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일상 속을 파고든 디지털성범죄 (한성대신문, 627호)

    • 입력 2026-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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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6-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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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에 디지털성범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2020년 발생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성착취물 제작·유포하는 범죄의 심각성을 드러내며 국민적 공분을 샀다. 이후 디지털성범죄 근절을 위한 제도 개선과 피해자 보호 대책이 마련됐으나, 범죄는 플랫폼과 수법을 바꿔가며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AI 기술의 발전으로 범죄 수법은 더욱 정교해지는 반면, 이를 규제하고 대응하기 위한 장치는 답보 상태다.

디지털성범죄는 인공지능 기술, 디지털 기기 등을 이용해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타인의 성적 자율권과 인격권을 침해하는 범죄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에 따라 ▲불법 촬영(비동의 촬영) ▲불법촬영물 소지·시청 ▲불법합성·편집(딥페이크) ▲유포·협박 등으로 나뉜다. 피해자의 신체를 불법 촬영하거나 SNS 등에 게시된 사진을 무단으로 수집해 성적 이미지로 합성·유포하며 제작자, 유포자, 소비자가 분업적으로 범행에 가담하는 연쇄적인 범죄 구조를 띤다. 한민경(경찰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디지털성범죄는 보이스피싱 범행처럼 제작자, 유포자, 소비자 등이 서로를 알지 못하는 연쇄적인 범죄계층구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기술의 급성장으로 피해 대상도 이전보다 더 어리고 취약한 곳으로 향하고있다. 한국여성진흥원에 따르면 딥페이크 기술 등을 활용한 합성·편집 피해는 2023년 대비 2025년 282% 증가했으며, 이 중 피해자 연령은 전 연령대 중 20대가 49.1%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2024년에는 서울대학교와 인하대학교에서 딥페이크 성범죄가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인하대학교 딥페이크 사건은 같은 대학 동기 17명을 대상으로 ‘지인능욕방’을 운영하며 허위 성착취물을 270여 차례 제작·유포한 사건이다. 지난 3월 고려대학교와 6월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도 불법 촬영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가장 먼저 만성적인 법체계의 분산 문제가 지적된다. 디지털성범죄는 하나의 연속된 범행이지만, 『성폭력처벌법』 등의 현행법은 불법 촬영, 허위영상물 제작·유포, 이를 이용한 협박·강요 등 범행 유형별로 처벌 조항을 구분하고 있다. 실제로 2025년 대법원은 피해자가 아닌 제3자의 신체 사진을 피해자의 사진인 것처럼 제시해 협박한 행위에 대해 협박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협박에 사용된 사진이 피해자의 촬영물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피해자 지원 수요가 늘어나는 가운데 이를 당할 전문 인력과 운영 기반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디지털성범죄 피해 지원은 일회성 상담이나 삭제 요청에 그치지 않고, 영상물의 재유포 여부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수사·법률·의료 지원까지 연계해야 하는 장기적인 업무다. 그러나 2026년 기준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정규 인력은 43명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역 피해 지원 기관의 인력이 지자체별로 차이가 나며 업무가 과중되는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원상(조선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피해 지원 수요가 증가하고 업무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지역별 운영 여건까지 달라 안정적인 지원 체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디지털성범죄의 실태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국가 통계 체계도 미흡하다. 현재 국가데이터처가 운영하는 국가통계포털(KOSIS)은 국내 주요 국가승인통계를 통합해 제공하지만, 디지털성범죄의 발생 규모와 피해 양상을 종합적으로 보여주기 어렵다. 경찰의 범죄 신고 건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지원 건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불법 정보 심의 건수 등이 각각 다른 기준으로 집계돼 분산되기 때문이다. 결국 객관적인 통계의 부재는 실태에 근거한 정책 수립을 가로막고, 국가 대응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성범죄물의 유통과 착취가 수익으로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가 형성됐다는 점이 근본적인 문제다. 불법 플랫폼은 성범죄물을 유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광고, 유료 회원제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며 동일 운영자가 여러 사이트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범죄를 조직화하고 있다. 기존 대응은 개별 영상물의 삭제와 접속 차단에 집중돼 범죄 수익을 차단하고 유통망 자체를 해체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범죄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불법 콘텐츠의 삭제만으로는 범죄의 재생산을 막기 어렵다는 의미다. 한 교수는 “특히 성범죄물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 유통망의 적발성이 낮은 편”이라며 “국내에서도 대형 서버로부터 범죄 수익을 환수한 사례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분절된 디지털성범죄 규정은 새로운 범죄 수법이 등장할 때마다 개별 처벌 조항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온 데서 비롯된다. 정부는 새로운 범죄 수법이 등장할 때마다 기존 법률에 개별 조항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형사법은 구성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므로, 여러 행위가 결합된 범죄라도 개별 조항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해당 조항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개별 행위의 법적 판단이 실제 범행의 전체적인 맥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거나, 범죄의 특수성이 고려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문인력 양성 교육 기반이 미비한 점도 디지털성범죄 관련 인력난의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피해자 지원 기관이 피해 영상물 삭제, 상담 등 현장 업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기존 종사자 교육까지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현장 지원과 인력 양성 업무가 일부 기관에 집중되고 신규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할 교육 기반도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다. 이한(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대표는 “디지털성범죄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범죄인 데 반해 예산은 매번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분석했다.

