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복원의 마술사’ 한지, 유럽을 사로잡다 (한성대신문, 539호)

    • 입력 2018-11-19 00:00

 ‘지천년견오백(紙千年絹五百)’. 한지는 천년을 가고, 비단은 오백 년을 간다는 말이다. 예로부터 한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성질이 변치 않는 우리의 고유한 지류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전통 한지가 유럽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2016년 말, ‘신현세 전통한지 공방에서 제작된 한지가 이탈리아의 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중앙연구소(ICPAL)’로부터 문화재 복원 재료로 적합성 인증을 받은 이후, 이탈리아 문화재 7점이 한지를 이용해 복원된 것이다. , 교황청 산하 바티칸 박물관에 소장된 6점의 문화재 복원에도 한지가 사용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지 세계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와 같이 한지가 해외에서 우수성을 입증받은 비결은 무엇일까?

▲최근 유럽에서 문화재 복원 용도로 쓰이고 있는 한지는 국내 문화재 복원에도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사진은 한지로 복원된 우리 문화재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먼저, 한지의 주재료인 닥나무에 그 비결이 있다. 닥나무에는 리그닌(Lignin)’이라는 성분이 함유돼 있는데, 이 성분은 섬유를 수분과 자외선으로부터 취약하게 만든다. 그런데 한지는 리그닌이 10% 미만으로 함유된 1년생 닥나무로만 만들어지기 때문에 종이의 질과 보존성이 우수하다.
다음으로, 한지는 천연 표백법을 활용해 만들어진다.
 이에 대해 전진숙 한지공예가는 이 과정에서 순백색의 우량 종이를 제조하기 위해 잡색을 띤 비섬유질을 완전히 제거하는 천연 표백법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천연 표백법 중 냇물 표백법은 천연 표백법의 대표적인 방법으로, 흐르는 물에 닥나무의 잿물기를 씻고 2~3일 정도 햇빛에 말리는 방식이다. 여기서 과산화수소(H2O2)와 오존(O3)이 발생돼 산화표백이 일어나고, 이는 섬유가 손상되지 않고 특유의 광택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마지막 비결은 한지 뜨기 과정과 마무리 공정 도침에 있다. 우리나라 한지 뜨기 기법 중 전통 기법인 외발뜨기는 섬유를 좌우 일정한 비율로 배열하는 것이다. 한지는 이 기법으로 인해 섬유 조직의 좌우 방향이 서로 90도로 교차하게 되며 매우 질긴 성질을 갖게 된다.
 또한 제조의 마무리 공정인 도침은 한지의 질을 더욱 높여준다. 이는 종이 표면을 더욱 치밀하게 함과 동시에 평활도(종이 표면의 매끄러움 정도)를 향상시키고 광택을 내는 과정이다. 이때 풀칠한 종이를 여러 장씩 겹쳐 놓고 디딜방아 모양의 도침기로 골고루 내리치게 되는데, 이는 우리 조상들이 세계 최초로 고안한 종이 표면 가공 기술이다.

▲한지의 우수성 비결 (사진제공: 원주한지테마파크 )

 이 같은 비결로 한지는 수준 높은 보온성보존성통풍성을 갖게 된다. 특히, 한지는 제조과정에서 원재료, 두께, 색도 등의 특성을 달리할 수 있어, 복원 작업 시 문화재에 따라 적합한 한지를 사용할 수 있다. 이에 더해 한지가 기존 문화재 복원 작업에 사용되던 일본 종이 화지보다 내구성이 우수한 것도 세계적으로 각광받게 된 데 한몫했다.
 한편, 윤승락(경남과학기술대학교 인테리어재료공학과) 교수는 현재 한지 제지술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이 없는 데다가, 한지 제조 종사자들의 연령까지 높아 이 기술이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다 기술 계승이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우리 조상의 정취와 생활의 멋이 듬뿍 담겨있는 한국 고유의 전통 한지’.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이어받은 문화유산 한지에 자긍심을 가지고 맥을 이어나가는 것은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장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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