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홍길동전』의 저자는 허균이 아니다? (한성대신문, 545호)

    • 입력 2019-05-13 00:00
▲『지소선생문집(芝所先生文集)』 속 「노혁전(盧革傳)」. 서두에는 “성은 홍(洪)이고, 그 이름은 길동(吉同)”이라는 의미의 문장이 쓰여 있다. 사진 제공 : 이윤석 전 교수

조선 3대 의적 중 하나이며 서자출신의 비애를 품었던 홍길동. 누구나 다 아는 이 이야기가 담긴 『홍길동전』은 흔히 ‘허균’이 지은 ‘최초의 한글소설’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더이상 우리가 아는 『홍길동전』의 저자가 허균이 아니라고 말한다. 왜 그런 것일까?

처음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으로 지명한 이는 일제시대 경성제국대학의 조선문학 담당 교수였던 다카하기 도루였다. 그는 조선시대 저명한 문장가 택당 이식의 『택당집(澤堂集)』 중 “허균은 또 『홍길동전』을 지어 수호전에 비겼다(筠又作洪吉同傳以擬水滸)”라는 구절을 근거로 『홍길동전』을 써낸 이가 허균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허균의 『홍길동전』이 한문소설이라고 주장했지만, 후대에 그의 제자들이 『홍길동전』을 한글소설로 명명하면서 허균은 한글로 『홍길동전』을 집필한 인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동욱(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를 “생전 허균이 지은 다섯 편의 소설은 모두 한문이다. 『홍길동전』만 한글로 지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분석했다.

또한, 조선 중기 한 문신이 남긴 문집에서 기존 판본보다 앞선 ‘홍길동전’이 발견되면서 『홍길동전』의 저자가 허균이 아니라는 것은 더 분명해졌다. 이번에 발견된 「노혁전」은 홍길동의 일대기를 다룬 이야기로 조선시대 문신이었던 지소(芝所) 황일호(1588~1641)가 한문으로 남긴 『지소선생문집(芝所先生文集)』에 수록되어 있다.

지소는 노혁전 앞부분에 “노혁의 본래 성(姓)은 홍(洪)이고, 그 이름은 길동(吉同)이니, 실로 우리나라 망족(望族)이다. 불기(不羈)의 재주를 품었으며, 박혁(博奕)을 잘 하고, 글에 능했다”라는 문구를 통해 이야기 속 ‘노혁’이 ‘홍길동’임을 암시했다.

「노혁전」 속 홍길동은 우리가 알고 있는것처럼 재주가 많았지만, 신분이 미천했던 도둑의 우두머리였다. 40년 동안 전국을 누비며 도적으로 활동하던 노혁은 새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도적단을 해산한다. 그 후 노혁은 양가의 여자와 결혼해 많은 자녀를 낳아 천수를 누리다 죽는다. 지소는 “도적의 꾀를 내다가 늘그막에 깨달아 본연의 선(善)함으로 돌아오는 것이 고리를 굴리는 것 같으니, 이 역시 호걸의 일”이라며 자신이 느낀 바가 있어 이야기를 남긴다는 말로 「노혁전」 을 끝맺었다.

「노혁전」의 발견자인 이윤석(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 교수는 논문에서 “오랫동안 『홍길동전』의 작자가 1618년에 죽은 허균이라고 잘못 알려짐으로써, 『홍길동전』에 관한 기존의 많은 논의들은 이 작품을 제대로 해석해내지 못했다”며 “조선시대 한글소설은 서민들이 만들고, 서민들이 소비하는 철저한 서민의 문예물이었으므로 한글소설의 작자와 독자에 양반 지식인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즉, 『홍길동전』을 허균이 지었다는 것은 근거가 희박하며, 따라서 이를 허균의 사상과 결부시키는 것 또한 『홍길동전』에 대한 오독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결국, 『홍길동전』은 누군지 알 수 없는 어떤 소설가가 1800년 무렵에 한글로 집필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이다.

물론 그렇다고 『홍길동전』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권혁래(용인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는 “신분차별에 저항한 ‘홍길동’의 활약을 소설화한 이 작품이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소설이라는 점은 변함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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