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한성문학상 - 시 부문 가작 ①> 월식

    • 입력 2021-12-06 01:32
    • |
    • 수정 2021-12-06 01:32

[삽화 : 이수린(ICT 2)]

월식

조윤식

둥그런 보름달이 차오른 듯

가로등 불빛이 비친 동공을 보았다

여름비가 뒤늦게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 그런 밤이었다

하얀색의 기다란 지팡이는 쏟아지는 빗소리와

같은 소리를 내며 조금씩 앞으로 전진했다 다만

내 귓속엔 내가 걸어가는 발자국 여러 개만

울려 퍼진다

저 사람의 귓속에서는 어떤 소리가 들릴까

눈 아프게 현란한 전광판의 불빛 소리가

지나가는 한무리 친구들의 줄무늬 티셔츠 소리가

땅바닥에 떨어져 젖고 있는 흰색 마스크 소리가

내 머리에 걸치고 있는 노란색 모자 소리가

침대에 누워 글 따위를 끄적이는 연필 소리가 들릴까

물소리 가득한 밤 길거리에서

비 웅덩이에 비친, 사람들의 소리를 찾고 있는

움직이지 않는 동공을 보았다

얼굴도 모를 사람들을 피해

영영 마주치지 않을 사람들을 피해

마음속 깊은 곳으로 침전하면서

그의 동공은 꽤나 분주하게 멈춰있었다

댓글 [ 0 ]
댓글 서비스는 로그인 이후 사용가능합니다.
댓글등록
취소
  • 최신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