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창밖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창밖을 바라볼 때면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숙인 채 손바닥만 한 작은 화면 속으로 침잠해 있다. 그 심해의 적막 속에서 우리가 속도와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며 왔는지를 문득 깨닫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촘촘히 연결돼 있다. 하지만 그 연결의 실체는 서늘한 전파의 진동일 뿐, 서로의 숨결과 온기가 머물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타인의 삶은 화면 너머 화려한 선망의 대상으로만 존재하고, 정작 내 곁을 지나는 이의 고단한 어깨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오직 나의 온실만을 살피는 것이 생존의 미덕이 돼버린 지금, 누군가를 향한 진심 어린 염려는 무용한 참견이 되고, 타인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일은 가성비 낮은 감정 소모 정도로 치부되곤 한다.
지금 우리가 진정으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타인의 마음에 눈 맞춤하던 다정함은 아닐지. 상대방의 말간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그 안에 맺힌 슬픔을 읽어내고, 나와는 다른 누군가의 삶의 궤적을 “그럴 수도 있다”는 너른 품으로 안아주던 투박한 이해는 아닐지.
이제는 나를 보호하던 온실 벽을 스스로 깨트려야 할 때다. 그 벽 안에서 누리던 가짜 온기가 사실은 우리를 가장 무력하게 가두고 있었음을 결국은 인정해야만 한다. 이기주의라는 좁은 온실을 벗어나, 날카로운 외풍이 몰아치고 있는 타인이라는 광장 속으로 기꺼이 걸어 나가자. 내가 먼저 건네는 작고 사소한 배려, “오늘도 수고했어”라며 읊조리는 목소리들이 하나둘 모일 때, 비로소 우리를 둘러싼 삭막한 공기는 다시 온기를 띠기 시작할 테니까.
사랑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긍정하고, 각자의 삶이 가진 고유한 빛깔을 존중해 주는 태도 정도일 뿐이다. 다시금 서로의 마음속에 다정한 은방울을 울려주자. 그 맑은소리가 우리 사이의 거리를 메울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의 온전한 진심을 마주할 수 있을 테니까.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은 아주 멀리 있지 않다. 타인을 향해 고개를 드는 그 찰나의 순간에 이미 돌아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송윤선(사회과학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