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무엇이 소녀를 띄웠나? (한성대신문, 557호)

    • 입력 2020-06-15 00:05
    • |
    • 수정 2020-06-15 00:14

<편집자주>

한 소녀가 침대 위에 떠오르고 있다. 신부 두 사람이 무언가 소리치며 당황해한다. 방안이 너무 추워서 신부들의 입에 김이 서린다. 지진난 듯 방이 흔들리고 물건이 허공에 날아다닌다. 불길한 현상이 계속 나타나고 강도는 더욱 심해진다. 1973년에 개봉된 공포영화의 대명사 <엑소시스트>의 한 장면이다.

우리가 만약 영화 속의 신부라면 어떨까? 처음 보는 현상에 당황하고, 형언할 수 없는 공포를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어두운 영화관에 모여, 있을 수 없는 기괴한 사건으로 고통 받는 두 신부와 소녀의 모습을 지켜본다.

<엑소시스트>는 전 세계적으로 3억 5천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했을 정도로 흥행한 영화다. 영화관을 찾은 사람들은 세 사람이 처한 상황을 지켜보며 죄책감이나 공포를 느꼈을까? 아니다. 그들은 공포영화가 주는 짜릿함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는 왜 허구적 현상을 필름에 담고, 공포를 느끼기 위해 영화관에 모일까? 공포는 왜 인간에게 짜릿함을 주는 것일까? 지금부터 살펴보자.

김준수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출처: 영화 <그레이브 인카운터 2>]

공포가 주는 쾌감과 안도감

영화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관객이 무서워하는 모습을 편집해서 광고영상을 제작했다. 광고에 나오는 관객은 영화에 나오는 무서운 장면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비명을 지른다. 우리는 공포를 느끼면 긴장감에 자극을 받는다. 얼핏 생각해보면 긴장감에서 오는 자극이 불쾌할 것 같지만, 실제로 사람은 불쾌감이 아니라 쾌감을 얻는다.

단적인 예가 '흔들다리 효과'다. '귀인의 오류'라고 불리는 흔들다리 효과는 1974년 컬럼비아 대학의 아서 아론과 도널드 더튼 박사가 발견했다. 두 사람은 실험을 통해 안정적으로 만든 다리 위보다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이성을 만났을 때 호감도가 더 높아진다는 결과를 얻었다. 안정감보다 긴장감이 호감을 높이는 데 더 좋은 효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임명호(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의 교감신경은 사랑에 빠지는 상황 뿐 아니라 두려운 상황에서도 흥분한다"며 "우리는 교감신경이 흥분된 상황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공포가 주는 긴장감 외에도 우리는 공포영화를 통해 공포를 극복했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영화 <컨저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흥행한 공포영화다. 영화 주인공은 한 여성에 잠식한 악령을 잠재우는 데 어렵게 성공한다. 악령에 지배당한 채로 하룻밤 동안 고군분투한 여성은 아이들을 안아주면서 고통을 극복했음에 감사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공포영화 주인공은 우리를 대신해서 공포에 맞선다.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가 공포를 극복하는 '대리경험'인 것이다. 임명호 교수는 "심리적 측면에서 사람은 귀신을 두려워하면서도 관심을 갖는다. 무의식적으로 '반동형성'기제를 통해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공포에 맞서는 주인공이 아니라 피해자에 이입하는 경우도 있다. 누구나 공포에 직면하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포에서 누군가가 나를 구원해 주길 바랄 수도 있다.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는 한 고등학생에게 악마가 부마한다. 악마라는 강력하고 사악한 존재 앞에서 고등학생은 연약하다. 악마는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조종한다. 관객은 고등학생의 모습을 보며 무력감을 느낌과 동시에 주인공인 사제들이 학생을 반드시 구원해 주길 바란다.

「장재현의 오컬트 장르 영화 연구」에서 이청(순천향대학교 향설나눔대학) 교수는 "공포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자신을 누군가 나타나 지켜주길 바란다. 이런 욕구를 구마하는 모습에서 해소한다"고 풀이했다.

공포영화는 관객에게 긴장감을 선사한다. 관객은 공포를 돌파하는 쾌감과 공포가 지나갔다는 안도감을 느끼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관객에게 더 큰 쾌감과 안도감을 주기 위해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어떤 도구가 영화 속 공포를 더 크게 만들어줄까?

