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화정> ‘미투’에 임하는 자세 (한성대신문, 531호)

    • 입력 2018-03-06 15:03

지난 겨울 제주도에 다녀왔다. 서쪽 해안가에 머물렀는데 안타깝게도 아름다운 해변이 해양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거센 바람이 분 다음날이면 상황은 훨씬 심각했다. 제주도가 해류의 이동 경로에 자리한 터라, 바다 깊숙한 곳에 가라앉았던 온갖 쓰레기들이 해안가로 몰려온 탓이었다. 인간의 욕망의 잔재들이 추했고 쉽게 손을 댈 수 없는 엄청난 양이라 그것을 드러낸 바람과 파도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요새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미투’(#MeToo)를 보며 제주도의 쓰레기가 생각났다. 창원지방검찰청 서지현 검사가 자신이 겪은 성희롱 사건을 폭로한 이후 나도 성폭력 희생자라며 성폭력 가해자를 고발하는 미투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문화계로 옮겨 붙은 그 불은 학계와 가장 도덕적이어야 할 종교계까지 이어져, 마치 알 수 없는 힘이 대양을 뒤집어 놓은 듯 사회 곳곳에 쌓였던 쓰레기들이 추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성폭력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며 2016년 강남역 사건이 보여주듯 이 문제를 고발,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해왔다. 하지만 미투운동은 다른 양상을 보인다. 피해자들은 피해를 고발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책임이 오롯이 가해자에게, 또 가해자를 용인한 사회에 있음을 말하고 있으며, 이는 성폭력의 책임을 여성 탓으로 돌리며 침묵과 수치를 강요해온 오래된 억압기제를 깨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전기가 되고 있다. 사회적 불의에 대한 우리사회의 도덕적 감수성 향상이라는 바탕에 엘리트 검사의 용기 있는 발언이 강요된 침묵과 죄의식을 벗어버리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이 운동에 여러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억울한 가해자가 나올 가능성부터, 나아가 성폭력 가해자라고 그의 작품을 모조리 쓰레기로 볼 수 있냐는 근본적 의문까지. 숙고가 필요한 질문이지만, 점잖은 우려의 목소리들이 어렵게 용기를 낸 피해자들의 발언을 막을 수도 있다는 점이 더 경계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때가 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늘 두려움을 동반한다. 하지만 그 두려움이 변화를 막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바닷가 쓰레기가 추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바다로 돌려보낼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할 일은 함께 외치는 것이다. Me Too & With You.

김영아(교양영어교육과정) 교수

댓글 [ 0 ]
댓글 서비스는 로그인 이후 사용가능합니다.
댓글등록
취소
  • 최신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