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화정>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 (한성대신문, 554호)

    • 입력 2020-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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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0-04-05 01:00

얼마 전 좀 지칠 때가 있었다. 기분 전환으로 뭘 할까, 하다가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를 보았다. ‘아무 생각하기 싫어, 아무개로 살래 잠시.’ 이 부분이 와 닿았다.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 ‘자유 주제(아무거나)’로 쓸 수 있다고 들었고, 뭘 쓸까 하다 아무노래가 생각났다. 아무노래, 아무런 생각, 아무렇지도 않은 동작의 편안함에 아무렴 어때, 하고 다시 털고 일할 수 있었다.

이십 대 때부터 오랫동안 정형화되지 않은 삶을 꿈꾸고 이야기했다. 문을 밀치고 나갈 의지만 있다면, 걷고 걷다 늘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숱한 문들을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차곡차곡 노력하여 성취하는 것보다 순간을 즐기고 자유를 만끽하는 삶을 동경했고, 니코스 카찬자키스의 소설 ‘그리스인조르바’나 실화를 다룬 ‘인 투 더 와일드’와 같은 영화를 좋아했다. 지금 와서 보면 조르바는 자유롭게만 사는 인물이 아니다. 인 투더 와일드의 결말 역시 의미심장하다. 자유를 찾아가는 여정과 자유의 무게를 그때는 보지 못한 것 같다.

어쩌다 보니 젊을 적 동경을 뒤로한 채 단순한 매뉴얼대로 살고 있다. 일상이 쌓여 세월이 되니 3년 혹은 5년 후의 생활도 예측이 가능하다. 그것은 새로운 문이 아니다. 스스로 새로운 문들을 찾는 방법은 모르지만 세상이 바뀌고 열리는 건 보인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느꼈던 사회는 성과에 민감하고 경쟁이 치열하다. 자유에 대한 담론은 있었지만 자유로운 소수를 주변에서 보기 어려웠다. 이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열정은 성과로만 환산되지 않고 개인의 삶은 선택으로 가득하다. 합심하여 쌓을 탑이 사라진 것처럼 아니면 탑을 쌓다 긴 휴식이 주어진 것처럼, 즐겁게 살래, 아무려면 어때, 라고 말하면서 춤추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필자가 담당한 과목은 ‘사고와 표현’이다. 글쓰기는 ‘사고’에 방점을 찍는 경우가 많은데 시간이 갈수록 ‘표현’에 더 눈길이 간다. 사고를 많이 하면 표현을 잘 할 수 있다는 인식도 있지만, 표현이 다양해지고 자유로워지면 사고도 활발해진다. 춤추는 지코와 조르바 모두 달변가이다. 표현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가벼워야 한다. 아무렇지 않게 말이다.

이희영(사고와표현교육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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