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편견과 차별에 맞선 ‘정신장애인’의 힘찬 날갯짓을 바라며 (한성대신문,546호)

    • 입력 2019-06-03 00:00

지난 4월 17일,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끔찍한 살인 사건을 기억하는가? 21명의 사상자를 낳은 본 사건의 피의자는 ‘조현병 환자’로 밝혀졌다. 또한 지난 12월에 발생한 정신장애인 내담자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살해한 사건도, 2016년 발생한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의 피의자도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이같이 우리는 정신병력을 앓고 있는 사람의 범죄 소식을 주변에서 쉽게, 또 자주 접해왔다. ‘일반인과 다르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일반인이 저지른 범죄보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범죄는 우리에게 더 오래 진상으로 남기 마련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언젠가부터 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해 그들을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의견과는 달리 그들은 사회에서 영구적으로 격리시켜야 할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편견과는 다르게 조현병은 초기에 발견하면 완치가 가능한 병이며, 그들도 일반인과 동일하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일부의 잘못된 편견으로 그들이 사회로부터 받는 혐오와 차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번 지면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정신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소개하고자 한다.


혐오하는 사회, 설 곳 없는 정신장애인

우리나라는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에서 정신장애인을 ‘지속적인 양극성 정동장애, 조현병, 조현정동장애 및 재발성 우울장애에 따른 감정조절·행동·사고 기능 및 능력의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정신장애와 혼동될 수 있는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는 ‘발달장애’에 속한다. 즉, 정신장애인은 사람들과 충분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정신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이들의 취업현황은 다른 장애인들에 비해 매우 낮은 수치를 보인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표한 ‘2019년도 1/4분기 장애인 구인·구직 및 취업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애인의 취업률은 지체장애(54.2%)가 가장 높았고, 뇌병변장애(53.8%), 시각장애(53.7%)가 그 뒤를 이었으며, 정신장애인의 취업률은 40.3%로 드러났다. 이는 15개의 장애유형 중 4번째로 낮은 취업률이다. 이 현상에 대해 조순득(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회장은 “사회적 혐오의 대상이라는 편견과 선입견, 낙인 등이 정신장애인의 취업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결과에 집계된 정신장애인 취업자의 대부분도 일반사업장 고용이 아닌 보호고용 사업장이나 정신장애인 관련 단체에 고용된 인원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주상현(보건의료노조 서울시정신보건지부) 지부장은 “정신장애인의 폭력적, 일탈적인 행동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행동이 정신질환을 앓을 시 무조건 발생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취업에서도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그는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그들의 폭력적인 사건에 대한 각인이 심하다는 것에서 기인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해 발생한 살인사건 총 858건 중 정신장애인이 저지른 살인사건은 단 세 건뿐이다. 이는 전체 살인사건의 0.3%에 불과한 수치인데, 언론은 유독 ‘정신장애인의 살인사건’에 집중한다. 또, 피의자의 정신장애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신과 병력 조회 중’이라는 말을 덧붙여 보도한다. 피의자가 실제 정신과 병력이 없더라도 ‘정신과 병력이 있는 사람은 위험하다’는 인식은 이미 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 자리하게 된다.

게다가 각종 매체에서도 정신장애인에 대한 프레임을 씌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은 정신병동의 공포 분위기를 연출해 정신장애인 단체의 질타를 받아, 이들에게 사과하는 일이 발생했다.

우리가 정신장애인에게 갖는 편견은 이 뿐만이 아니다. 정신장애의 대표적 유형인 조현병은 완치가 쉽지 않은 만성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현(調絃)병은 단어 그대로 현악기의 줄을 조율하면 좋은 소리가 나듯이 치료만 잘 받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다만 이 병은 급성기 때 바로 치료 하지 않으면 환청과 망상 등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 제일 중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현병자는 정신병원 진료를 거부한 채 자신의 병을 숨긴다. 사회적 시선 때문이다.

조현병의 유병률은 1%로 전 세계 인구 100명 중 한 명 꼴로 발병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실제 조현병 환자가 50만 명일 것이라 추정하지만, 조현병 등록 환자는 약 10만 명. 남은 40만 명의 조현병 환자는 자신에게 아픔이 있음에도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 이를 숨기고 있다. 이같이 사회에는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정신장애인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고, 이로 야기된 흉악범죄 때문에 그들을 더욱 혐오하는 시선이 극심해지고 있다. ‘같은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사회는 마치 그들에게 ‘숨어 지낼 것’을 강요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아픔이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까지

“어머니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건장한 남자 둘이 양쪽에서 나를 일으켜 세웠다. 저항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나를 강제로 지프차에 탑승시켰다. 그들이 나를 데려간 곳은 으슥한 어느 병원. 간호사가 내게 영문 모를 약을 투약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사지가 묶인 채 기저귀가 채워졌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돌아오는 것은 체벌뿐이다.

