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기자의 사(史)담> 갈등 넘어 균등한 나라 꿈꾼 조소앙 (한성대신문, 553호)

    • 입력 2020-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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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0-03-15 13:56

“이번 정류장은 ‘삼선교. 한성대학교. 조소앙 활동 터’입니다.” 버스로 통학하는 학생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버스 안내 방송이다. 방송에 나오는 독립운동가 ‘조소앙(1887~1958)’은 일제강점기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헌신하고, 광복 후에 삼선동 자택에서 균등한 나라를 꿈꿨다.

조소앙은 양반가였던 함안 조씨 가문의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인 조성룡에게 유교적 소양을 교육받았고, 이는 그가 독립운동을 하게 된 밑바탕이 됐다. 그는 신학문에 필요성을 느껴 유학을 준비했고 그 결과 황실특비유학생에 선발돼 일본 유학생이 됐다.

조소앙은 일본 유학생 시절 국권회복운동에 참여한 것을 기점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동제사·대한독립의군부 등을 거쳐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다. 이후 그는 임시정부의 헌법 격인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작성해 대한민국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고, 임시정부 외무부의 일원으로서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영국, 소련 등 다양한 유럽 국가들을 방문하며 독립외교활동을 펼쳤다. 조소앙은 1930년 결성된 한국독립당의 당의와 당강에서 ‘삼균주의’를 주창했다.
삼균주의는 정치·경제·교육에서 국민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줘야 한다는 사상이다. 이에 입각해 그는 국민들에게 보통선거제로 균등한 정치 참여 기회를 주고, 토지국유제로 경제적 균등을 주며, 의무교육제로 균등한 교육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좌익이 강조하는 ‘평등’과 우익이 강조하는 ‘민족의 독립’을 실현해 민족 간의 균등을 역설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기승(순천향대학교 항설나눔대학) 교수는 “삼균주의는 남북이 분단되고 좌·우익의 이념이 대립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 민족적 화합과 통일의 의미를 되새긴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이렇듯 조소앙은 일생 동안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지만 해방된 조국은 그를 외면했다. 그는 이승만 정부 초기 국무총리 후보로 물망에 올랐지만 남한만의 총선거를 거부한 전력으로 임명이 무산됐다. 이에 그는 사회당을 창당해 반공주의와 다른 노선을 펼치려 했으나 6·25전쟁 당시 납북 당해 실패 했다. 조소앙은 북한에서도 적화통일 노선을 거절하고 삼균주의를 통한 통일운동을 펼쳐 탄압을 받았다. 심지어 납북 이후에 그는 남한에서 대남간첩으로 낙인 찍혀 결국 그의 이름은 한반도에서 잊혀지고 말았다.

지금 우리는 왜 그를 다시 기억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오늘날 우리 사회 는 좌·우익 이념 대립과 빈부 격차가 격화 되고 있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때 통일 독립과 균등사회 실현을 위한 조소앙의 지적 고뇌와 희생적 분투는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전했다.

최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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