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테마파크의 ‘뉴 패러다임’, 그 중심에 서다 (한성대신문, 589호)

    • 입력 2023-05-0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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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3-05-08 00:16

모노리스 김종석 공동대표

<편집자주>

회전목마와 대관람차가 돌아가고, 롤러코스터를 탄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테마파크’를 생각하면 흔히 떠오르는 풍경이다. 그러한 고정관념에 제대로 도전하는 테마파크가 있으니, 제주특별자치도에 위치한 ‘9.81파크 제주(이하 9.81파크)’다. 9.81파크는 다른 동력원 없이 ‘중력가속도로만 달리는 레이싱 차량’, ‘메타버스를 활용한 놀이’ 등 기존 테마파크에서 찾기 힘든 즐길거리로 이뤄져 있다.

9.81파크에 다녀간 사람은 작년 한해 기준 50만여 명이다. 엄청난 규모와 체계적인 시스템에 감탄하며 굴지의 기업 중 어느 곳이 제주에 테마파크를 만든 것인지 알아보려 검색창을 켠다. 아니 그런데, 스타트업이 만들고 운영하고 있다고? 2014년 기준 10명을 밑도는 인원으로 시작한 스타트업이 제주에 테마파크를 만들었단다. ‘모노리스’의 김종석(47) 공동대표는 테마파크의 새로운 유형을 제시했다.

그는 어떻게 성공한 스타트업 사업가가 될 수 있었을까. 그만의 특별한 경험과 목표하던 바를 쫓아가다 보면, 그의 성공 비결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일들을 이어가다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그의 조언은 비단 창업을 희망하는 청년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창업 솔루션을 넘어 ‘인생 솔루션’을 들어보기 위해 그를 만났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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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공동대표 [사진 제공 : 모노리스]

“제대하고서야 정신을 차렸죠.” 김 대표가 자신의 대학생활을 회고하며 던진 첫 마디다. 온라인 게임 등을 즐기며 대학 시절을 보내던 김 대표는 졸업이 다가올 무렵부터 취업을 위한 준비에 뛰어들었다. 건축공학을 전공한 그는 건설회사 취업을 위해 성적을 쌓고, TOEIC 점수를 높여갔다. 그러던 과정에서 뒤늦게 스스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

“복학 후 모든 계절학기 수업을 수강하며 성적을 만회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다가, 졸업과 취업을 코앞에 둔 시기에 와서야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건설회사에 이력서를 내는 것이 맞을까? 나는 과연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을까? 저 자신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졌죠. 결국 저는 저만의 사업을 꾸려나가고 싶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어요.”

‘창업’이라는 답을 찾은 김 대표는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그는 ‘영업’ 직무와 ‘자본’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영업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기 위한 준비 과정과 실제 판매를 담당하는 직무로 일컬어진다. 자신만의 기업을 운영하며, 물건을 판매하는 입장에 서고 싶었던 그에게 영업은 필수적인 영역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영업을 배울 수 있는 회사가 어디일지 찾아보던 중, ‘퍼시스’라는 사무용 가구 업체가 영업 직군의 신입사원을 선발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건축공학 전공자 우대’라는 글귀에 이끌려 지원했죠. 입사 후 ‘특수사업팀’이라는 곳에 배정됐는데, 약 2년 동안 학교에서 주로 사용하는 가구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시장조사, 사업 기획, 제품 출시, 전국 영업망 구축 등을 경험했어요. 영업에 관한 거의 모든 실무였죠.”

김 대표는 영업에 대해 알고 나니, 비로소 자본에 대해 배울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술회했다. 기업이 경영 활동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자금, 즉 자본이 기업으로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한 부분도 창업을 위해 김 대표가 알고 가야 할 부분이었다. 대다수의 기업은 투자를 통해 자본을 마련하기에, 투자업계에서의 경력은 그에게 필수였다. 하지만 전공도, 경력도 투자업계와는 무관한 20대를 원하는 회사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주변에 투자업계에 종사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꼭 좀 소개해 달라’는 말을 지인들에게 전하고 다니던 어느 날, 투자회사 설립을 준비 중인 분과 만날 수 있게 됐어요. 몇 번의 만남 끝에 채용됐죠. 첫 해에는 엄청난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두 번째 해에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공격적으로 투자하다 많은 수익을 잃었어요. 결국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했죠. 어떻게 해야 안전하게 투자자들의 자금을 운용하며 적정한 수익을 낼 수 있는지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던 것이에요.”

