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한성문학상 - 시 부문 가작 ②> 아이보리

    • 입력 2021-12-06 01:32
    • |
    • 수정 2021-12-06 01:32

[삽화 : 이수린(ICT 2)]

아이보리

최현아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환승길

풀내에 이끌려 따라간 작은 꽃집

노란 꽃 파란 꽃 널린 깡통 사이

희미한 튤립 한 송이가 말을 걸어온다

혼잣말처럼 들릴 듯 말 듯

이름없이 죽어가는게 슬프다고

나는 우울한 꽃을 집어올려

계산대에 얹고 삼천원을 낸다

흰 종이로 대충 싸인 꽃을 쥐고

듣그러운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힘 없이 잎을 내려놓은 꽃이

어두워진 차창을 내다보며 중얼댄다

기쁨에는 이유가 필요하지만

슬픔에는 이유도 필요없다고

페트병 물속에 꽃댈 담그자

희미한 낯빛이 더욱 희미해지고

어느 날 문득 들여다보니

꽃은 더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꽃 있던 자리 흐린 물 속

지친 외로움만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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