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땅의 주인은 사람? 지공주의와 희년사상 (한성대신문, 522호)

    • 입력 2017-04-17 00:00
▲고대 유대사회에서는 희년이 되면 노예해방, 부채탕감, 토지반환이 이루어졌다.
보통 사람들이 신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생각할 때, 흔히 신학은 자신들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신학은 말 그대로 신에 대한 학문으로서, 학문적으로 신에 대해 탐구하고 그를 통해 신과 가까워지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학은 일반 세상(속세)과는 분리되어 있는 학문이며, 어떤 특수한 세상(종교관)에서 통용되는 학문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이런 경향이 존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신학은 단순히 신 그 자체만을 연구하는 학문은 아니다. 말하자면 신학은 인간의 연결고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학은 어떤 방식으로 신과 우리를 연결시킬 수 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희년사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희년사상구약성서레위기에 따라 고대 유대 사회에서 실행되었던 희년을 중심으로 사회정의를 이룩하려는 사상이다. 희년이란 50년마다 돌아오는 특수한 주기로, 희년이 되면 모든 종들은 해방되고 부채가 면제되며, 땅들은 본래의 주인들로 반환되었다. 김유준(연세대학교 교회사) 교수는 광복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일제가 패망하고 찾아온 광복은 우리민족이 일제로부터 진 모든 부채가 탕감되고,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며, 빼앗긴 땅을 되돌려받는 희년과 같은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부채탕감’, ‘노예해방’, ‘토지반환으로 정리할 수 있는 희년사상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토지반환이다. 김 교수는 토지반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람들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 노예해방 때 자유의 몸이 된 이들이 스스로 옛 주인을 찾아와 다시 노예가 되길 청했다는 일화가 있듯이,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더라도 토지라는 생산수단이 없으면 다시 누군가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토지가 반환되어야 노예해방부채탕감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희년사상을 주창하는 신학자들은 한국사회를 정의롭지 못한사회라고 생각한다. 김 교수는 주택보급률은 110%를 상회하는데 본인 소유의 집을 가진 국민은 50%에 못 미친다고 말하며, “상위 1%의 국민이 국토의 50.7%, 상위 10%의 국민이 국토의 98.3%를 소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희년사상에 따르면 대다수의 국민이 사실상 경제적 노예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정의롭지 못하다라고 평가하는 선에서 희년사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희년사상은 자연스럽게 지공주의로 연결된다.
▲희년사상과 뜻을 같이하는 지공주의는 미국의 헨리 조지가 처음 주창했다
지공주의란 토지에 대한 권리를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상이다. 신학자들은 김 교수의 말처럼 저 하늘이 내 것이니 내리는 비나 눈이 모두 나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듯이, 신에 의해 창조(최소한 인간들이 만든 것은 아닌) 땅에 멋대로 선을 그어놓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토지에 대해 가지는 권리는 평등하며, 최소한 토지 임대료인 지대는 공유해야한다. 지대는 노동을 통해 얻는 대가가 아닌 토지를 대여해주는 것만으로 얻는 소득이므로, ‘본래의 주인인 모든 국민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정의로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1년에 지대로 발생하는 수익은 총 300조 원이며, 이는 거의 대한민국의 1년치 예산과 맞먹는 금액이다. 만약 이런 지대가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게 분배된다면 4인 가족 기준, 1년에 2,400만 원의 지대가 배분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모두에게 지대를 배분하는 것은 무리한 이야기이다. 토지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불로소득에 대한 세금을 끌어올리고, 서민들의 근로소득세금를 낮추는 것이 희년사상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하는 방안이다.
이렇듯 신학자들은 나름대로 신의 율법 인간의 삶에 연결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김 교수는 성경에 사랑 500여 회 언급되지만, ‘가난과 같은 경제 관련 용어는 2,350여 회 언급된다고 말하며, “신학은 사람의 삶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신학은 ()’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분명히 지상에 땅을 디디고 살아가고 있는 ()’적인 부분까지 포괄하고 있다고 말한다. 과연 신학은 우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종교 역시 우리 사회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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