실패를 겪고 방황하던 그는 ‘한국엠엔에이’라는 회사에서 일하게 됐다. 당시 국내 굴지의 벤처투자회사 ‘KTB네트워크’를 산하에 둔 기업이었기에, 그가 자본과 투자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 김 대표는 수많은 IT벤처기업의 창업과 도산을 현장에서 지켜볼 수 있었고, 덕분에 그는 오랜 꿈인 창업에 관한 생각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고 전언한다.

“IT 분야의 유망한 벤처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일을 맡았어요. 수백 개의 IT기업을 접하며 교훈을 얻을 수 있었죠. 경영자의 천재성이나 기발한 사업 아이템을 가진 기업은 단기적으로 시장의 이목을 끌어도 오래가지는 못했어요. 결국 성공하는 기업은 강한 실행력과 끈기를 가진 회사죠. 기업의 성패 과정을 지켜보니 자연스레 창업에 대한 열정이 끓어올랐고, 저만의 사업을 위한 준비가 필요한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 대표가 꿈을 이룰 준비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한 요인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아이폰’이다. 그는 아이폰 출시를 기점으로 시대의 흐름이 PC에서 스마트폰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했다.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서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할 가치는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해답은 ‘오프라인’에 있었다.

“PC 시대에는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때만 연결이 가능했지만, 스마트폰의 시대에는 항상 연결돼 있을 수 있잖아요. 전 세계 모든 사람이 24시간 내내 서로 연결돼 생각과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변화를 몰고 온다고 판단했어요. 그렇기에 미래에도 절대 변하지 않을 가치는 무엇일지 고민했죠. 그 결론은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육체적 활동이었고요. 현실에서 내 몸의 오감을 사용하는 레저나 스포츠 등의 가치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 것이에요. 대신 평범하지 않게 레저에 IT 기술을 접목시켜 경험을 콘텐츠화하는 방법을 생각해냈어요.”

이렇게 그는 창업에 있어서 빛나는 선구안과 빠른 판단력을 지녔다. 그러나 신중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벤처투자업계에 몸담으며 수많은 기업의 실패를 엿본 그였기에, 남다른 준비 과정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선 것이다. 김 대표는 영업이나 자본과는 또다른 영역, ‘경영’ 그 자체에 대해 더 알아야 한다고 판단했고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한다. 창업의 동반자를 찾은 곳도 대학원이라는 점에서, 이 결정은 그에게 있어 큰 전환점이었다.

“좋은 사업 아이템, 영업 능력 등을 가지고도 실패하는 수많은 사례를 보면서, 일하면서 배운 것들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경영학 이론을 배우면서, 투자업계에서 일하며 배웠던 부분들이 융합되고, 하나의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됐죠. 함께 창업한 김나영 공동대표를 만난 곳도 대학원이에요. 패션업계에서 해외사업전략을 담당하던 친구라 저와는 커리어가 완전히 달랐지만, 재미있게도 미래를 보는 눈은 비슷했어요. ‘육체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귀해질 것이다, 신기술은 오프라인 경험을 고도화시키는 데 사용하면 된다···’ 대략 이런 맥락의 대화를 자주 나누고, 서로 공감도 많이 했어요. 이 친구라면 같이 사업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어, 함께 창업할 것을 제안하니 웃으며 ‘OK’ 하더군요.”

만반의 준비를 거쳐 사업을 시작한 그였지만, 창업 초반에는 당연히 어려움이 뒤따랐다. 김종석 대표는 주변의 부정적 시각과 그에 따른 투자 유치의 실패를 창업 초반기의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꼽았다. 그는 자신의 계획이 얼토당토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처음에는 ‘미친놈’ 소리를 듣기까지 했죠. 무수히 많은 거절을 겪어야 했어요. 보수적인 시선들을 뛰어넘으려면 눈으로 보여주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레이싱 차량의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이후에 더 개선된 모델을 만들어서 시범을 보이기도 했어요. 저희의 실행력과 진정성을 인정받았는지, 2016년에 3곳의 벤처 캐피탈에게 지속적인 투자를 받기 시작했죠.”

