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자의 외교 노트> 핵 협상 26시간 후, 포화에 휩싸인 이란 (한성대신문, 620호)

    • 입력 2026-03-23 00:02
    • |
    • 수정 2026-03-23 00:02

또다른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지난 28일 오전 10시경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과 군사 거점을 겨냥해 대규모 공습을 단행했다. 같은 날 이란도 미사일과 드론 등을 동원한 즉각 반격에 나서며 군사 충돌을 격화시켰다. 이번 충돌로 호르무즈 해협과 주요 에너지 시설이 위협받으면서 세계 원유 공급망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는 미국과 이란 간의 제3차 핵 협상이 결렬된 지 불과 26시간 만에 발생한 일이다. 해당 협상에서 미국은 이란에게 핵 시설 완전 폐기와 우라늄 농축물 국외 이송 등을 요구했다. 더불어 협상이 결렬될 경우 군사적인 대응을 고려할 것을 공개적으로 암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란은 완전 폐기 요구를 거부하며 협상이 결렬됐다. 이에 미국은 이스라엘과 함께 준비해둔 군사 전력을 동원해 이란 타격을 감행했다. 최기인(상지대학교 국가안보학부) 교수는 "이번 전쟁은 협상 결렬의 결과라기보다는 처음부터 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전제로 협상과 압박이 동시에 나타난 구조"라며 "외교와 군사 대응이 분리되지 않은 채 병행된 점이 이번 사태를 빠르게 군사 충돌로 끌고 갔다"고 설명했다.

공습 당일,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피살됐다. 이란의 국가안보위원회 사무총장, 정보부 장관 등의 고위 인사도 잇따라 사살됐다. 학교나 병원, 민간과 군사 시설 등도 가리지 않고 타격을 입었다. 이혜전(중앙대학원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공습을 통해 정권 핵심 인사와 통제 체계를 직접 겨냥해 국가 운영의 중심축을 흔들었다"고 말했다.

이란 정부는 공습을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며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강경 대응 의지를 드러냈다. 실제로 이란은 드론과 탄도미사일을 동원해 중동 일대의 미군 기지와 이스라엘 관련 군사시설에 공격을 가했다. 이희서(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교수는 "이란은 미국에 강력하게 대응해 추가 공격을 억제하려는 의지와 함께 국내 여론을 결집시키는 효과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공격한 배경에는 오랜 핵 갈등이 자리한다. 2015년 미국과 이란 등 주요국은 '이란 핵 합의'를 통해 이란의 우라늄 농축 활동과 핵시설 가동을 제한하는 등의 합의를 체결했다. 그러나 2018년 미국은 해당 합의가 중동 내 영향력 확대를 막지 못한다고 판단해 탈퇴한 바 있다. 이후 지난해 6월 22일, 미국과 친미 국가인 이스라엘은 이란 내 3곳의 핵시설을 폭격하며 선제 타격했다. 이번 공습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분석이 잇따른다. 최 교수는 "이란의 핵·미사일 능력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전략처럼 보인다"며 "지도부와 핵심 거점을 동시에 겨냥해 공격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조 배경에는 중동 내 영향력 유지라는 판단이 자리한다. 미·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능력 강화가 중동 내 힘의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키워왔다. 동시에 이란의 영향력 확대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중동 동맹 체계와 에너지 공급망 안정성에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핵 개발 억제와 군사적인 견제를 중심으로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혜전 교수는 "미·이스라엘은 과거부터 이란의 핵 개발 능력을 견제해왔다"고 전했다.

전장의 범위가 확장되며 이번 사태가 장기전 양상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지난 15일,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두바이 국제공항이 일시적으로 운영을 중단했고, 공항 인근 연료 저장 시설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항공편 운항이 지연·취소됐다. 이어 지난 19일 이란이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의 20%를 담당하는 카타르의 라스라판 생산 지대에 미사일을 발사하며 공격 범위를 넓혔다. 최 교수는 "이란이 친미 국가이자 미국과 경제·안보적으로 밀접한 두바이를 겨냥함으로써 미국 경제를 압박하려는 의도와 맞물린다"고 덧붙였다.

공격 범위가 확장되는 가운데, 이란의 해협을 앞세운 경제 압박이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 일대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다수 국가의 상선과 유조선이 항로를 변경하거나 운항을 중단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경로가 위축되며 해상 물류 전반에 불확실성이 나타나고 있다. 이희서 교수는 "이란은 국제 유가를 상승시키고 세계 경제에 불안을 조성함으로써 서방의 군사 행동에 부담을 주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동 사태의 충격이 한국 경제로 번지고 있다. 중동의 핵심 원유 수송로와 에너지 시장이 불안정해지면서 국제 유가 상승과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등 세계 경제 전반에 파급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동 사태 이후 한국의 휘발유 가격은 2월 1692원에서 3월 1,833원으로 급증했다. 중동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원유 수입 구조상 에너지 수급 불안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혜전 교수는 "우리나라 국토부에서 중동 대응반을 운영하며 상황을 점검 중"이라며 "향후 국제 유가 변동과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라 국내 물가와 산업 전반의 부담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임지민 기자

[email protected]

댓글 [ 0 ]
댓글 서비스는 로그인 이후 사용가능합니다.
댓글등록
취소
  • 최신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