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묻고 현장이 답하다> 코로나19가 남긴 헌혈의 빈자리 (한성대신문, 572호)

    • 입력 2021-11-15 00:01
    • |
    • 수정 2021-11-15 00:01



<편집자주>

나 말고 다른 사람. 그의 문제를 알기 위해서는 그에게 묻는 것보다 그가 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지 않던가. 종이에 적힌 자료보다 한 번의 경험이 더 현실적이다. 나를 그로 바꾸기 위해 신문사 밖으로 향한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생생한 문제를 발견하기 위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여파로 혈액 수급에 차질이 생겼다. 매년 우리 학교를 찾아오던 헌혈 버스는 사라진 지 오래고 헌혈의 집을 찾는 사람들 역시 뜸해졌다. 병원은 비상에 걸렸고 보호자들은 지정 헌혈자를 모으기 위해 애를 쓰곤 한다. 헌혈의 집과 혈액원의 상황은 어떨까? 보다 정확한 상황을 살피기 위해 현장으로 향했다.

김지윤 기자

[email protected]

김기현 기자

[email protected]



"혈액이 부족해

모든 직원이

헌혈에 나섰어요."



#발길 끊긴 헌혈의 집

성신여대입구역에 위치한 헌혈의 집을 방문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상주하고 있는 직원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QR코드 인증과 발열 체크를 마친 후 대기실에 앉자 적막이 감돈다. 헌혈 전 필수인 전자문진과 혈액검사를 하기 위해 문진실과 검사실로 들어간다. 지나가는 복도 그 어디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 이전, 사람이 많을 때는 문진실과 검사실이 부족했었지만, 이제는 대기시간 없이 빠르게 들어갈수 있다.

‘따끔합니다’라는 간호사의 말과 함께 주삿바늘이 손가락 끝을 찌른다. 간호사는 손가락에서 나온 피를 두 개의 종이에 한 방울씩 떨어트린다. 1분 정도 기다리자. 간호사가 설명한다. “밖에 나가서 냉장고에 있는 이온 음료 마셔주세요. 꼭 한 캔 다 마셔야 합니다.”

헌혈을 하면 체내에서 400mL가량의 혈액이 빠져나간다. 혈액과 함께 빠져나간 수분을 다시 채우기 위해 이온 음료 섭취는 필수다. 이온 음료를 마시는 와중에 간호사가 말을 건넨다. “헌혈자가 줄어들면서 이온 음료 주문 횟수가 3분의 1 꼴로 줄었어요.”

▲헌혈을 하고 있는 기자의 주변 침대가 텅 비어있다.

채혈실에 들어서니 7개의 침대가 보인다. 한 명의 헌혈자 외엔 6개의 침대가 텅 비어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침대가 모두 차고 대기자도 있었어요. 지금은 헌혈자가 많이 줄었죠.” 간호사의 안내를 받은 뒤 침대에 올라간다. 간호사는 소매를 걷어 준 뒤 양팔을 살핀다. 오른쪽 팔을 소독약이 묻은 솜으로 꼼꼼히 소독해준다. 바늘을 넣으니 벌이 쏘인 듯 따끔하면서 팔 전체에 힘이 풀린다.

채혈 바늘을 꽂은 채 약 15분이 흐른 뒤, 타이머의 울림과 동시에 간호사가 찾아온다. 그녀는 주삿바늘을 뺀 후, 채혈한 곳을 압박붕대로 감기 시작한다. “10분간 압박해주세요.” 10분이 지나고 침대에서 일어난다.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어 사물함에서 가방과 옷을 꺼내 헌혈의 집을 나온다. 헌혈을 모두 마치기까지 1시간 정도가 소요됐지만, 그동안 헌혈의 집에 방문한 사람은 3명뿐이다.

▲기자가 팻말을 들고 헌혈 캠페인에 참여 중이다.

