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내가 제일 잘 알지> 긱시크, 평범함으로 승부하다 (한성대신문, 599호)

    • 입력 2024-04-22 00:00
    • |
    • 수정 2024-04-22 00:00

<편집자주>

“요즘 애들은 왜 그래?” 어느 세대나 그랬듯, 현 젊은 층도 자주 듣는 물음이다. 진짜 요즘 애들은 왜 그럴까? 그래서 알아봤다.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만 보면 사족을 못쓰고 달려드는 기자가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MZ세대의 대표주자인 기자를 따라 청년이 열광하는 것을 파헤쳐보자.

지극히 평범해 패션계에서 도외시됐던 모범생 룩의 반란이 시작됐다. 모범생 이미지지만 시크한 느낌을 주는 ‘긱시크’가 청년들 사이에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청년들의 어린 시절, 혹은 그 너머 과거에 유행했을 형형색색의 다양한 안경,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느낌의 단정한 의류, 그리고 주근깨를 강조하거나 강한 하이라이트로 독특한 느낌을 더해주는 스타일링까지. 괴짜미 넘치지만 시크한 긱시크 문화를 알아보자.

황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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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한 괴짜들의 룩, 긱시크

비주류였던 긱시크 스타일이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다. 긱시크는 괴짜라는 뜻의 긱(geek)과 세련됨을 뜻하는 시크(chic)가 합쳐진 단어로, 단정하지만 독특하고 세련된 스타일을 나타낸다. 어수룩한 모범생을 뜻하는 너드(nerd) 스타일의 세련됨과 멋스러움을 더한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긱시크는 글로벌 패션업계가 올해 패션 키워드로 ‘프레피(preppy)’를 꼽은 것에서 시작됐다. 프레피란 교복처럼 단정한 셔츠와 면바지 등을 입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을 뜻한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프레피룩은 지적인 분위기를 내며 보다 정돈된 외모와 고품질 소재의 의상을 추구한다. 이러한 프레피룩에 너드미를 더해 트렌드에 앞서가는 긱시크룩이 파생됐다. 이재영(평택대학교 패션디자인및브랜딩학과) 교수는 “긱시크룩과 너드룩, 그리고 프레피룩은 모두 평범한 학생 스타일을 기반 으로 하며 프레피룩에 너드한 감성을 세련되게 접목한 것이 긱시크룩”이라고 말했다.

긱시크에 대한 관심은 패션업계를 타고 유명 인플루언서나 연예인들을 거쳐 청년들에게 퍼졌다. 인플루언서나 연예인을 패션 선망의 대상으로 보며 그들이 추구하는 긱시크 스타일을 청년이 수용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인플루언서의 영향으로 청년이 긱시크 스타일을 수용하며 그 안에서도 타인의 모방이 아닌 차별된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빈티지 안경샵에서 각기 다른 빈티지 안경을 구경하는 기자 [사진 : 김유성 기자]

긱시크하면 ‘안경’이지!

지금까지의 안경이 가진 이미지는 가라. 긱시크라면 알이 없어도, 테가 시야를 가려도 괜찮다. 안경은 긱시크 스타일링을 완성하는 아이템이 되기 때문이다. 강윤주(한성대학교 글로벌패션산업학부) 교수는 “긱시크 스타일에는 오히려 모범생 스타일의 안경이 세련되고 멋있는 스타일의 완성 요소가 됐다”고 전했다.

안경은 의상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어 긱시크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여러 옷을 입는 것이 아닌 안경 하나만 걸쳐도 긱시크 스타일을 표현할 수 있다는 가성비에 많은 청년이 소비한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청년들에게는 패션 감각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안경 하나를 택하는 것이 영리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긱시크의 인기를 등에 업고 안경 브랜드들도 더 독특하고 다양한 안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옛날 감성과 괴짜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안경 브랜드가 더욱 사랑받는 것이다. 플라스틱이나 금속과 같은 다양한 소재부터 동그랗거나 각진 형태 등 모양의 차이까지, 각기 다른 독특한 안경은 긱시크의 시크한 이미지를 표현해낸다. 강 교수는 “미우미우, 발렌시아가 등 안경의 유행을 이끄는 브랜드에서 다양한 패션 안경을 선보이고 있다”며 “안경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으로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옛 감성과 괴짜스러운 느낌이 나는 안경 브랜드가 각광받는다”고 설명했다. 세종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수연 학생은 “청년들은 기존에는 어수룩하다고 생각해 쓰지 못했던 안경을 세련된 코디와 조합해 잘 어우러지는 룩을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이러한 긱시크 안경 유행에 힘입어 기자도 직접 긱시크 분위기의 안경을 찾고자 SNS상에서 수많은 청년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빈티지 안경 매장 ‘쥬라옵티크’를 방문해 봤다. 수많은 안경 중 테 옆으로 눈 보안용 플라스틱이 장착돼 있는 초록색 뿔테 안경이 기자 눈에 들어왔다. 제작된 지 30여 년된 안경이었다. 어디를 가도 쉽게 볼 수 없는 디자인이기에 기자만 갖고 있다는 희귀성에 구매 욕구가 샘솟았다. 빈티지 안경을 파는 김희주(쥬라옵티크) 사장은 “긱시크가 유행하며 빈티지 안경을 찾는 손님이 많을 징조는 작년부터 있었다”며 “긱시크 하면 안경이 빠질 수 없기에 젊은 세대가 긱시크를 표현하려 매장에 많이 방문한다”고 설명했다.

