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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물결 속에서 교육도 예외일 수 없다. 이 같은 흐름 아래 ‘융합교육’이 등장했다. 둘 이상의 학부나 학과가 결합해 독립적인 교육과정을 구성·운영하는 방식이다. 다변화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융합형 인재를 만든다는 목적하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외연이 넓어진 만큼 그 깊이는 도리어 얕아지고 있다. 융합교육을 도입한 학과는 개설과 폐지를 되풀이하며 ‘하루살이’처럼 사라지고 있다. 교육의 깊이가 약화된 원인은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 그 방안을 모색해 봤다.
김혜윤 기자
융합교육은 여러 학문 분야의 지식, 개념, 기능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실질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교육 방식이다. 이는 전자전기, 화학공학 등 실용적으로 학습한다는 목표를 갖던 기존의 응용학문을 넘어, 서로 다른 학과 간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가치와 학습 경험을 창출한다는 목표를 지닌다. 화학과 신소재학, 물리학 등을 결합해 바이오 기술이라는 새로운 학문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박원철(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응용바이오학과) 교수는 “융합교육은 서로 다른 학문 분야의 지식을 연결해 새로운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교육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급변하는 사회·기술 환경 속에서 단일 학과 지식만으로는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인식하에 정부는 대학에 ‘융합학과’를 적극 도입하기 시작했다. 2016년 정부의 대학 학사제도 개편 방안 공개 후 정부·대학·산업체 간 연계를 강화하는 융합체계를 확산시키는가 하면 최근에는 AI를 중심으로 한 융합학과를 전면화하고 있다. 지난해 ‘디지털 인재 양성 종합방안’을 바탕으로 AI+X, 즉 AI를 기반으로 학문과 산업을 추가로 연계하는 교육 체계로의 재편도 본격화되는 추세다.융합학과는 문제 해결 역량 함양을 위해 프로젝트 기반 학습을 중심으로 한 수업을 지향한다. 다양한 학문 분야의 기초를 이수한 뒤 이를 실제 문제 상황에 적용하고, 학과 간 협업을 통해 복합적인 해결 방안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이주열(남서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융합교육은 기존의 전공 중심적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학문의 경험을 통해 융합적 사고를 기르고 자신에게 맞는 분야를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조에 맞춰 정부는 융합교육의 확산을 위한 대학 재정지원도 전폭적으로 제공하며 융합학과 수의 증가를 견인하고 있다. 2025년 국가연구개발(R&D)에 약 35조 3천억 원을 편성했으며, 올해 10개의 지역거점 대학을 대상으로 융합교육을 지원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교육개발원의 「대학의 융합교육, 현황과 과제: 융합학과 운영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융합학과는 2016년 178개에서 2023년 557개로 증가했다.
그러나 신설되는 융합학과가 어떠한 기준과 정의에 따라 학문을 결합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틀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재 융합교육은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드는 통합적 접근을 지향하는 개념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그 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설정돼 실질적인 기준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인 개념과 기준은 각 대학에게 자율적으로 맡기며 단순히 기존 교과목을 나열하거나 명칭만 변경한 경우에도 ‘융합’으로 인정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상술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의 융합학과는 기존 교육과정에 명칭만을 덧붙인 형태가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박 교수는 “일부 대학에서는 융합교육의 철학과 목적에 대한 충분한 논의보다 제도와 조직이 먼저 움직인 측면이 있다”고 답했다.
이에 교육과정이 부실한 모습도 확인된다. 각 교과목은 산업 연계, 문제해결, AI 활용 역량 등 융합교육의 다양한 목표를 반영해 구성되지만, 이를 학과 차원에서 통합·조율하지 못하고 수업이 개별적으로 운영된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융합교육을 실행하는 과정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과 형태만 먼저 만들어질 경우 교육내용의 지속성과 안정성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과를 통폐합하는 극단적인 방식에 그치기도 한다. 교육과정을 기획하고 학과를 신설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학과를 통합해 교육과정을 병렬적으로 구성한다는 내용이다. 유예림(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새로운 교육편제단위가 신설되는 것보다 학과 또는 단과대학명을 단순 변경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더 많았다”고 덧붙였다.
