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콘텐츠 범람 시대 속 고유한 철학을 담아내다 (한성대신문, 593호)

    • 입력 2023-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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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3-10-23 13:09
▲황세연 PD가 '딩대'의 출연진인 ‘낄희 교수(좌)', ‘붱철 조교(우)’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황세연]

바야흐로 영상 콘텐츠가 ‘범람’하고 있는 시대다. 지식을 전달하고 공감을 선사하는 장은 TV에서 유튜브로, OTT 플랫폼으로 점차 넓어졌다. 교육 콘텐츠 또한 단순 강의식 콘텐츠에서 체험을 접목하기도, 토론을 들여오기도 하는 등 그 형태가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권위 있는 한 사람의 지식인이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잔잔한 호수와도 같은 교육 콘텐츠에 돌멩이를 던지며 물결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EBS의 황세연(34) PD다. 사람마다, 교육의 내용마다 가장 효과적인 교육 방식은 다르다고 여기는 그는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송사의 PD로서 이러한 철학을 널리 펼치기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정진한다. EBS의 인기 유튜브 채널 ‘딩대 DingUniv(이하 딩대)’가 그 사례 중 하나다. 딩대는 ‘딩동댕대학교’의 줄임말로, 어른이들을 위한 대학을 표방한다.어른에게 꼭 필요하지만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정보를 유튜브를 통한 웹예능의 형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딩대의 콘텐츠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그가 단연 돋보이는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태도일 테다. 황 PD처럼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콘텐츠 제작자가 되려면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알아보기 위해 그의 경험을 따라가 봤다.

황 PD의 ‘콘텐츠 사랑’은 학창시절 시작됐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서울로의 유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그 외로움을 음악, 영화, TV 프로그램 등 다양한 콘텐츠로 달랬다. 그날, 그때의 감정과 상태에 따라 음악을 듣기도, 영화를 감상하기도, TV 소리로 침묵을 채우기도 했다.

“유학 생활이 외롭지 않도록 다양한 콘텐츠와 함께 그 시간들을 보냈어요. 특히 음악은 3~4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분위기를 바꿔 준다는 점에서 정말 힘 있는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장르는 크게 가리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다양한 스타일의 밴드 음악을 좋아했어요. 잊지 못할 아름다운 장면과 감정적인 여운을 선사해 준다는 점에서 영화도 제가 사랑한 콘텐츠에요. TV 프로그램은 특히 예능을 좋아해서, <무한도전>이 늘 든든한 밥 친구였죠.”

형식과 장르를 가리지 않는 콘텐츠를 향한 그의 열정은 대학까지 이어졌다. 영미어문학을 전공으로 택한 그는 문학이라는 콘텐츠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문학을 전공하며 뛰어난 작품들을 깊이 공부해 본 경험이 후에 PD로서 콘텐츠를 섬세하게 바라보는 데 보탬이 됐다고 전언한다.

“이야기와 인물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영미어문학에 흥미가 있었어요. 한 학기 동안 세 편 정도의 작품을 아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수업이 있었는데요.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라는 작품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한 인물의 시시각각 변하는 생각과 내면에 초점을 맞춰 작품이 전개되는데, 인물을 이토록 섬세하게 조명할 수 있음에 감탄했어요.”

여러 콘텐츠에 관심을 두던 그는 음악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음악과 관련한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음악에 대한 관심은 그를 라디오 방송국으로 이끌었다. EBS FM 라디오 프로그램의 조연출로 일하게 된 것이다. 조연출이란 말 그대로 연출, 즉 PD가 의도한 방향대로 프로그램이 제작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이다. 라디오 프로그램 조연출로 일하는 과정에서 그는 방송 현장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게 됐고, 방송 PD를 꿈꾸게 됐다.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였다.

“음악 PD를 꿈꾸기도 했고, 작사가가 되기 위해 진지하게 준비했던 기간도 있었어요. 그리고 선곡을 많이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EBS FM 라디오 프로그램의 조연출로 반년 정도 일했죠. 청취자들이 보내온 사연을 보면서 방송이 대중의 생활에 스며들고 사람들의 매일을 다독여 준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아침에 들은 라디오 프로그램의 한 마디 덕분에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고, 너무 힘들었던 날에는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며 웃고 울면서 기분을 푸는 것처럼요. 누군가 내가 만든 콘텐츠를 보면서 기분이 나아지고 감상을 정리할 마음이 든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여느 PD 지망생과 같은 취업 준비 기간을 보낸 후 EBS에 방송 PD로 입사하게 된 그는 의학 다큐멘터리 <명의>의 조연출을 맡게 됐다. 그는 <명의>에서의 시간을 통해 방송 조연출의 역할에 대해 몸소 익히는 것은 물론, 방송을 만드는 데는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PD와의 소통이 조연출의 가장 큰 역할이에요. PD와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프로그램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아이디어와 행동을 더해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의 도움이 필요함을 잘 인지하고, 믿고 응원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수많은 동료의 손길이 있어야만 하나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는 것도 깨닫게 됐고요.”

황 PD는 <명의> 이후 <생방송 톡! 톡! 보니 하니>와 같이 인지도가 높고 팬층이 두터운 프로그램에서 연출을 맡았고, <뭐든지 뮤직박스>부터 메인 프로듀서로 활약하기도 했다. <뭐든지 뮤직박스>는 어린이들이 MC와 함께 매 회 상자에서 물건을 꺼내고, 그 물건을 가지고 놀며 음악적 개념을 발견하고 공연까지 즐길 수 있는 ‘어린이를 위한 음악 예능’이다. 교육 콘텐츠는 획일적인 방식으로 전달돼서는 안 된다는 그의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어린이들이 진짜 즐기며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것’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활동했다.

