많은 비용이 든다는 점도 언급된다. 오 교수는 “모두의 화장실은 한 칸마다 필요한 설비를 갖춰야 해 더 많은 공간과 경비가 필요하다. 성별을 분리할 때보다 절대적인 칸수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모두의 화장실을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구성원의 권리가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공간과 비용에 더 많은 투자를 함으로써 화장실 사용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을 줄여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비용을 줄이기 위해 현재 있는 건물의 장애인 화장실을 개조하는 방법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김 소장은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된 장애인 화장실을 개조해 모두의 화장실로 만든다면 비용은 줄이고, 활용성은 높일 수 있다”고 술회했다.

남녀가 같이 사용하는 만큼 성범죄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이 큰 문제 중 하나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두려움의 근거로는 2016년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발생한 ‘서초동 주점 화장실 살인사건’이 꼽힌다. 표 상임대표는 “남녀가 공용으로 이용하기에 사용자가 불편함을 호소할 수 있다. 성범죄에 대한 뚜렷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성범죄에 대한 우려는 비단 모두의 화장실 문제라고만 보기 어렵다고 반박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성범죄가 발생하는 장소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박 교수는 “화장실 성별 구분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범죄를 막지 못한 사회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모두의 화장실 사용이 오히려 사회적 낙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모든 구성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본래의 목적과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오 교수는 “낙인은 모두의 화장실을 성소수자만 사용할 것이라는 예상에서 발생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낙인을 없애기 위해서는 설치 장소가 중요할 것이라 예측했다. 후미진 공간이 아닌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설치돼야만 궁극적으로 모두가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후미진 곳에 설치돼 성소수자만 찾아간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 그것이 낙인이다. 일상적인 공간부터 변화된다면 낙인 없는 화장실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무엇보다도 충분한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 관련 논의가 이행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강제 설치는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공청회와 공개토론회 등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인권 보장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소장은 “모두의 화장실은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폭력에 노출시키지 않고,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의 전환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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