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에 올라> 편안하지 못한 삶 (한성대신문, 538호)

    • 입력 2018-10-22 00:00

 “이제 들어가요?” 분명 자취방에 배달시킨 치킨을 문 앞에 놓고 가달라고 했다. 그럼에도 안심이 되지 않아 치킨이 배달된 후 일부러 5분이 지난 후에 문을 열었다. 그런데 배달원은 어째서 우리집 승강기 앞에 서있으며, 왜 내게 그런 말을 건넨 걸까. 놀라서 치킨은 잡지도 못한 채 문을 닫아버렸다. 내가 살던 집은 5층이었다. 배달원은 승강기를 5분씩이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또한, 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건넸으면 안 됐다. 나는 무서워서 다음 날이 돼서야 복도에 나가 차갑게 식은 치킨을 가져와 먹을 수 있었다.
 가게에 연락해 항의할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주소를 알고 있는 배달원을 신고하기에는 그의 보복이 두려웠다. 사과는커녕 해코지를 당할 것이 분명했다.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나설 수도 없었다. 배달원은 남자였고,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배달원이 작정하고 나에게 위협을 가한다면 나는 어찌할 재간이 없었다. 그 당시 나는 그 배달원이 내 주변을 맴돌며 어떤 일을 벌이지는 않을까 두려워 한동안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는 일은 생각지도 못했다. 친구들과 놀 때도 대부분 해가 떠 있을 때 집에 들어갔다. 그마저도 친구에게 동행을 부탁했다. 그 날 이후로 배달음식은 항상 집 근처 골목에서 받았다. 그 가게에 다시는 주문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수많은 불편함을 겪으면서도 나는 결국 그 배달원을 가게에 고발하지 못했다. 내가 조심하며 겪는 불편함이 고발 후 겪는 불편함보다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사실 불편함에 크고 작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불편함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편안하지 못한 삶’을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따뜻한 치킨을 편하게 문 앞에서 받아 먹고 싶고, 친구와 늦게까지 놀고 싶다. 이런 평범한 일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호소영(영어영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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