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우리가 만든 지구의 역사, 인류세 (한성대신문, 593호)

    • 입력 2023-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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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3-10-16 00:00

지질시대 변화 이어져

지구 환경 바꾼 인간

인류세 도입 논의 의의 有

인류가 지구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놀랍지 않다. 기온이 과거의 여름보다 더 높은 이상 고온 등의 기상이변이 매년 발생하고 있고, 그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까지 속출하고 있다. 인류가 지구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일은 계속해 발생하는데, 그 중 ‘인류세’의 도입을 눈여겨볼 만하다. 지금 지질학계에서는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질시대, 그리고 인류세는 과연 무엇이며, 인류세로의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질시대란 지구가 형성된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지구 지층 역사를 말한다. 지구시스템*의 변화 양상을 이해하고 미래의 지구 상태를 예측하려면, 이전까지 지구의 변화 양상을 파악해야 하기에 지질시대를 구분한다. 김효임(경상국립대학교 지질과학과) 교수는 “지질시대는 지구의 변동이 지구시스템의 진화 경향에 어떤 변화를 줬는지 이해하게 하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지층의 역사가 곧 지질시대이기에, 지질학적으로 큰 변동이 발생하면 새로운 지질시대로 전환된다. ▲대규모의 화산 폭발 ▲빙하기의 도래 ▲운석의 충돌 ▲급격한 기후변화와 같은 지질학적 사건이 지구시스템을 크게 변화시키면 새로운 지질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층 연구를 통해 확인된 대규모의 지질학적 변동은 지질시대를 변화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전했다.

지질학적 변동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증거가 필요한데, 암석이나 빙하코어**가 그 역할을 수행한다. 지층은 암석과 토사로 이뤄져 있기에, 암석을 관찰하면 지층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빙하코어에 포함된 메탄, 이산화탄소 등의 구성물질을 분석함으로써 과거의 기후변화 등을 알아낼 수 있기도 하다. 박정재(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는 “빙하코어를 분석하면 빙하기와 간빙기의 변화 등을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질학적 변동에 의해 생물종의 멸종이 일어나는 등 구성에 변화가 생기는 것도 지질시대를 바꾸는 하나의 요인이다. 대표적인 생물학적 변동은 ‘대량 멸종’이 있다. 비교적 짧은 시간동안 많은 동물이 멸종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이 출현하는 등 변화가 나타난다. 김 교수는 “대량 멸종은 자연스러운 진화 과정이 아니라 소행성의 충돌과 대규모의 화산 활동 등 지질학적 변동에 의한 갑작스러운 생물종의 변화”라고 말했다.

생물종의 변화는 화석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생물의 흔적을 나타내는 화석은 생물이 죽으면 오랜 시간 땅 속에 묻혀 있다가 굳어지면서 형성되고, 파도나 바람에 의해 땅이 깎이면서 지표면에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화석을 통해 고생물의 ▲생존 기간 ▲분포 면적 ▲서식 환경 등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으며, 최근에 생긴 화석일수록 진화된 생물의 화석임을 알 수 있다. 김 교수는 “지층 내 존재하던 화석의 종류가 급변했다는 것은 지질학적 사건이 그 시대의 생태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지질시대를 지정하기 위해서는 특정 지질시대가 시작된 시점의 지질학적 흔적을 비교적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국제표준층서구역’을 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국제층서분류위원회는 전 지구적인 변화의 흔적이 보존되고 접근성이 뛰어난 지역이 확인될 경우, 그곳을 국제표준층서구역으로 지정한다. 김 교수는 “보다 명확하고 객관적인 지질시대 구분을 위해 국제층서분류위원회는 지질시대가 변하는 경계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지질시대를 구분하는 단위를 변화의 규모가 큰 순서대로 나열하면 ▲누대 ▲대 ▲기 ▲세 ▲절이다. 각 단위들은 지질학적 변동이나 생물의 진화 양상에 따라 세분화된다. 구분단위가 클수록 지질학적·생물학적 변화가 크게 나타난다. 김 교수는 “지질시대의 구분 단위는 지질학적 변동으로 인한 지구 환경 및 생태계의 변화 규모를 기반으로 어떤 단위의 변동으로 정의할지 결정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단위를 바탕으로 지질학계에서는 지구가 형성됐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지질시대를 정의해 왔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현생누대 신생대 제4기 홀로세’라고 한다. 현생누대는 고생대 캄브리아기부터 현재 홀로세까지 포괄하는 지질시대의 가장 큰 구분단위다. 현생누대는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나뉜다. 제4기는 신생대에서 세분화된 단위로, 플라이스토세와 홀로세가 이에 포함된다. 고생대는 약 5억 4천만 년 전부터 중생대가 시작하기 전까지를 나타낸다. 고생대임을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화석은 삼엽충의 화석으로, 이 시대에는 주로 무척추동물, 어류 등이 출현했다. 파충류가 번성했던 중생대는 2억 5천만 년 전부터 신생대 전까지 지속됐으며, 암모나이트 등이 대표적인 화석이다. 신생대는 6천 6백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고, 매머드 등 포유류가 번성하며 인류가 탄생한 시기다. 이진용(강원대학교 지질학전공) 교수는 “대는 누대를 세분화한 시대로, 지구의 지질학적 변동과 생물의 진화 양상에서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약 11,700년 전 시작된 홀로세는 그리스어로 ‘전체’를 의미하는 ‘Holos’와 ‘새로움’을 의미하는 ‘Cene’가 합쳐져 만들어진 말로, ‘모든 화석이 새롭게 구성된 시기’라는 의미를 지닌다. 홀로세 이전의 시기인 플라이스토세의 빙하기가 끝나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생물종과 지층에 큰 변화가 발생했고, 홀로세가 도래했다. 이 교수는 “빙하가 소멸되면서 매머드 등의 포유류가 사라졌으며, 빙하에 덮여있는 지층이 드러나면서 새로운 동식물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현재 인류의 활동으로 인해 지구의 지질학적 변동과 생물학적 변화가 발생하고 있어, 홀로세와 구분되는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시대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제기된다. 인류세(Anthropocene)는 인류를 뜻하는 ‘Anthropos’와 ‘Cene’가 합쳐진 말로, ‘인류가 빚은 지질시대’라는 의미다. 지구의 일부에 속하는 인류가 우점종***으로 자리 잡아 지구시스템을 급속도로 파괴시키고 있기 때문에 인류로 인한 새로운 지질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임현수(부산대학교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인류세의 도래는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지구환경은 돌이킬 수 없이 변화됐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전했다.

