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가사를 타고> 음악에 비친 ‘나’, 자기애를 앞세우다 (한성대신문, 586호)

    • 입력 2023-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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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3-06-06 02:04

“내 장점이 뭔지 알아? / 바로 솔직한 거야” 아이돌 그룹 IVE의 히트곡 의 킬링파트 중 하나다. IVE는 과 등 ‘자기애(自己愛)’를 표현하는 곡들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청년층이 대중음악의 주 소비층으로 떠오른 시기는 1970년대였다. 당시 청년들은 서구식 문화의 영향을 받은 포크 음악과 록 음악을 선보였다.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는 “1970년대 청년들은 직접 자기의 노래를 쓰고 부르면서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음악을 통해 전달하는 세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신 정권이 대중음악 탄압을 강화하면서 당시 청년들이 즐기던 음악은 침체기를 맞이했다. 이후 1980년대는 가수 조용필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 음악이 선보여지던 시기다. ‘3S 정책’을 펼친 전두환 정권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대중음악이 활기를 띠었으며,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댄스음악도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게 된다.

급격한 변화 속 ‘나’라는 개인주의 성향을 지닌 첫 세대는 바로 1990년대의 ‘X세대’다. ‘신세대’로도 불린 X세대는 1970년대에 태어나 경제 호황과 세계화 등의 흐름 속에서 자라났다. 더불어 민주화라는 시대적 과제도 완수돼 가던 시기로, 정치·사회적 억압에서 벗어났다. 이들은 기성세대와 자신들을 분리하고 개성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오지헌 음악 칼럼니스트는 “X세대는 개성을 중시한 최초의 세대였다. 개인주의가 떠오르게 되는 시기로 남들과는 다른 개성을 추종했고 이는 곧 대중음악에 반영됐다”고 말했다. 이어 권현석(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전임연구원은 “당시 제한되었던 정치·문화적 자유를 완전히 누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X세대는 개인의 정체성을 발견해 나갔다”고 첨언했다.

그래서인지 1990년대에는 댄스와 힙합 멜로디에 ‘나 자신’이 중심 키워드로 가사에 직접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는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 이 시꺼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라며 당시 청소년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또한 DJ DOC의 은 “사람들눈 의식하지 말아요 /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어요 / 내개성에 사는 이세상이에요 / 자신을 만들어 봐요”라며 개인의 개성을 직접적으로 강조했다. 양재영(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전공) 외래교수는 “개인적인 감성이나 욕구를 표현하고 싶었던 X세대의 감성과 맞아떨어지는 음악이 나오면서 서태지와 아이들 등이 그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2000년대에는 자기애를 주제로 한 음악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이효리의 <10 Minutes>는 “Just One 10 MINUTES / 내 것이 되는 시간 / 순진한 내숭에 속아 우는 남자들”이라며 10분 만에 다른 남자들을 유혹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8년 발표된 원더걸스의 <So Hot>은 “I’m so hot 난 너무 예뻐요 / I’m so fine 난 너무 매력 있어 / I’m so cool 난 너무 멋져”라며 외모적인 자신감을 드러냈다.

4세대 아이돌 그룹으로 불리는 IVE, LE SSERAFIM 등이 이러한 흐름을 같이 하고 있다. LE SSERAFIM의 에는 “내 흉짐도 나의 일부라면 / 겁이 난 없지 없지”라는 가사가 담기며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나아가겠다는 메시지가 전달됐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포미(FOR ME)족 등 나를 이해하고 자기 보상이 강하며 가치 실현을 중요시하는 시대로 진화해왔다”며, “‘우리’라는 표현도 ‘나’로 바뀌는 등 많은 변화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자기애를 드러내는 음악이 대중음악 속 하나의 주제로 자리 잡았다고 분석한다. 미묘 대중음악평론가는 “1990년대부터 나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가진 노래들이 사랑 노래와 같은 음악의 기본적인 주제가 됐다”며, “한국 대중음악 시장과 이를 소비하는 한국 사회의 특징적인 면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순간 치열한 경쟁을 겪어내는 현 청년층의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고자 하는 욕구가 반영됐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황은지(단국대학교 부설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교수는 “음악에서 드러나는 자기애적 성향을 선호하는 양상은 도피처를 찾고 자신을 다잡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했다. 이어 권 전임연구원은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고 자아실현을 억압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고 싶은 욕구는 2000년대 대중음악의 중요한 동력 중 하나”라고 말했다.

김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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