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더 이상 침묵은 금이 아니다 (한성대신문, 531호)

    • 입력 2018-03-05 00:00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온도계가 영하 10도 이하를 밑도는 건 예삿일이 되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혹독한 동장군마저도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피워 올린 뜨거운 횃불을 막아낼 수 없었다. 지난 129일에 있었던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백을 시작으로, 이후 연출가 이윤택, 배우 조민기, 시인 고은 등의 성추문이 피해자들의 입을 통해 잇따라 알려지면서 미투(#MeToo)의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폭로는 쭉 있어왔지만, 지금과 같이 파급력이 크지 않았다. 이들의 행동을 막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대부분 묻혔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서지현 검사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임은정 검사가 당시 검찰국장이었던 최교일 의원이 피해자가 가만히 있는데 왜 네가 나서느냐며 성추행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고 검찰 조사에서 증언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미투 운동에 동참한 피해자들은 그동안 침묵하던 관행을 깨고 계속해서 저항을 이어나갔다. 이는 다른 피해자들의 추가 폭로로 이어졌고, 가해자들의 사과를 이끌어냈다.
사실 미투 운동과 같이 침묵을 깨고 사회 부조리를 성토해 가해자가 법의 심판을 받게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우리는 한때 국가 권력이 최순실이라는 민간인에게 넘어간 장면을 목도한 바 있다. 사실 비선실세는 최순실 이전에도 있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소통령이라 불렸던 김현철이, 노무현 정부 때는 봉하대군노건평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그 사실을 밝히고 개선하는 대신 쉬쉬하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는 침묵하지 않고 거리로 나섰고, 결국 비선 실세를 무너뜨렸다. 침묵의 금기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이쯤에서 우리는 침묵은 금이다라는 속담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물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말을 경솔하게 하지 말자는 맥락에서 받아들이면 이만큼 좋은 속담이 없다. 반면, 작금에 이르러 불의에 저항하는 입장에서 이 격언을 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잘못된 것을 목격했을 때 입을 굳게 다물고 모르는 척하면 편하다. 하지만 사회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나의 침묵으로 사회의 부조리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 침묵은 돌덩어리만도 못하다. 불의를 본 이상, 더 이상 침묵은 금이 아니다.
 

윤희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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