융합교육의 실행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면서 단기간 내 폐지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정부의 재정 지원 사업이 추진 동력을 제공하고 있지만, 지속적인 운영 체계를 유지하지 못하면서 실제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상술한 한국교육개발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신설되는 융합학과 대비 폐지되는 학과의 비율은 2016년 11.8%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해 2023년 기준 30.9%에 달했다.
단일 대학 차원에서는 융합교육 추진에 한계가 있어 그 틀을 갖추기 어렵다는 분석이 존재한다. 현재 융합교육은 대학이 개별적으로 연구해 설계·운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해 대학 간 정보 공유와 공동 발전이 필요하지만, 현실에서는 독자적으로 진행돼 대학 자체지원만으로는 융합교육을 연구하고 기획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교육을 실시하는 대학 내에서도 교육을 연구하고 주도하는 주체가 없다는 점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융합학과의 경우 여러 학과의 학문이 합쳐지다 보니 주관부서가 불명확하고 학과 간 협의 구조가 미비하다. 이에 교수자 사이에서도 교육 목표와 내용을 통합하기 어려워 동일 학과 내에서도 교과목 간 연계성이 부족하고 수업 내용이 분절된다는 견해다. 이주열 교수는 “기존 학과 중심의 대학 조직체계에 교수가 소속되는 구조에서는 융합학과 활성화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통폐합 형태의 융합학과 증가는 정부의 편중된 지원 방식에서 비롯됐다. 정부의 지원체계는 대학이 융합학과를 도입하면 그에 따른 재정적 지원을 하는 방식이다. 융합학과의 경우 교육체계 연구, 인프라 마련 등 재정적 소비가 커 사전에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정책은 사후 지원식으로 이뤄지다 보니 우선 학과를 통합한 후에야 교육체계를 모색한다는 지적이다. 이주열 교수는 “정부의 평가 방식은 대학이 새로운 융합학과를 빠르게 도입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융합교육의 본질적인 목표인 문제 해결 능력이나 학문 간 협력의 질적 수준을 충분히 평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융합학과의 낮은 지속성은 대부분 정부 재정 지원 중심으로 추진된 융합교육 도입에서 기인한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자발적인 의지보다는 대학의 정부에서 제공하는 대학재정지원사업이 융합교육 도입 유무를 고려하기에 도입했다는 내용이다. 조민호(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컴퓨터소프트웨어학과) 교수는 “융합교육이 현장에서 활발하고 내실있게 운영되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의 대학이 마지못해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교육의 일관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학 간 협력 방안도 제시된다. 대학 간 협력해 공동 교육과정 설계 및 학과 운영을 위한 효과적인 교육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유 연구위원은 “대학들은 상호자원 공유를 활성화하기 위해 대학 간 협력 문화를 조성하고, 정부는 현재 추진 중인 COSS, HUSS 등의 대학 간 융합교육 컨소시엄을 중장기 계획에 기초해 꾸준히 시행할 수 있도록 관련 재정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 내에서 융합교육의 방향성을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원활히 추진하려면, 기존 학과 중심 조직체계를 유연하게 재편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한 명의 교수자를 여러 학과에 소속시켜 교수자 간 경계를 허물고 협업을 촉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열 교수는 “기존 학과 체계를 벗어나면 융합학과와 학사제도 유연화가 보다 신속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융합학과 지원 방식을 사후 지원 중심에서 사전 계획 기반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즉, 대학이 융합학과를 설립하기 전에 교육과정, 연구 인프라 등 전반적인 운영 계획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가 재정과 행정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융합교육의 범위, 수준, 운영 방식에 대한 명확한 평가기준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대학이 자체적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지만, 전반적인 조건과 일정 수준의 기준을 정부에서 제시해야 평균적인 교육의 질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앞으로의 대학 평가체계는 학생들이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량을 기르게 됐는지와 같은 질적인 요소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