학자들은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시대가 도래하게 된 요인으로 1950년대 전후로 활발했던 ‘핵실험’을 지목한다. 핵실험이 지층에 큰 충격을 주면서 인공지진이 일어나 가까이 있는 지층에 균열이나 함몰 등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이미 많은 생물들에게서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는 등 핵실험은 생태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 교수는 “핵실험으로 인해 방출된 방사능 물질이 지층에 퇴적돼 지층 형성 과정을 방해하고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인류의 산물인 쓰레기도 지층과 생태계에 영향을 준다. 미세플라스틱은 하수 처리 시설에서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바다에 버려진다. 미세플라스틱이 해양생물의 몸에 축적되면 염증 등을 일으켜 멸종동물이 생기고 해양 생태계 변화를 불러온다. 이 교수는 “미세플라스틱은 생물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생물들의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인류가 지구를 변화시킨 증거가 모여 있는 캐나다의 ‘크로퍼드 호수’가 인류세의 국제표준층서구역으로 정해졌다. 크로퍼드 호수 일대에서는 핵폭탄의 원료로 쓰이는 플루토늄과 화석연료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탄소 입자, 미세플라스틱 입자 등의 물질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구에 영향을 미친 인류 활동의 증거들이 보존돼 있기에 크로퍼드 호수가 국제표준층서구역으로 선정된 것이다. 김 교수는 “크로퍼드 호수의 퇴적층에서 명확히 인류의 핵실험 증거를 찾을 수 있다”며 “이처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는 표식으로 지질시대의 변화를 정의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인류세의 시작 시기가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학계의 의견이 엇갈린다. 대부분의 학자는 ▲인구 증가 ▲기온 상승 ▲방사능 확산 등이 발생한 시기인 1950년을 인류세의 시작 시기로 제안한다. 하지만 수백만에서 수천만 년 단위로 나뉘던 기존 지질시대의 주기와는 다르게 11,700년 만에 바뀌는 것은 지나치게 짧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현재 지층이 과거와 다르게 변화했다는 흔적은 확연하게 발견된다”며 “과학기술의 발전 등으로 더 세밀한 단위의 지질시대 구분도 가능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류세 도입에 대한 논의가 확실한 만큼 관련한 연구도 덩달아 활기를 띠고 있다. 남욱현(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질학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약 1950년경의 인류의 활동을 잘 나타내는 지층을 찾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북극의 퇴적물이나 해양퇴적물에 기록되는 인류의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며 “더 나아가 인류의 영향이 해양생태계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류세의 도입 논의는 인류가 파괴한 생태계에 대한 위기의식을 심어 주고 환경 보존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박 교수는 “인류는 지구를 이용 대상으로 변형시키고 훼손시켰다”며 “인류세로의 변화가 갖는 의미를 통해 미래의 기후나 환경 위기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지구와 공생하는 관계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지구시스템 : 대기권·수권·생물권 등 지구 환경을 구성하는 권역들의 집합체

**빙하코어 : 극지방에 오랜 기간 묻혀 있던 빙하에서 추출한 얼음 조각

***우점종 : 생존·적응·번식 과정에서 다른 종보다 우위에 있는 종

신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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