[사진 출처: 영화 <파노라말 액티비티>]

더 무섭고 더 짜릿하게

공포영화에 나타나는 소재는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다. 왠지 있을 것 같지만 실재하는지 확실할 수 없어야 한다. 원전히 딴 세상 이야기라면 무서워할 필요도 없다. 혹시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공포를 더욱 현실감 있게 만든다.

공포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귀신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흥행한 국산 공포영화로 손꼽히는 <장화홍련>부터, <여고괴담>, <링>, <착신아리> 등 많은 영화에 귀신이 나왔다. 영화를 보면 누군가에 대한 원한이 모여 귀신이 되거나, 종교나 주술 등의 영향으로 귀신이 나타난다. 원한이나 종교, 주술 등은 우리 옆에 실재하는 것이지만, 귀신이 정말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임낭연(경성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귀신은 초자연적이고 신비한 존재이므로 과학적인 방법으로 존재 여부를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학기술이 발전한 오늘날에도 귀신이 실존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증거를 내놓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귀신이 실존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공포감을 더 강화시킨다"고 설명했다.

배경을 일상으로 하는 것도 현실감을 늘리기 위한 방법이다. 영화 <주온>을 보면 귀신이 이불 속에서 나온다. 우리가 매일 덮가 자는 이불 밑에 귀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임낭연 교수는 "공포영화의 배경은 보통 우리의 일상생활과 유사하다"며 "공포영화 속 귀신을 보면 일상 속 밀착된 공간에도 귀신이 나타날 것 같은 막연한 공포감이나 불안감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공포스런 존재를 더 사실감 있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허구의 존재도 아주 사실적으로 만들면 사람은 잠시 동안 그 존재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사실적인 표현에는 분장뿐 아니라 소리와 카메라의 시점 등 다양한 요소가 적용된다.

1968년도 영화인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선 좀비가 등장한다. 한 여성이 좀비를 피해 차에 숨는다. 차까지 쫓아온 좀비는 창문을 손으로 내려치고 차를 흔들며 위협한다. 창문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음이 들린다. 벽돌로 창문을 깨고 차 내부로 좀비가 들어온다. 우리는 둔탁한 소음과 좀비가 바로 보이는 시점 때문에 마치 여성과 함께 차 속에 갇혔다는 착각에 빠진다. 관객은 사자 부활은 불가능하며 좀비는 분장한 배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 사실을 망각한다.

최근에는 <곤지암>, <그레이브 인카운터 2> 등 사실감에 초점을 맞춰서 제작하는 모큐멘터리 형식의 영화가 나오고 있다. 모큐멘터리는 허구를 마치 사실처럼 만드는 것으로, 주로 1인칭 시점을 활용한다. 초소형 카메라를 배우의 몸에 붙여서 1인칭 시점으로 촬영하기 때문에 관객은 현장감과 몰입감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은 배우를 캐스팅하거나, 음악과 이펙트를 배제하고 숨소리 등의 현장음만 사용하는 것도 현장감을 위한 장치다.

거리감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영화 <곤지암>에서 공포체험을 위해 곤지암 정신병원을 찾은 샬롯은 중증환자실에서 정체불명의 존재와 마주친다. 처음에는 멀리서 손전등에 비친 모습만 보인다. 저 앞에 정확히 무엇이 있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상상을 통해 공포감이 증폭된다. 무엇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갑자기 그 존재가 굉음을 지르며 돌진한다.

사람들은 아직 불명확한 존재를 멀리서 관찰하고 대응하고 싶지만, 공포영화는 그 틈을 주지 않는다. 미확인 존재가 나에게 해가 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바로 그 시점에 이미 귀신이 내 옆에 와있다. 관객은 '깜놀'할 수밖에 없다.

공포영화는 다양한 장치로 사람들에게 공포를 선사한다. 불안함과 공포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 있는 한 공포영화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임낭연 교수는 "긴장과 스릴은 우리 몸에 적당한 정도의 긍정적 스트레스인 '유스트레스(eustress)'를 준다. 공포영화를 봄으로써 경험하는 긴장감, 스릴이 영화를 보는 사람의 만족감과 안녕을 높여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더운 여름이 찾아왔다. 공포영화가 주는 서늘함과 오싹함이 필요한 계절이다. 불을 끄고 스피커 소리를 높이자. 보다 더 불안하고 짜릿한 공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댓글 [ 0 ]
댓글 서비스는 로그인 이후 사용가능합니다.
댓글등록
취소
  • 최신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