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재미를 찾아 끝없이 도전하는 사람, '라돈' 오서빈 대표 (한성대신문, 570호)

    • 입력 2021-09-23 00:02
    • |
    • 수정 2021-09-23 00:02

19년 전, 어느 한 초등학생의 일기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져 있었다.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에 진학하고 싶다. 그리고 내 꿈은 미술학 교수다.” 초등학교 6학년이 작성한 일기라고 하기엔 꽤나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구절이다. 일기를 작성한 아이는 목표를 성취해냈다. ‘DIY 키트, 연구소 라돈(RADON)’의 대표이자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하 카이스트) 교수로 재직 중인 오서빈(30)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라돈' 오서빈 대표 [사진 출처 : 라돈]

부딪히고 깨지는

과정을 겪어야

성공할 수 있어요.



창업의 길에서 매력을 느끼다

오 대표는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동기들은 평탄한 미래를 추구하며 안정적인 기업 취직을 선호했지만, 그녀는 도전의 길을 걷기로 했다.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한 그녀는 석사 1년 차부터 창업을 시작했다.

그녀가 창업을 시작한 이유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가시화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대학에서 창업에 관심 있는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형 창업부터 도전했다.

그녀는 ‘유아용품 개발’, ‘셰프 요리 배달 서비스’ 등 다양한 아이템으로 창업을 시도했지만, 아이디어가 부족해 연이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오 대표는 실패 속에서 좌절이 아닌 ‘재미’를 느꼈다. 특히, 직접 제작한 상품이 시장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매력을 경험했다.

“저 자신을 표현한다면 재미를 위해 사는 사람이라 하고 싶어요. 잠들기 전에 누웠을 때, ‘와, 이걸로 제품을 만들면 재밌겠다. 출근해서 바로 만들어 봐야지’라고 자주 생각하곤 해요.”

오 대표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아 헤맸다. 그녀는 결국 스스로가 공감해야 세상도 반응함을 깨달았다.

“첫 제품 출시 이후, 사업 아이템에 대한 공감이 어려워서 더 이상 발전된 아이템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대표적으로 유아용품을 개발할 당시의 저는 부모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 엄마로서 뭐가 불편한지 직접적으로 느낄 방법이 없었어요. 제품 제작 과정에서 제가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업에 실패하지 않았을까 해요. 아이템과 관련한 분야에서 제작자가 흥미를 느낄 수 없다면 일을 지속하기도 쉽지 않죠.”

실패를 딛고 일어나 회사를 설립하다

그녀는 자신과 동떨어진 사업 아이템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 새로운 창업 아이템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오 대표는 제품에 대한 '공감'과 '흥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수없이 생각을 곱씹었다.

프로젝트형 창업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사업을 추진하고 싶었던 그녀는 본격적으로 타겟층을 찾아 나섰다. 오 대표는 2030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작은 취미를 갖는 것조차 ‘사치’로 여기는 직장인들의 현실에 오 대표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오 대표는 구매자가 최소한의 시간을 투자해 쉽고 빠르게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고민 끝에 결정한 아이템은 3D 프린터를 이용해 만든 컬러링 키트였다. 2016년 당시 시중에 출시된 컬러링 키트는 2D 제품이 대다수였는데, 오 대표는 3D 프린터 기술을 활용해 보다 특별한 제품을 제작했다.

“누구나 제작 가능한 제품을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구매자가 2D 형태의 종이에 색칠하는 것보단 입체감 있는 3D 모형 아트토이에 색칠하는 과정에서 더욱 흥미를 느낄 수 있다고 판단했죠.”

그렇게 탄생한 브랜드가 바로 ‘라돈’이다. 라돈을 설립할 당시 그녀가 가지고 있던 초기 자본은 단돈 500만 원이었다. 사무실과 3D프린터를 마련하자 수중에 남은 돈은 거의 없었다. 라돈의 첫 사무실은 지하에 위치한 허름한 방이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사무실로 빗물이 새어 들어와 물을 퍼내며 작업하기도 했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녀의 의지는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제품을 세상에 하루빨리 출시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환경이 어떻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당시에는 스스로가 자랑스럽기만 했죠. 하루종일 일에 몰두하며 정말 열심히 일했던 시기였어요.”

고대하던 첫 사업이지만,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바로 ‘복제품’의 등장이었다. 복제품은 기존의 제품을 제작자의 허락 없이 그대로 본떠 만든 제품을 말한다. 쉽게 말해, 표절이다. 특허를 등록했더라도 유사성의 기준이 모호해 표절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 오 대표는 결국 복제품은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 복제품을 목격했을 때, 화가 많이 났어요. 열심히 고민하고 수정해서 만든 제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니 자연스럽게 복제품은 시장에서 사라지더라고요. 제품에 대한 진정성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해요.”



▲'3D 모형 아트토이'의 제작과정 [사진 출처 : 라돈]

경험을 쌓아 성공의 도약을 일궈나가다

그녀는 소비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아이템을 꾸준히 발굴해왔다. 2016년에 설립됐을 당시 단 하나의 키트 상품으로 시작한 라돈은 현재 7개가 넘는 여러 종류의 키트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중에는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하면 수익금의 일부가 기부되는 ‘기부전제형’ 제품도 있다. 반려견 카이를 모티브로 만든 ‘멍냥이 키트’와 그녀가 임신했을 때 개발한 ‘태교 키트’가 그것이다. 제품을 통해 누군가에게 작은 보탬이 되고 싶었던 그녀의 바람이 담긴 제품이다.

다양한 상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와중에도 그녀는 여전히 재미를 찾아다닌다. 늘상 새로운 공모전에 도전하고 외부 업체의 의뢰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최근에는 EBS에서 요청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아트토이로 제작 중이다. 과거 루이까또즈의 루이 14세와 공주·병정, CJ제일제당의 맥스봉 커플 캐릭터 등을 아트토이로 만들기도 했다.



▲CJ제일제당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3D 모형 아트토이' [사진 출처 : 라돈]

“제품을 디자인하고 생산하는 과정이 즐거워요. 공모전에 참여하거나 의뢰를 받는 일이 이제는 취미가 됐어요. 과정이 재밌다 보니 시간이 없더라도 되도록 모두 참여하려고 해요.”

오 대표는 바쁜 시간을 쪼개 강단에 서기도 한다.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그녀는 ‘제품디자인기초’, ‘표현기법’, ‘디자인 창업’이라는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그녀는 대학 시절 자신이 배웠던 디자인 지식과 그간 경험한 창업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때때로 강연을 하기도 하는데, 한국과학기술연차대회, 숭실대학교, 서일대학교 등 여러 기관에서 ‘스타트업’을 주제로 강연한 바 있다.

“학생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단지 사업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무엇이든 도전할 일이 있다면 곧바로 실행에 옮기길 바라요. 대가 없이 쓸 수 있는 재산은 오롯이 ‘시간’과 ‘젊음’뿐이니까요. 잃는 건 시간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해요. 그리고 가장 잃을 게 없는 순간은 바로 ‘지금’이죠.”



▲강연을 진행하고 있는 오서빈 대표 [사진 출처 : 라돈]



그녀가 사업, 공모전,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는 이유가 있다. 그녀는 여러 경험을 쌓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쫓기보단 새로운 경험을 쌓으려고 해요. 나중에 어떤 일을 시작하더라도 도움이 될 거라 확신해요.”

오 대표는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며 성공을 일궈나갈 예정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그녀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조정은 기자

[email protected]

댓글 [ 0 ]
댓글 서비스는 로그인 이후 사용가능합니다.
댓글등록
취소
  • 최신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