이곳에 나의 의사표현이란 없다. 나의 일상은 ‘감금’됐다.

나는 정신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이는 폐쇄정신병동을 경험한 정신장애인의 사례를 재구성한 것으로 정신장애인의 인권 수준을 단편적으로 잘 보여준다. 위 사례와 같이 한국은 보호의무자의 동의와 의사의 진단이 있으면 그 자체로 ‘정신질환자’로 규정하며, 정신병동으로 강제입원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같은 형태의 입원이 ‘정신장애인의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는 비자의적 입원’이라는 인권 문제가 불거지자, 국회는 2016년 『정신보건법』을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로 개정하면서 강제입원 절차를 까다롭게 했다. 그럼에도 본질적인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실정이다. 기존 법률에서 강제입원의 기간만 줄어들었을 뿐 영장 없는 인신 구속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주 지부장은 “우리는 정신장애인이 응급 입원과 강제입원을 거부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며 “정신장애인의 복지에 치료적인 행위가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의료적인 의견만 귀담은 정책을 시행할 것이 아니라,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의견과 현장 노동자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어 그는 “환자 본인이 가고 싶은 병원이라면 정신장애 당사자가 병원의 치료를 거부할 일은 극히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에는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장애인복지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점이 존재한다. 『장애인복지법』 제15조(다른 법률 과의 관계)에서는 정신장애인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장애인복지법』의 적용이 제한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 회장은 “극히 일부 사업을 제외하고는 정부 및 지자체에서 이 법을 근거로 정신장애인을 사업에서 제외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또 같은 조항의 규정에 의해 여타 14개의 장애유형은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정책국’이 담당하고 있으나, 정신장애만 ‘건강정책국’이 담당하고 있다. 이에 정신장애인은 다른 장애인들과는 다르게 재활의 관점보다 치료의 대상인 ‘환자’로 인식되고 있어 다른 장애인에 비해 정책적 역차별을 받는 상황이다. 따라서 조 회장은 “정신장애인의 지원 체계를 ‘장애인정책국’이 담당해야 정부의 장애인 정책에서 정신장애인이 소외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의 정신건강 복지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의 정신건강 복지의 미비함이 보다 선명하게 나타난다. ‘1인당 정신보건 예산’의 규모는 2017년을 기준으로 OECD 가입 유럽국의 경우 약 24,000원인데 비해, 한국은 3,889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10만 명당 정신건강 전문인력’은 OECD 가입 유럽국의 경우 50.7명이지만 한국은 16.2명에 불과했다. 이는 한국이 유럽 등의 선진국에 비해 정신보건 관련 복지 제도가 열악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열악한 복지체계 속에서 정신장애인은 본인의 삶에 얼마나 만족할까? 보건복지부의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삶에 대한 만족도’에서 ‘매우 만족’과 ‘약간 만족’에 응답한 장애인은 전체 중 58.6%였으나, 정신장애는 41.5%로 평균보다 훨씬 낮은 수치를 보였다. 조 회장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벗어나는 인식개선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정신장애인이 조금 더 행복 한 세상, 만족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이 이 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법』 제3조에 명시돼있는 장애인 복지의 기본 이념이 보장될 수 있는 사회”라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기본 이념 이란,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참여와 평등을 통하여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는 사회’, ‘차별받지 않고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존중 받으며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한국인은 4명 중 1명꼴로 일생 동안 1번 이상의 정신건강문제를 경험한다. 즉 정신장애는 특정 소수만이 겪는 장애가 아닌, 누구라도 한 번쯤은 경험할 수 있는 ‘마음의 감기’와 같은 것이다. 인터뷰 말미, 조 회장은 “정신장애인에게도 인권이 있고 그들도 당당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으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누구든 장애를 가질 수 있는 ‘예비 장애인’이라는 성숙 한 사회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전문적인 교육체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일반인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정상인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 모두는 ‘같은 사람’임을 망각하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장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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