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바늘 끝에서 태어난 예술, 세포 속에 피어나다 (한성대신문, 614호)

    • 입력 2025-09-2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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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5-09-26 18:23

▲문신이 목에 새겨져 있다. [사진 제공 : 오택진 교수]

‘문신 인구 1,300만 명 시대’가 도래했다. 문신업 종사자도 3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합법화하는 이른바 ‘문신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제도권 안에서 보다 안전한 시술 환경이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2013년 제정안 발의 이후 여러 차례 불발됐던 법안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자기표현의 한 방식으로 자리 잡은 문신은 피부에 바늘로 상처를 내고 색소를 주입해 글씨·그림·무늬 등을 새기는 행위다. 문신 기계의 바늘은 피부를 초당 수십 회가량 빠르게 찌르고 미세한 점들을 촘촘히 새기며, 그때마다 소량의 색소를 피부 속에 주입한다. 이렇게 새겨진 문신은 영구적인 효과를 지닌다.

색이 스며드는 피부의 세 층chevron

문신의 원리를 이해하려면 먼저 피부의 구조적 층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색소가 주입되는 층위에 따라 문신의 지속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피부는 바깥에서부터 ▲표피 ▲진피 ▲피하조직으로 이뤄져 있으며, 세 층은 서로 맞물려 피부의 형태와 기능을 유지한다. 가장 바깥의 ‘표피’는 외부 자극과 세균으로부터 신체를 지키는 방어막과 같다. 표피에서는 아래쪽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진 세포들이 점차 위로 밀려 올라오고 각질화돼 떨어져 나가는 과정이 반복된다. 때문에 눈썹 문신처럼 표피에 새긴 색소는 피부의 자연적인 각질 탈락 과정에 따라 시간이 지나며 점차 사라진다. 오택진(계명문화대학교 디자인융합학부 타투디자인전공) 교수는 “표피는 끊임없이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내고 오래된 세포를 떨어뜨리는 과정을 반복하며 피부 보호막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진피’는 피부 두께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중심 조직으로, 표피를 지지하며 다양한 생리적 기능을 담당한다. 진피 속 ‘교원섬유’는 피부에 강도와 지지력을, ‘탄력섬유’는 신축성과 탄력성을 제공하며 ‘기질’은 이들을 둘러싸 수분을 저장하고 세포 활동을 조절한다. 또한 진피에 분포한 혈관과 세포들은 표피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해 그 생명활동을 유지하게 한다. 오 교수는 “진피에는 혈관과 여러 세포가 분포해 있어 영양 공급 등 다양한 생리적 기능을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피부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피하조직’은 진피를 받쳐주는 ‘쿠션’ 역할을 수행한다. 주로 지방 세포로 이뤄진 이 층은 외부 충격을 흡수하고 체열 손실을 막아 피부 환경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피부는 대사 과정을 통해 체내에 들어온 이물질을 위쪽 층으로 밀어 올려 바깥으로 배출한다. 이 과정에서 세포가 끊임없이 만들어고 위로 이동하면 각질화돼 탈락한다. 이때 이물질도 함께 위로 이동해 제거된다. 피하조직은 섬유망이 느슨해 색소 입자를 단단히 붙잡아둘 구조적 지지가 부족하다. 이 때문에 피하조직에 주입된 색소는 오랜 시간 머무르지 못하고 쉽게 배출된다. 이갑석(중앙대학교 의과대학 피부과학교실) 교수는 “피하조직의 지방 세포가 열 손실을 막는 것은 지방층의 낮은 열전도도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대식세포가 품은 영원의 색

영구 문신은 피부 층위의 대사 과정을 거치지 않도록 표피를 뚫고 진피에 색소를 주입하는 시술이다. 진피는 세포 교체 주기가 거의 없어 색소가 장기간 머무를 수 있다. 이 교수는 “진피는 표피와 달리 분화돼 탈락하는 세포가 존재하지 않아 진피 내에 주입된 색소는 쉽게 제거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렇게 진피에 주입된 색소는 인체에 의해 외부에서 들어온 이물질로 인식돼 면역 반응을 일으킨다. 이때 진피에 위치한 체내 면역세포인 ‘대식세포(大食細胞)’가 동원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백혈구의 일종인 대식세포는 체내에 침입한 외부 물질인 색소를 항원*으로 인식해 해당 물질을 감싸 삼킨 뒤 분해한다. 색소 입자를 발견하면 대식세포가 세포 표면을 뻗어 그 입자를 감싸 안고 세포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이 교수는 “대식세포는 항원을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면역반응 전반을 조율한다”고 설명했다.

대식세포는 문신 색소를 삼켜도 일부를 분해하지 못한 채 그대로 남는다. 문신 색소는 탄소 입자나 금속 화합물처럼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인 성분으로 이뤄져 있어 체내 분해 효소로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식세포는 색소를 삼킨 뒤에도 색소를 제거하지 못하고 색을 띠는 입자를 품은 채 진피에 오랫동안 머문다. 색소를 삼킨 대식세포가 사멸하면 그 자리를 새로운 대식세포가 이어받아 다시 색소를 포식하고, 이러한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문신 색소는 피부 속에 거의 영구적으로 남게 된다. 이 교수는 “문신 색소는 대식세포의 각종 분해 효소에 영향을 받지 않아 대식세포가 색소를 포식한 상태로 오랫동안 유지된다”고 언급했다.