▲사람들이 9.81파크 제주의 레이스981을 즐기고 있다. [사진 제공 : 모노리스]

9.81파크는 ‘레이싱’을 중심에 두고 있다. 때문에 핵심 어트랙션도 제주의 풍경을 감상하며 달리는 ‘레이스981’이다. 그는 비탈진 곳에서 동력원이 없는 카트를 타고 노는 ‘Gravity Racer’라는 유럽의 놀이 문화를 가져와 발전시켰다. 세 종류의 레이싱 차량 ▲GR-E ▲GR-D ▲GR-X는 전기나 휘발유와 같은 특별한 동력원 없이 중력 가속도만으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초당 9.81m씩 가속도가 붙는 중력 에너지가 차량의 ‘엔진’이기에, 이름 또한 ‘9.81파크’로 명명한 것이다.

“모노리스의 사업이 추구하는 큰 방향성은 스포츠에 게임 기술을 접목해 테마파크화하는 것이에요.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스포츠와 레저가 있기 때문에, 그 무궁무진한 소재를 모두 흡수할 만큼 광범위하게 사업 방향성을 설정한 것이죠. 그래서 선택한 것이 Gravity Racer였어요.”

이처럼 모노리스는 스포츠와 게임의 요소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재미를 공급하고자 한다. 나아가 김종석 대표는 9.81파크가 하나의 지식재산권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 9.81파크를 테마파크 브랜드로 만들어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확장한다는 말이다.

“지속적으로 사용자와 호흡하고, 그들의 욕구를 관찰해야 해요. 사용자의 반응과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방향으로 저희의 세계관을 확장해 나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죠. 그렇게 독자적인 브랜드로 9.81파크를 성장시킨 후, 그 기술이나 브랜드 등을 지식재산권으로 만들어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규모를 늘리는 것도 하나의 목표고요.”

이처럼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이라는 꿈을 이뤄낸 김종석 대표가 생각하기에, 창업 성공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끈기’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고객의 숨겨진 욕구를 찾아내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고, 이를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험난하기에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천재성 같은 부분은 사업을 시작할 때 중요해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끈기에요. 끈기는 추진력의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고, 리더십의 형태로 드러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끈기의 이면에 공통적으로 자리한 것은 자기 제품에 대한 강한 확신일 것이에요. 그 끈기가 없다면 오랫동안 매달리기 힘들 수 있어요.”

그는 ‘발상의 전환’이라는 태도도 중시한다. 실패의 가능성을 떠안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로 향하는 자가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그의 신념은 모노리스라는 스타트업을 일궈낸 과정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9.81파크가 여타의 테마파크에 없는 특징을 가질 수 있었던 근원이기도 하다.

“발상의 전환이라는 것도 상투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결국 위험을 감수하고 개척되지 않은 길을 가보라는 겁니다. 남들이 해보지 않은 행동을 하고, 남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부분에 의문을 품는 것이죠. ‘테마파크는 왜 똑같은 놀이기구로 똑같은 경험만을 제공해야 하지? 게임처럼 업데이트해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는 없나?’ 9.81파크의 시작이 된 질문처럼요.”

그렇다면 청년층이 미래를 설계할 때 중점적으로 바라봐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이 지나쳐 온 점들을 이어 보라고 조언한다. ‘점’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 잘하는 일을 일컫는다. 그리고 주위의 믿을 만한 이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라고 말한다.

“본인이 잘하는 일이나 좋아하는 일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전 게임도 좋아했고, 스포츠도 좋아했어요. 투자업계에서는 기술이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지켜봤고요. 제 모든 경험과 선호가 모노리스 사업에 전부 반영돼 있어요. 제 인생의 점들이 이어진 결과물이죠. 여러분도 점들을 이어서 미래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 가설을 세워 보세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지금이 움직여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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