▲빈티지 매장에서 긱시크 룩을 찾는 기자 [사진 : 김유성 기자]



왠지 모를 익숙함의 매력

긱시크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청년들이 입는 패션 스타일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긱시크 패션의 대표적인 양상은 주로 체크 셔츠나 특정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그리고 니트웨어 등 단정한 차림이다. 이 교수는 “긱시크 패션은 청년들이 프레피룩, 너드룩과 같이 단정한 클래식 패션에서 활용된 의상을 시크한 느낌이 들게끔 재해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긱시크 유행에 힘입어 SNS에서 긱시크 스타일링을 한 코디 셋업(Set-up) 게시물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저마다 다른 개성으로 옷 스타일링을 하며 의상뿐 아니라 안경, 메이크업 등 다양한 액세서리를 활용한 코디 셋업에 많은 청년들이 해당 게시글을 보고 따라 소비한다. 이 교수는 “현대사회의 모든 산업 분야는 SNS를 중요한 마케팅 도구로 활용한다”며 “SNS를 통해 청년들이 긱시크 패션을 소비하는 양상은 트렌드를 수용하고 변화시키는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이라고 전했다. 김 학생은 “주로 패션 브랜드와 협업해 여러 가지의 긱시크 코디를 알려주는 짧은 길이의 영상이 많은 것 같다. 긱시크룩을 처음 시도하는 사람들도 용이하게 참고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긱시크는 고급스러운 옷보다는 조금은 어수룩한 빈티지 의상이 핵심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 옷장에 있을법한 셔츠나 치마 등을 활용한다면 전체적으로 너드미에 시크한 분위기를 더할 수 있다. 긱시크 스타일로 미니 스커트나 발랄한 롱 스커트 대신 무릎을 겨우 덮는 애매한 기장의 중치마가 주목받는 것도 빈티지 의상을 추구하는 청년들의 인식에서 시작됐다.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전공 2학년에 재학 중인 김민지 학생은 “빈티지 의상으로 긱시크에 포함된 지적인 이미지와 너드미를 표현하면서도 개성 있는 크함을 드러낼 수 있는 긱시크 스타일의 옷을 구하려 빈티지 매장에 방문하곤 한다”고 전했다.

기자도 긱시크 스타일을 표현하고자 유명 SNS 코디 셋업을 참고해 긱시크 코디 셋업을 골라 빈티지 옷의 성지인 동묘 구제시장에서 긱시크 의상을 구매해봤다. 많은 빈티지 매장 중에서 특히나 청년들의 발걸음이 잦은 매장에는 긱시크 유행을 반영한 의상이 즐비했다. 기자가 방문한 ‘808빈티지’ 가게는 영업 전부터 청년들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청년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체크 셔츠 등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여러 옷들이 가득했기에 긱시크를 표현할 의상을 구매할 수 있었다. 이상곤(808빈티지) 사장은 “대부분 비슷한 옷을 많이 입고 다니기에 지금은 제작되지 않는 스타일의 자신만의 옷을 찾고자 빈티지 가게를 방문하는 청년들이 많다”고 말했다.



▲기자가 긱시크 스타일링에 어울리는 메이크업을 한다. [사진 : 김유성 기자]



꾸안꾸의 정석, 긱시크 메이크업

긱시크 메이크업은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느낌으로 전체적인 메이크업이 진하지 않다. 이는 본래 모습 그대로를 강조하고자 하는 긱시크 메이크업의 특성으로 긱시크 스타일에 완벽함을 더해준다. 김수연 학생은 “한 듯 안한 듯한 자연스러운 연출이 긱시크 메이크업의 핵심”이 라며 “긱시크 메이크업은 화려하기보다는 단정하고 정제된 느낌을 준다” 고 말했다.

주근깨를 강조하면서, 밝게 부각하고 싶은 부분에 바르는 하이라이터가 진하다는 것이 긱시크 메이크업의 특징이다. 과거엔 주근깨를 가리는 메이크업이 주된 양상이었다. 그러나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긱시크 메이크업에서는 주근깨가 있는 모습이 메이크업의 자연스러움을 표현하는 수단이 됐다. 때문에 주근깨가 있는 자신의 본래 모습 그대로를 표현하거나 주근깨가 없더라도 일부러 그려서 자연스러운 피부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이 교수는 “주근깨 등을 강조하는 것은 깨끗한 피부를 추구하는 우리나라 뷰티 시장의 경향을 벗어난 유행”이라며 “패션에 있어 타인과 차별화를 이룰 수 있는 자신만의 개성이 중요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긱시크 스타일로 완벽히 변신하기 위해 기자가 직접 긱시크 메이크업에 도전해 봤다. 유튜브에 긱시크 메이크업 방법에 관한 영상이 많이 올라와 있어 멀리 가지 않아도 손쉽게 긱시크 메이크업을 연출할 수 있었다. 직접 메이크업을 해보니 긱시크 메이크업만의 특이점이 눈에 띄었다. 긱시크에서 안경을 빼놓을 수는 없기에, 안경의 코 받침이 닿는 피부에 파우더를 살짝 바르는 단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긱시크 스타일의 옷과 안경에 자연스러운 긱시크 메이크업까지 더해지니 비로소 완벽한 긱시크 스타일링이 연출됐다. 주근깨를 그리고 긱시크 스타일링의 안경까지 장착하니 청년들이 열망하는 ‘힙’스러움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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