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이야기> 아름다운 무덤, 의릉 (한성대신문, 521호)

    • 입력 2017-03-27 15:12

한성대입구역에서 1111번 버스를 타고 새석관시 장에 내린다. 조금 경사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 예술종합학교 후문이 보인다. 후문 내의 산책로를 따라 정문으로 가다보면 문화재보호구역이 나온다. 그것이 바로 의릉이다. 의릉은 경종과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선의왕후의 능이다. 왕릉이라면 누구 나 웅장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의릉(懿陵)을 풀이하면 ‘아름다운 무덤’이 된다. 하지만 의릉을 직접 보면 왕릉치고는 초라한 모습에 실 망할 수도 있다. 이는 후대의 왕이 선대왕의 권위에 따라 능을 만들었기 때문인데, 경종 재위 시절 그의 권위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의 왕릉은 능을 조성하던 당시 나라를 통치하던 왕이 풍수지리에 따라 도성(사대문)을 기준으로 하여 100리 내 명당에 조성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경종의 뒤를 이은 영조가 경종의 장례를 준비했고, 조선시대 당시의 지명인 양주 중량포 천장산에 능을 조성했다. 이후 행정구역명이 개편됨에 따라 현재는 성북구의 소재가 되었다.
모든 조선의 왕릉 중 의릉이 지닌 특이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봉분을 위아래로 조성했다는 것이다. 보통은 좌우로 나란히 하거나, 한 봉분에 왕 과 왕비를 같이 모신다. 하지만 의릉은 풍수지리상의 이유로 각 왕릉을 위아래로 배치했다.
다른 한 가지는 석물조각에서 찾을 수 있다. 가 죽 옷을 걸치고 있는 무석인이 표범꼬리를 달고 있 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표범 가죽은 예부터 용맹한 장수를 상징하는데, 왕과 왕비의 영혼을 굳건 하게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의릉의 석물은 궁중에서 활동하던 장인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조각 기법이 우수하고 각종 문양이 섬세하다. 또한 모란, 불로초, 난초 등 갖가지 길상문이 다양하게 조각되어 매우 화려하다.
다른 조선 왕릉들처럼 의릉 역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가치가 상당히 높다. 그러나 우리는 의릉 조성 당시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다. 5·16 군사쿠데타 직후부터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1962년 중앙정보부가 이전을 목적으로 의 릉의 능역 13만여 평을 무상 임대하여 사용하다가, 1972년부터 정식으로 관리했다. 중앙정보부가 능역 내에 위치한 이후부터 의릉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그사이 수복방, 재실 등 능의 관리나 제사를 위한 건물은 소실되었으며, 의릉의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 연못을 만들고, 왕릉의 우측 능선을 깎아 축구장을 조성하는 등의 훼손이 있었다.
 훼손에 몸살을 앓던 의릉은 1995년 중앙정보부 건물이 이전되면서 접근 금지 구역에서 풀려났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 이후 의릉 복원 사업이 추진됐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외래 수종 제거, 인공 연못 철거 등 의릉 복원 공사가 진행됐다.
현재 문화재청 산하 조선왕릉관리소 의해 관리 되고 있는 의릉은 능침 바로 아래 정자각까지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고, 능침은 별도의 허가를 받은 후 출입할 수 있다. 시민들의 품에 돌아오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던 의릉. 다시는 ‘아름다운 무덤’이라 는 본래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도록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

▲ 의릉의 일부인 경종의 능

박원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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