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양심과 군화, 누가 이 둘을 저울에 올렸나 (한성대신문, 538호)

    • 입력 2018-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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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19-10-16 15:35

지난 6월 28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판결이 대한민국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대체복무제를 명시하지 않은 현행 『병역법』 5조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이는 꾸준히 도마 위에 올랐던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논란을 종식시켰고, 이로써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논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란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상의 이유로 병역과 집총(총을 잡는 행위)을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한 논란은 2001년, 불교신자 오태양 씨의 병역 거부 선언으로부터 시작됐다.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용어도 이때 생겼다. 국내 최초로 병역의무자가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한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고, 이를 계기로 많은 이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 선언을 이어나갔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증가는 국가적 차원에서 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를 불러 일으켰다. 이에 따라 대법원과 헌재가 2004년 양심적 병역 거부를 ‘양심의 자유’에 귀속되는 것으로 인정하고 정부에 대체 복무 도입을 권고했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해 정부는 2009년 초부터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 출범으로 이는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양심적 병역 거부에 관한 사회적 논의는 끊이지 않았다. 결국 올해 6월, 양심적 병역 거부자와 법원이 청구한 ‘헌법소원·위헌 법률 심판’에서 헌재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처벌하는 현행 『병역법』 88조 1항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다. 다만, ‘별도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고 병역 거부자를 처벌한다면 개인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대체복무제 제정을 권고함으로써, 길고 긴 ‘양심적 병역 거부’ 찬반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다.

오랜 논란 끝에 국가가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했고, 대체 복무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병역 거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부분은 ‘형평성’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법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병역법』 제3조에 따라 신체가 건강한 남성이라면 누구나 육·해·공군에서 각각 정해진 일자만큼 군복무를 해야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반대하는 이들은 ‘단지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이를 인정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김영길(바른군인권연구소) 대표는 “우리나라 병역 거부자 중 99.4%가 특정 종교 출신이다. 따라서 이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가 아닌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다. 이들의 병역을 면제해주는 것은 특정 종교에 대한 혜택이고, 이는 형평성 문제를 초래한다”며 “집총 거부는 인정할 수 있으나, 병역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국가 병력에 큰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양심적 병역 거부를 지지하는 이들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존재이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들을 처벌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헌법』 제19조에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는 만큼, 개인의 신념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양심적 병역 거부 인정이 특정 종교에 대한 혜택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김식(한국청년연대) 공동대표는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전부는 아니다. 다양한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이 존재하므로 이들이 특정 종교와 관련이 있든 없든 모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를 허용할 것인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지만, 대체 복무에 대한 사안은 2020년 내에 확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헌재가 내년 12월 31일까지 『병역법』 5조에 대체 복무를 명시할 것을 판시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 10월 4일, 국방부‧법무부‧병무청 합동실무추진단이 공청회를 열어 대체 복무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 그중 복무 기간으로는 현역병의 1.5배인 ‘27개월’안과 2배인 ‘36개월’안이 제시됐으며, 복무지는 합숙 근무가 가능한 소방서나 교도소로 의견이 좁혀졌다.

공청회에서 다양한 안이 개진됐지만, 이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27개월’안 지지자는 ‘현역병의 두 배에 달하는 복무 기간은 징벌적 성격이 강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36개월’안 지지자는 ‘개인의 양심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복무 기간을 늘려 병역기피를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영길 대표는 “현재 의무소방원 근무 경쟁률은 10대 1 수준으로 높기 때문에 대체 복무 근무지에 소방서를 포함하는 것은 특혜다. 기존 병영 내에서 집총 없이 복무하는 방안을 반드시 포함해야 할것”이라며 “복무 기간 역시 국민적 공감대를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반면, 김식 공동대표는 “대체 복무 기간은 현역과 같은 18개월로도 충분하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병역기피자’로 판단하고, 대체 복무를 병역 거부에 대한 ‘처벌’이나 ‘징벌’의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대체복무자의 근무지는 사회적 합의만 이뤄진다면 국가의 공공이익을 위한 곳 어디든 상관없다고 본다. 다만, 그에 앞서 대체 복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이뤄져야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용어 사용에 대한 지적도 있다. ‘병역 거부자가 양심적이라면 병역을 이행한 사람은 양심이 없다는 것이냐’, ‘병역 거부자를 양심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들을 비호하는 것’ 등의 내용이다.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개인적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 혹은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 등으로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같은 논란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 우리학교 조문석(행정학과) 교수는 “징병제를 시행하는 우리나라 특성상 병역 거부자에 대한 거부감이 용어 사용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개인의 신념이나 가치판단뿐만 아니라 도덕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용어에 대한 논쟁은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이야기다. 지금은 우리 사회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논의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정명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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