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빈틈 보이는 ‘스토킹처벌법’ (한성대신문, 570호)

    • 입력 2021-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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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1-09-21 14:16

스토킹처벌법 오는 10월 시행

피해자 보호 미흡하다는 지적

한계 보완할 개정 이어나가야

지난 4월 제정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처벌법)에 따라 오는 10월부터 스토킹범죄의 가해자에게 최대 5년 이하의 징역형이 선고된다. 스토킹처벌법 제정은 1999년 『스토킹 처벌에 관한 특례법안』이 발의된 후 22년 만의 결실이다. 이후 2012년 『경범죄 처벌법』이 개정되면서 스토킹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마련됐지만 ‘지속적 괴롭힘’이라는 사유에 해당돼 고작 10만 원 이하의 벌금 등이 적용될 뿐이었다. 스토킹처벌법에 따라 스토킹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는 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보호가 미흡하다는 점에서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스토킹처벌법에서 정의하는 스토킹범죄란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불안감 혹은 공포심을 느꼈다면 스토킹행위로 간주된다. 스토킹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흉기 또는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거나 이용했다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제 법원의 선고가 법정형만큼 이뤄질지 미지수라고 지적한다. 법정형이 중형 수준으로 규정된 것은 의의가 있으나 실질적인 판결의 선고가 의문이라는 말이다. 이창현(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정형보다 선고형이 훨씬 약한 관행이 문제다. 실제로 3년의 징역이 선고되면 중형으로 처벌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민경(경찰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역시 “법정형은 낮지 않으나 정해진 법정형만큼 선고가 이루어질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경찰의 직권으로 즉시 피해자 보호가 가능한 ‘긴급응급조치’도 생겼다. 긴급응급조치는 사법경찰이 스토킹행위자에게 직권 또는 신고자 및 법정대리인의 요청에 의해 100m 이내의 접근 금지 등을 즉시 시행할 수 있는 조치다. 현행법으로는 피해당사자의 요구가 있어야만 접근 금지 신청이 가능하며, 접근이 금지되기까지 약 2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긴급응급조치는 현행법에 비해 신속한 조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피해자를 보호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있다. 긴급응급조치의 시행은 피해자에게 통지되지만 취소 혹은 변경에 대해 피해자에게 알리는 규정이 없는 것이 문제다. 피해자가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스토킹행위자의 접근금지 등이 취소된다면 무방비 상태에서 서로 맞닥뜨릴 수 있다.

스토킹행위자가 긴급응급조치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과태료가 부과되는 정도의 가벼운 처벌만 가능하다는 점도 문제다. 초기 대처가 중요한 스토킹범죄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장응혁(계명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스토킹범죄의 경우 단순히 처벌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선제적인 대응이 중요하다”며 “긴급응급조치는 스토킹 초기 대응 중 하나의 방법인데 불이행자에 대한 처벌이 과태료 부과 정도로만 끝나는 것은 조치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이번 법안에 포함된 ‘반의사불벌죄’ 조항은 2차 가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다.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적용되면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 표시를 할 경우,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 이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합의와 고소 취하 등을 강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피해자 보호가 미흡한 조항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7월 28일부터 8월 17일까지 스토킹을 직접 겪거나 목격한 경험이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진행한 ‘스토킹 피해 경험 및 관련 제도 개선’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다수의 응답자가 ‘반의사불벌죄는 보복성 2차 피해를 만들 수 있다’고 답했다. ‘반의사불벌죄 조항 폐지 및 피해자보호명령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스토킹처벌법의 피해자 보호가 미흡한 점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번 법안의 가장 중요한 입법 목적이 피해자 보호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허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법률명에서도 알 수 있듯, 이번 법안은 가해자 처벌을 중심으로 하다 보니 피해자 보호조치가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악용되지 않도록 방지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지난 6월 남인순(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안)에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삭제됐다. 개정안에는 피해자가 직접 피해자보호명령과 신변안전조치 등을 신청할 수 있는 내용과 고용 상황에서 일어나는 스토킹범죄와 관련해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처분을 금지하는 조항 등이 담겨있다. 남 의원은 “개정안은 실효성 있는 보호조치 마련을 통해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고자 했다. 개정안의 빠른 심사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결국 우리나라의 스토킹처벌법 제정은 ‘늦어도 한참 늦은 법안’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미국은 1990년, 영국은 1997년, 일본은 2000년부터 스토킹을 규제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법안의 처리가 미뤄지는 사이, 수많은 피해자가 희생당했다. 권영세(국민의힘)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스토킹범죄 신고는 최근 3년간 매해 5천 건 내외로 접수됐다. 스토킹범죄는 참혹한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KBS가 2018년 전국 1심 법원에서 선고가 내려진 살인과 살인미수 사건 381건을 분석한 결과, 여성이 피해자인 사건 중 약 30%가 스토킹범죄로 시작했거나 스토킹범죄의 정황이 있었다. 한 교수는 “스토킹을 범죄행위라고 인식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우선 형성돼야 한다는 신중론에 밀려 입법이 지연됐다. 결국 스토킹처벌법 제정의 필요성을 느끼기까지 스토킹범죄로부터 야기된 여러 피해 사건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스토킹처벌법은 수차례 개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장 교수는 “20여 년의 논의를 거쳐 제정됐지만 제정 자체로 의미를 찾기에는 문제점이 많다. 물론 법 시행 이전보다는 더 많은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보호하지 못하는 피해자가 나올 것이 우려된다”고 했다. 이 교수 또한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되면서 미비한 점이 발견되고 보완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 개정 논의를 적극적으로 거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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