디지털성범죄의 종합적 통계가 부재한 문제는 복합 범죄를 집계하기 위한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하나의 범죄로 여러 피해자가 발생하더라도 하나의 사건으로 처리하는 전통적인 범죄 통계 작성 체계 탓에 디지털 성범죄를 역시 제대로 집계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디지털성범죄는 한 번의 유포로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송효종(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수사기관의 범죄 통계 집계 과정이 하나의 사건에 주된 범죄 한 건을 중심으로 기록하게 돼 있다”며 “한 사건에 여러 유형의 범죄가 발생할 경우 주된 범죄 이외의 나머지 범죄들은 기록되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불법 사이트의 수익 구조를 차단하기 어려운 배경에는 사후 차단 체계가 자리한다. 현행 대응은 불법 정보에 대한 심의와 시정 요구를 거쳐 접속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 등에서 사이트의 불법성 여부를 판단하고 심의를 거쳐 삭제·접속차단 등을 요청하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운영자가 도메인을 변경하거나 새로운 사이트를 개설할 가능성이 높고, 해외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는 경우 국내 차단 조치만으로는 한계가 따른다. 한 교수는 “국내에서 처벌이 가능한 경우라도 국제 공조가 잘 이뤄지지 않아 총책을 잡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술회했다.

범죄 유형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법률을 정비하는 방안이 대두된다. 개별 범죄 수법을 일일이 열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피해자의 동의 없이 성적 이미지나 영상물을 제작·변형·유포하는 행위 자체를 중심으로 처벌 요건을 정비하는 형태다. 2022년 영국 법률위원회는 기존의 법률이 디지털성범죄를 포괄하지 못한다고 보고 이 같은 방안을 적용 중이다.

전문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인력 양성 경로도 마련돼야 한다. 피해 지원 업무는 심리 상담과 법률 지원, 디지털 기술 대응 등 복합적인 전문성을 요구하는 만큼 특정 기관의 교육에 의존하기보다 대학과 전문 교육기관, 피해자 지원 기관 등을 연계한 다각적인 양성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론 교육과 현장실습을 병행해 실무 역량을 갖춘 인력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토대가 된다. 이원상 교수는 “처벌 수위만 높일 게 아니라, 피해자 지원 인력을 위해 시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정부의 예산 증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디지털성범죄를 독립적인 통계 항목으로 설정하고 기관 간 데이터를 연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건별로 여러 범죄 유형과 관련 정보를 함께 기록할 수 있는 통계 체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미국의 범죄보고체계인 NIBRS를 차용해 하나의 사건에서 발생한 여러 범죄를 각각 기록하고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수집해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다. 송 교수는 “통계 항목을 세분화하고 기관 간 정보를 연계해야 범죄의 실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실효성 있는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술회했다.

개별 콘텐츠의 삭제와 접속 차단을 넘어 불법 사이트의 운영 기반과 수익 구조를 직접 차단하는 대응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불법 사이트가 도메인을 변경하거나 서버를 이전하더라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클라우드·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 사업자와의 협력 체계를 강화하고 광고와 결제 수단을 통한 범죄 수익의 유입 경로도 차단하는 식이다. 이원상 교수는 “센터가 적극적으로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다양한 권한 위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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