#의미 사라진 캠페인

헌혈자가 감소함에 따라 헌혈 캠페인 참여자도 줄었다. 헌혈 캠페인은 리플렛 배부나 피켓 홍보를 활용해 사람들의 헌혈 참여를 도모하는 활동이다. 코로나19 여파로 거리에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홍보 효과가 현저히 감소했다. 헌혈의 집에서 팻말과 허리띠를 받아 건물 밖으로 나온다. 헌혈의 집 건물 앞에 팻말을 들고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30분이 지났지만, 건물로 들어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성신여대입구역 번화가로 장소를 옮겨 헌혈캠페인을 진행한다. 많은 사람이 이동하는 곳에서 캠페인을 하면 헌혈 홍보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행인 모두 ‘우리 함께 헌혈해요’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무시한 채 그냥 지나간다. 성신여대 길 한복판에서 1시간 동안 캠페인을 진행했지만, 팻말을 보고 헌혈의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캠페인을 마친 뒤 헌혈의 집으로 올라간다. 헌혈의 집의 간호사는 수고했다는 인사와 함께 말을 건넨다. “혈액이 없어 큰일이에요. 한 명의 헌혈자가 무려 5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데 말이죠.”

우려했던 것처럼 사람이 없는 헌혈의 집 상황에, 대한적십자사 홈페이지에서 정확한 ‘혈액 보유현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화면 속의 표에는 ‘자정 기준 전체 혈액 보유량, 2.6일분’으로 나와 있다. 혈액 보유량이 3일분 미만일 경우, 의료기관에 공급할 수 있는 혈액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응급수술을 제외한 일반수술은 혈액이 충분히 확보되기 전까지 연기된다.

심지어 보유한 모든 혈액이 환자에게 공급되는 것도 아니다. 혈액 보유량은 환자에게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공급 가능한 재고’와 ‘검사 대기 혈액 재고’로 나뉘는데, 이 중에서도 ‘검사 대기 혈액 재고’는 혈액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 후에야 환자에게 공급될 수 있다. 실제로 공급되는 혈액은 명시된 개수보다 현저히 적은 실정이다.

▲혈액 냉장고에는 소량의 지정혈액만 보관돼 있다.



#텅 비어버린 혈액원

중계역 5번 출구에 위치한 대한적십자사 서울동부혈액원(이하 혈액원)으로 향한다. 혈액원은 헌혈자들의 혈액을 보관하는 곳이다. 입구에서 담당자를 만나 함께 혈액 관리실로 이동한다. 관리실 한쪽에는 커다란 냉장고가 놓여있다. 냉장고를 열자 ‘지정혈액’이라고 적힌맨 위 칸을 제외한 5칸이 모두 비어있다. 지정혈액은 대상을 미리 지정한 후 헌혈한 혈액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희귀한 RH- 혈액형만 지정헌혈을 신청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모든 혈액이 부족해서 A형, B형, O형, AB형의 일반 혈액도 지정헌혈인 경우가 많다. “지정헌혈 참여자가 많은 건 심각한 문제에요. 간단한 수술조차 지인에게 혈액을 부탁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옆방에 있는 냉장 창고로 향한다. 냉장고와 마찬가지로 박스 하나를 제외하고는 선반이 텅텅 비어 있다. “예전에는 혈액 창고가 혈액으로 가득해 이곳에서 재고를정리했지만, 지금은 창고에서 바쁘게 근무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어요.”

관리실 앞 복도로 나오니 상자들이 쌓여있다. 병원으로 보낼 혈액이 담겨있는 혈액 운송 상자다. 상자 옆에는 건국대학교 병원, 경희대학교 병원 등 여러 대학 병원의 이름이 적혀있다. 혈액 운송 기사가 혈액을 지정된 병원으로 배달하기 위해 혈액 운송 상자를 여기저기 옮기는 모습이 보인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혈액 운송상자가 복도를 가득 채웠지만, 지금은 복도가 텅 비어 있어요.”

복도 한쪽에는 컴퓨터가 설치돼 있다. 모니터에는 ‘10월 8일 13시 기준 2.3일분’이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당일 혈액 보유량이다. 그중 O형의 혈액은 고작 8개뿐이다. 관리자가 컴퓨터 앞에 서서 한숨을 내쉰다. “적정 혈액 보유량은 일평균 5일분 이상이에요.”

‘따르릉’. 전화벨이 울리자 관리자가 전화를 받는다. 혈액이 급히 필요한 병원 관계자의 연락이다. 관리자는 컴퓨터 마우스 스크롤을 빠르게 움직인다. 약 2분 정도 찾아본 결과, 관리자가 고개를 떨굼과 동시에 병원 관계자에게 ‘혈액이 없다’고 전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병원에서 혈액이 부족하다고 연락이 오면 다른 혈액원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요즘은 전국적으로 헌혈자가 줄어 모든 혈액원에 혈액이 없어요.”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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