“시청자층으로 설정한 세대가 누구냐에 따라, 프로그램의 주제가 무엇이냐에 따라 알맞은 모양의 교육이 따로 있어요. 어떤 세대에게는 ‘칠판 강의’가 가장 능률적이지만, 다른 세대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처럼요. 특히 제가 만들어 온 프로그램의 주 시청층인 어린이 또는 청년층에게는 재미있고 친근한 형태로 다가가 프로그램과의 접점 자체를 늘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뭐든지 뮤직박스>를 제작할 때는 기존 EBS 프로그램의 문법을 따르는 대신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유튜브 콘텐츠나 예능 방송을 많이 연구했죠. 매회 상자에서 물건을 꺼내는 ‘언박싱’을 주요 콘셉트로 삼은 것이 이러한 고민에서 나온 장치에요.”

딩대는 교육 콘텐츠에 대한 그의 신념을 펼치기에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딩대의 CP였던 이슬예나 PD가 <뭐든지 뮤직박스>와 같은 예능형 교육 콘텐츠 제작 경험이 있는 황 PD에게 딩대로의 합류를 제안했다. CP(Chief Producer), 즉 책임 프로듀서는 한 프로그램의 전체를 총괄하는 PD를 말한다. 황 PD는 딩대와 같은 웹예능 제작이 교육 방송을 제작하는 방송사에서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점에서 제안을 승낙했다.

“처음 딩대 연출을 맡게 됐을 때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다가가기에 적합한 아이템을 찾고, SNS를 조금 더 활용해 보는 일을 먼저 시작했어요. EBS에서 2030을 주 시청자층으로 설정한 웹예능을 제작해 볼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던 기억이 나요.”

딩대는 대학교를 주요 콘셉트로 삼아 정보를 전달하며, 그로 인해 주요 출연진의 이름에도 대학생에게 익숙한 직함이 붙는다. 코끼리 ‘낄희 교수’와 수리부엉이 ‘붱철 조교’가 그들이다. 딩대의 콘텐츠에 대해 청년층이 보이는 반응은 대단한 수준이다. 9월 4일 ‘한국방송대상 뉴미디어 부문 작품상’을, 8월 16일 ‘2023 뉴미디어 콘텐츠상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의 성과 또한 보이고 있다. 황 PD는 딩대의 인기 비결로 주 시청층인 청년층의 관심사에 초점을 맞춘 아이템 선정을 꼽았다.

“한 마디로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느낌’을 많이들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어른이 돼도 궁금하지만, 누군가에게 물어보기 애매하거나 어려운 주제들, 가령 ‘똥꼬를 찢지 않아요(항문 건강 지키는 방법)’ 같은 아이템을 선보였을 때 많이 공감하며 즐겨 주셨던 기억이 나요. 제작진 모두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나 뉴스 등을 꼼꼼히 보면서 청년들의 화두나 관심사를 따라가려 힘써요. 대학생 친구들을 인터뷰하기도 하고요.”

또한 자막이나 제목 등에 각종 유행어를 차용하는 등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점도 인기 비결로 꼽았다.수많은 콘텐츠를 다방면으로 흡수하고 있는 청년층에게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콘텐츠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아이템을 찾을 때와 마찬가지로 청년층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흐름에 따라가려 힘쓴다.

“2030은 각종 OTT와 SNS 등을 통해서 트렌드를 시시각각 흡수하는 세대잖아요. 주요 시청자층으로 설정돼 있다 보니, 그들이 몸을 맡기고 있는 거대한 흐름 속에 딩대도 함께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 노력해요. 다른 콘텐츠와 마찬가지로 딩대 또한 ‘바로 지금의 콘텐츠’라는 점을 부각하는 거죠.

황 PD는 시청자 유입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뿐 아니라, 유입된 시청자가 유의미한 정보를 얻어갈 수 있도록 일방·하향적 내용 전개를 피하려는 노력도 이어간다. 이 또한 칠판 앞에서 이뤄지는 전통적 방식의 교육이 늘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그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용적 측면에서도 유일무이한 정답을 주입하지 않기 위해 주력하고 있으며, 유튜브 댓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피드백을 파악하고 수용하는 등 ‘딩대생’과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내용의 전개가 일방적이거나 하향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 또한 전통적인 방식의 정보 전달이 누구에게나 통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서 비롯됐어요. 내용 그 자체의 측면에서도 절대적인 공식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알리는 대신, 한 화두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출연자들을 통해 보여주려고 해요. 플랫폼 송출에서의 일방성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영상을 업로드하고 시청자들의 피드백을 부지런히 확인해요. 공식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커뮤니티 등을 활용해 시청자가 원하는 부분을 추가로 제공하거나 답변하려고 해요.”

콘텐츠에 대한 그만의 철학을 바탕으로 시청자에게 진정 도움을 주는 방송을 만들어 내는 황 PD, 그가 생각하기에 PD를 포함해 영상 콘텐츠 제작자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경험은 바로 ‘실무’다. 방송국을 포함한 다양한 콘텐츠 제작 실무를 학습할 수 있는 곳에서 미리 경험하는 것이 큰 자산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여러 직군 중 자신에게 잘 맞는 역할이 무엇인지 미리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자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고도 역설한다.

“요즘은 방송국 입사만이 PD가 되는 유일한 창구가 아니잖아요. 아주 다양한 경로를 통해 PD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떠한 제작 환경에서든 현장에서의 실무를 미리 경험해 보는 것을 추천드려요.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자기소개서나 면접 등에서 잘 어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을 시작한 후에도 본인이 원하는 것과 지켜야 할 것을 잘 파악할 수 있어요. 스스로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박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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