영구 문신은 진피까지 바늘로 색소를 주입하기 때문에 시술 시 통증과 출혈, 부종 등이 동반된다. 한번 새기면 자연적으로 사라지지 않아 제거가 어렵고, 제거를 위해서는 고비용의 레이저 시술을 여러 차례 받아야 한다. 오 교수는 “영구 문신은 흉터나 피부 손상 같은 부작용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시간과 함께 흐르는 색소

최근에는 이러한 영구 문신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체내에서 자연스럽게 분해·흡수돼 사라지도록 설계된 ‘생분해성 문신’이 대두되고 있다. 시술 방식은 기존 영구 문신과 동일하지만 사용되는 색소의 화학적 특성이 다르기에 피부에 영구적으로 남지 않아 보다 안전하고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 오 교수는 “생분해성 문신은 미용뿐만 아니라 혈당·체온·수분 모니터링, 수술 후 흉터 치료 등 의료 분야에서도 큰 잠재력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생분해성 문신의 색소는 ‘하이드로젤(Hydrogel)’ 성분으로 구성돼 있어 체내에서 자연스럽게 분해·흡수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하이드로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젤(Gel)’의 개념에 대해 알아야 한다. 젤은 액체 속에 작은 입자들이 퍼져 있는 상태에서 만들어진다. 이 입자들은 서로 달라붙어 그물처럼 엉키기 시작한다. 이렇게 엉킨 구조는 점점 단단해지면서 굳어지고 그 결과 흐르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는 젤이 된다. 하이드로젤은 이러한 젤에 수분을 함유한 물질로 인체에 무해하다. 대표적으로 마스크팩이나 콘택트렌즈 등에 하이드로젤이 활용된다. 오 교수는 “하이드로젤은 다량의 수분을 함유한 3차원 고분자 네트워크 구조”라고 설명했다.

하이드로젤 성분의 색소가 체내에 주입되면 지속적인 수분 흡수와 체온 노출로 인해 젤의 망상 구조가 점차 느슨해지며 안정성을 잃는다. 망상 구조는 입자가 서로 뒤얽혀 그물망처럼 연결된 3차원 구조다. 이 물질은 체내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수분과 열에 노출되면 구조가 쉽게 변형된다. 체온만으로도 분자 운동이 활발해져 분자 간 결합력이 약해지고 구조가 풀리며 쉽게 분해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오 교수는 “하이드로젤은 체온에 노출되면 구조가 서서히 약해진다”고 말했다.

하이드로젤의 구조가 약해지면 물 분자가 결합을 끊는 ‘가수분해(加水分解)’ 반응이 일어난다. 가수분해란 특정 화합물에 물을 끼워 넣어 2개 이상으로 쪼개는 화학 반응이다. 이 반응은 물 분자의 극성**에 의해 시작된다. 물 분자는 산소 원자가 음전하, 수소 원자가 양전하를 띠어 전기적 극성을 갖는다. 이러한 극성 때문에 물 분자는 서로 강하게 끌어당길 뿐 아니라 다른 분자와도 쉽게 상호작용한다. 하이드로젤을 이루는 방식은 ‘고분자 사슬’이라 불리는데 이는 다량의 작은 분자가 실에 구슬을 꿰듯 줄지어 이어져 있는 긴 분자 구조다. 물 분자가 고분자 사슬에 접근하면 전하를 띠는 수소 이온(H⁺)과 수산화 이온(OH⁻)으로 나뉘어 각각 결합 부위에 달라붙어 화학 결합을 끊는다. 이처럼 물의 이온화로 생성된 이온들이 결합을 절단하면서 고분자 사슬이 점차 잘려 나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고분자 사슬은 점차 단량체*** 형태로 분해된다. 이 교수는 “체내 분해 효소가 가수분해 반응을 촉진해 분해 속도를 높인다”고 덧붙였다.

분해 후 단량체는 대식세포가 포식해 제거하거나, 혈관계를 통해 간·신장으로 운반돼 소변이나 땀으로 내보내진다. 이를 통해 색소 입자는 체외로 배출돼 점차 희미해지며 흔적 없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이 교수는 “크기가 작아진 분자는 대식세포에 의해 포식·분해되며, 일부는 몸속 배출 경로를 통해 밖으로 배출된다”고 밝혔다.

▲손바닥에 부착한 전자 문신 [사진 제공 : 스티브박 교수]

나아가 심전도·피부 수분량 등 각종 생체 신호를 측정하기 위한 신기술인 ‘전자 문신’까지 개발되며 문신 기술은 한층 진화하고 있다. 전자 문신은 얇은 센서를 피부에 부착해 생체 신호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며 심전도 측정·피부 수분량 분석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오 교수는 “전자 문신은 기존 웨어러블 기기보다 더 안정적으로 연속적인 데이터 수집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이어 이 교수는 “전자 문신은 피부에 부착된 센서로부터 중요한 생체 정보를 수집해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항원 : 체내에 침입해 면역 반응을 일으키게 만드는 물질

**극성 : 양전하와 음전하를 모두 띠는 성질

***단량체 :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기본 단위체

박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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