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하나의 세상을 지우는 일, 유품정리사 (한성대신문, 580호)

    • 입력 2022-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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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3-08-16 14:27

특수청소전문업체 바이오해저드 김새별 대표

▲김새별 대표 [사진 : 김지윤 기자]

<편집자주>

1인 가구가 700만 명을 돌파한 시점, 이 중 청년층이 차지하는 정도는 10명 중 4명에 육박한다. 1인 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고독사의 비율도 늘어나고 있다. 고독사 현장 중에는 악취나 부패의 정도가 심각한 경우도, 가족이 직접 현장을 목격하기 힘들어 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때에 고독사가 발생한 집은 누가 정리할까? 여기, 세상을 떠난 이들이 남기고 간 자리를 정리하는 사람이 있다. 특수청소전문업체 ‘바이오해저드’를 운영하고 있는 김새별(46) 대표다.

그를 만나기 위해 충청북도 청주시로 향했다. 처음 그가 유품정리사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서울에 바이오해저드 본사의 뿌리를 내렸었다. 그러나 그는 전국팔도를 돌아다니며 유품 정리 작업을 진행한다는 직업적 특징을 살리기 위해 전국 어디로든 이동하기 유리한 청주에 터를 잡았다.

2시간을 달려가 만난 김새별 대표는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나’보다 ‘가족’, ‘나’보다 ‘어려운 이웃’, ‘나’보다 ‘젊은이’. 헌신을 신념으로 살아가는 김새별 유품정리사는 매일 같이 새로운 죽음을 맞이하고, 정리하고, 흘려보내야 하는 사람이었다.

박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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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별 대표와 바이오해저드 직원이 고인의 침대 프레임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바이오해저드김새별' 유튜브 채널]

죽음, 그 옆에서 일하다

김 대표는 고독사나 자살, 살인 사건 현장의 특수청소와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고 이를 유족에게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보통 이러한 현장은 유족이 청소하기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취가 진동하기 때문에, 이를 위한 특수청소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하루, 이틀 정도 지난 현장은 그나마 악취가 덜 하지만, 시간이 경과돼 부패가 진행된 현장은 전문가가 아닌 이가 정리하기 힘들다.

“사람은 보통 좋은 기억보다 좋지 않은 기억이 오래가요. 유족들이 사건 현장을 직접 정리하면서 좋지 않은 기억을 오래 가져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현장에서 폐기할 물건은 폐기하고, 유품을 정리해 유족에게 전달하는 일까지가 제 역할이에요.”

그가 처음부터 유품정리사를 지망한 것은 아니었다. 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금융업에 종사하려던 꿈이 가정사로 인해 좌절되고, 인력 사무실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성실하게 일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다른 회사에 채용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나면서 장례지도사로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다. 친구의 염*을 정성스럽게 해주는 장례지도사의 모습을 보고 타인을 위한 직업을 꿈꾼 것이다. 장례지도사는 상(喪)을 당한 유족의 요청에 따라 장례 절차를 주관하는 일을 한다.

장례지도사로 10여 년간 일했던 그에게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연히 한 고객이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해달라는 의뢰를 청한 것이다. 당시엔 외부인이 고인의 유품을 정리한다는 개념이 확산되기 이전이었다. 직접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기 어려웠던 의뢰인의 부탁이었다. 그렇게 첫 번째 유품 정리를 진행했고 그 날 겪은 기억을 바탕으로 블로그에 게시글을 작성했다. 운명처럼 그 블로그의 내용을 보고 또 다른 유품 정리 의뢰가 들어왔고, 두 번째 의뢰까지 마친 후 그는 마침내 유품정리사의 길을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결심을 마친 그는 홀로 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국내 최초의 특수청소전문업체인 ‘바이오해저드’다.

“누군가가 꼭 해야 한다면 내가 해야겠다는 마음에 혼자 회사를 시작했죠.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헤매기도 했어요. 당시만 해도 장례식장에서 함께 일하던 친한 동료들이 쉬는 날 회사 일을 도와주는 방식으로 운영했어요. 체계가 완전히 잡히지 않아 헤매다가 직원을 구하고 본격적으로 회사를 경영하기 시작했죠.”

유품정리사 업무에도 난관은 존재한다. 유품정리사로서의 고충은 ‘냄새’다. 사람이 죽었을 때 나는 냄새는 비닐로 꽁꽁 싸매도 흘러나온다. 냄새를 한번 맡고 나면 여기도, 저기도 냄새가 남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유품 정리를 마친 후에는 몸에 냄새가 배어 다른 일정을 잡지도 못한다. 하루 종일 청소를 진행하기 때문에 식사는 필수적이지만 냄새 때문에 식당의 거절을 받기 일쑤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청소하는 집의 대문 앞에 앉아 식사를 해결하는 처지다. 그럼에도 그가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다.

