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창신동, 그 미로 속에 숨겨진 흉터 (한성대신문, 529호)

    • 입력 2017-12-04 00:00
▲ 봉제거리에서 볼 수 있는 봉제관련 가게. 이러한 가게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우리학교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창신동. 한번 정도는 소개하고 싶은 곳이었지만, 지금까지 이어온 ‘서울나들이’의 분위기상 창신동은 아이템으로 선뜻 고르기 어려운 장소였다. 기존에 탐방했던 장소들과 다르게,‘창신동에 가면 즐겁다. 힐링할 수 있다’ 정도의 말로 가볍게 써낼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구태여 창신동을 언급하는 이유는,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온 이동네에 스며있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다.마음의 준비가 됐다면 지금부터 ‘창신동 나들이’를 떠나보자.
 2015년 박원순 시장이 ‘봉제산업 종합 발전계획안’을 발표한 후로, 창신동에는 봉제거리 박물관이 건립됐다. 많은 사람들이 봉제체험, 봉제거리 탐방을 위해 박물관을 찾는다. 그러나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봉제거리와는 다른 상반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창신 봉제거리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을 벗어나 주변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사람은 별로 없는데 묘하게 시끌벅적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쉬지 않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오토바이들과 살짝 열린 틈새로 들리는 재봉틀 소리 때문이다. 창신동은 의류산업의 메카인 동대문 지역과 맞닿아 있어 봉제업이 크게 발달해왔다. 주의를 기울여 주변을 관찰해보면 재봉틀 소리가 들려오는 근원이 곳곳에 있는 봉제공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봉제공장 안에는옷을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곳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창신동 주민들이 ‘돌산밑’이라고 부르는 장소에 도달할 수 있다. 다만 수많은 주택과 봉제공장으로 인해 길이 미로처럼 되어있어, 이곳까지 찾아가는 것도 힘들 수 있다. 워
낙 복잡한 곳이니 인근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서 찾아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가까스로 이 장소에 도착하면, 일반 주택가에서는 보기 드문, 위험해 보이면서도 신기한 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깎아지른 절벽의위와 아래에 늘어선 주택들의 모습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절벽의 위아래에 집을지을 생각을 했을까?
 과거 이곳은 깎아지른듯한 절벽이 아니라 ‘돌산’이라는 명칭을 가진 바위산이었다. 돌산 근방에는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도당이 존재했다. 근방에 있는 안양암에는 지금도 암석을 파내어 감실을 만들고 부처님을 새긴 ‘석감마애관음보살상(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22호)’이 있다. 어떻게 보면 돌산은 우리 조상에게 있어서 신성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일본이 조선총독부, 경성역, 조선은행, 경성부청 등의 건물을 짓기 위해 창신동의 돌산에서 돌을 다량으로 채굴한 탓에, 절벽의 모습을 띄게 됐다. 이후 1960년대, 이 지역에 사람들이들어와서 살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굳어지게 됐다.
 학교를 다니면서 쉽게 지나쳐온 창신동 골목. 가던 걸음을 잠깐 멈추고 골목길로 들어가보면, 그곳엔 당신이 몰랐던 창신동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창신동 골목길로 들어가면 볼 수 있는 돌산밑.

김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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