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우리의 소리가 눈송이가 되어 세상을 뒤덮을 때까지 국악음반사 ‘레이블 소설’ 설현주 대표 (한성대신문, 544호)

    • 입력 2019-04-15 00:00

24절기 중 20번째 절기, 소설(小雪). 이날은 첫눈이 내린다고 해서 ‘소설’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즉, 소설은 일생 형체를 이루지 않고 바다로 흘러들어가, 증발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대기를 떠돌던 물이 처음으로 ‘눈송이’라는 형태를 이루는 날이다. 이렇게 물이 눈으로 변해 사람들에게 다가가듯, ‘레이블 소설’ 대표 설현주(35) 씨는 물과 같이 형체가 없는 ‘국악’을 눈송이처럼 음반에 담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설 대표는 작년 6월 1일부터 국악전문음반사인 ‘레이블 소설’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레이블 소설은 전통음악을 음반으로 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악인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음반의 각종 프로모션과 국악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레이블 소설을 설립하기 전, 설 대표는 악단에서 10년 동안 활동했던 ‘국악인’이었다. 그는 다른 악기의 반주를 담당하는 타악기를 전공했다. 반주자의 역할상 그는 전통음악의 많은 장단을 이해하고 있어야 했고, 합주를 함께하는 다른 악기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전공 덕에 국악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설 대표는 기존에 존재하는 국악 음반들에 많은 아쉬움을 느꼈다.

“아무래도 전통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은 국악기가 가진 본연의 소리를 알기 힘들어요. 그래서 기존 음반을 들어보면 악기가 내는 소리인데도 잡음인 줄 알고 삭제된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런 점이 전공자 입장에서는 매번 아쉬웠어요.”

▲연주자들이 음반 녹음을 위해 각자 악기 를 다루고 있다. 사진 제공 : 레이블 소설

이런 기존 음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그는 같은 타악기를 전공한 국악인들과 함께 자체적으로 국악 음반을 제작하게 됐다.

“녹음실은 많기 때문에 녹음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국악도 어디서든 작업할 수 있어요. 하지만 국악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국악을 ‘제대로’ 녹음하기는 힘들어요. 악기마다 소리가 나오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마이크 위치를 신중하게 설정해야 하고, 공연을 위한 연주와 녹음을 위한연주가 어떻게 다른지 연주자들에게 알려줘야 하거든요.”

설 대표는 국악 음반 작업과 함께 앨범기획, 디자인, 유통, 홍보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레이블 소설은 ‘국악음반사’라는 이름 외에도 ‘국악전문기획사’란 이름으로도 불린다.

“악단에 있을 때, 악기 연주 외에도 많은 일을 했었어요. 공연 기획, 디자인까지 신경 썼죠. 하지만 그중에 작은 거 하나 고치는 것조차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그 점이 참 답답했어요. 그래서 ‘내가 모든 과정을 한번에 관리하면서 운영한다면 훨씬 수월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이 지금의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설 대표는 국악 중에서도 전통음악을 최우선으로 한다. 전통을 먼저 잘 알아야만 창작국악 이나 퓨전국악도 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설립한 지 갓 300일을 넘긴 레이블 소설은 지금까지 60개의 음반을 발매했다. 일주일에 하나 이상 음반을 발매한 셈이다. 이렇게 의욕적으로 음반 제작을 하는 모습을 보면 국악 음반 시장이 꽤 규모가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설 대표가 뛰어든 시장은 그야말로 ‘황무지’가 따로 없다. 1년에 최소 4,000개 이상의 음반이 나오는 대중음악에 비해, 국악 음반은 250개가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국악인이 음반작업을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실용음악이나 인디음악가들은 음반을 만들어 프로필을 채우면서 시작해요. 그런데 국악은 그런 문화가 아니에요. 음반을 내기보다는 스승이나 국악 관련 단체에서 인정받으려고 하는 문화죠. 수학하던 스승의 공연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알리기도 해요.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국악인이 음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더라고요.”

하지만 설 대표는 음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음반을 통해 국악의 ‘데이터’를 정립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국악은 오랜시간 이어져온 전통음악이지만, 지금까지도 완벽하게 국악을 총망라한 국악자료집은 없다.

“가야금만 해도 ‘유파’라고 해서 전수자마다 리듬이 모두 달라요. 가야금뿐만 아니라 악기, 판소리마다 종류가 정말 많은데, 이것들이 제대로 정리된 자료가 없어요. 그래서 음반 작업을 통해 이런 데이터들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설 대표는 SNS 계정에 빼먹지 않고 음반에 수록된 곡을 소개한다. 단, 곡을 소개할 때는 아티스트의 프로필도 함께 게시한다. 음반과 국악인들을 모두 홍보하기 위함이다. 그는 음반 작업이 국악의 데이터 수집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국악인에게도 많은 도움으로 이어진다고 이야기한다.

“요즘에는 음반을 내는 것이 국악인에게도 득이 돼요. 음반을 발매하면 프로필에 쓸 이력이 생기는데, 그 프로필을 보고 국악 방송 섭외가 들어오고 공연 기회도 생기더라고요. 음반의 발매로 국악인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된 거죠.”

▲레이블 소설 사무실 한편에 국악기들이 놓여 있다. 이 악기들은 레이블 소설과 협력하는 업체로부터 제공받은 것이다.

한편, 설 대표는 수익을 얻기 힘든 국악인들의 현실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의 주변에는 생계를 위해 음악을 포기하고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국악 전공자들이 많다고 한다. 게다가 대학에서도 국악 관련 학과가 사라지고 있어 전승자들도 적어지고 있다. 날이 갈수록 국악인의 숫자는 점점 더 줄어가는 실정인 것이다. 이를 막고자 설 대표는 특히 청년 국악인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청년들이 국악계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저희가 내는 음반이 국악 관련 정책이나 큰 틀을 바꿀 수는 없겠죠. 그렇지만 이일이 언젠가는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고 문화까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소수의 국악인 말고도 모든 국악 전공자들이 다함께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 또한 마땅한 수입이 없는 것은 여느 국악인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설 대표는 지금의 일이 그저 즐거워서 한다며 웃어 보였다. 비록 지금은 그가 하는 일이 이제 막 내리기 시작한 첫눈과도 같을지 모른다. 그러나 설 대표로 시작된 이 눈송이들은 차곡차곡 땅에 쌓이기 시작할 것이고, 머지않은 그 어느 날 마침내 온 세상을 새하얗게 뒤덮을 수 있을 것이다.

이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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