“이 일은 어떻게 보면 슬픈 일이에요. 하나의 세상을 없애버려야 하니까요. 그런데 사실 그 집에 누군가는 살아야 하잖아요. 그런 측면에서는 또 다른 새로운 삶이 시작될 수 있게 청소하는 것에 보람을 느껴요. 하지만 안타깝기도 한 마음이 한편에 자리 잡고 있죠.”

죽음과 관련한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한 생각도 변했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과거에는 세상을 떠나면 거기에서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아픔이나 마음을 헤아리게 됐다는 말이다. 더불어 김 대표는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기억을 많이 남기는 것이 인생이며, 죽음은 그 행복한 기억을 가지고 떠나는 과정이라고 여긴다.

▲성수동에 위치한 고시원의 고독사 현장이다. [사진 제공 : 김새별]

고독사가 없는 세상을 위해 나아가다

김 대표는 유품 정리 현장을 기록하는 목적으로 유튜브 채널 ‘바이오해저드김새별’도 운영하고 있다. 고독사 현장 영상이 주를 이룬다. 그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1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는 희망에서였다. 이는 한 청년으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계기로 작용했다. 취업난에 시달리던 그 청년은 원하는 직업을 가지기 전까지 근무할 아르바이트를 구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아르바이트 자리조차도 없어 실의에 빠진 채 하염없이 원룸에 누워 있다 자살에 관련된 키워드를 인터넷에 검색했고, 그러던 중 김 대표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도움을 요청하고자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온 청년은 울면서 도와달라고, 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집이 엉망이니 정리해주시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대요. 지금 어디서 지내시냐고, 부모님께 연락해서 본가로 가서 지내시라고 말했죠. 계속 설득하니 간신히 본가로 내려갔어요.”

그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청년 고독사는 다른 고독사 사례들과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자살한 청년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나기 전 메시지를 남긴다는 것이다. 고인이 자신의 친한 친구들에게 죽음을 암시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남긴 후, 고인에게 연락이 닿지 않으면 친구들은 바로 고인에게 찾아간다. 그래서 대부분의 청년 고독사는 다른 연령대의 고독사와 비교했을 때 발견되는 시기가 매우 빠른 편이다. 청년 고독사의 현장은 부패가 심하거나 악취가 심한 것은 아니지만, 고인의 부모가 떠난 자식이 남기고 간 자리를 직접 정리하기 힘들어 의뢰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

김 대표는 청년의 죽음은 경제적인 부분과 연관된 경우가 다수라는 입장이다. 그가 만난 현장에서 기억에 남는 젊은 고인의 유품은 새로 사다놓은 100장의 이력서 뭉치였다. 더불어 고인의 방에는 취업 및 면접 관련 서적이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확산 후 청년 고독사 현장에 대한 일감 수가 늘어난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그는 일자리에 대한 과도한 경쟁이 문제의 시발점이라고 여긴다.

“옛날처럼 적금하기 굉장히 힘들어요. 쓸 곳도 많고 필요한 것도 많으니까 빚이 많이 생기는 거죠. 와중에 사회적 시선도 신경 써야하니 스스로 위축되고 새로운 것을 도전하기도 꺼려해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창피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다 결국 자살로 이어지는 청년들이 많더라고요.”

그는 경제 사정이 어려운 청년들을 위해 무료 청소도 진행한다. 고독사로 떠난 40대, 50대의 자식은 사회로 막 뛰어드는 20대인 경우가 다반사다. 중요한 것은 일반적인 장례에 비해 고독사의 장례 비용이 2배 가까이 비싸진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고독사로 사망한 부모를 둔 자식에게 청소 비용만큼이라도 부담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같은 맥락으로 김 대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을 돕기 위해 비영리 민간단체 설립을 준비 중이다. 그가 준비 중인 비영리 민간단체 ‘세이브더라이프’는 고독사 현장에 대한 무료 청소뿐만 아니라, 고독사를 예방하는 활동까지 계획하고 있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타인을 도울 때 느낄 수 있는 뿌듯한 감정이 좋아요. 많은 사람이 알아주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제 자식에게도 굉장히 당당하고, 스스로가 괜스레 멋있게 느껴지기도 해요. 제가 하는 일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청년들에게 담대해지길 권한다. 누구보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세대라는 사회적 시선이 무색하게, 직업적인 면에서는 담대하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는 입장이다. 이어 직업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강조한다.

“직업에 대한 여러 가지 경험이 중요해요. 자신의 전공 경험이 정말 재밌다가도 막상 일을 하면 안 맞는 경우가 정말 많거든요. 이것저것 해보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눈치 보지 말고 뭐든지 도전하고, 열심히 해봤으면 좋겠어요.”

*염 : 시신을 수의로 갈아입힌 다음, 베나 이불 따위로 싸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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