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학송> 눈엣가시가 필요한 이유 (한성대신문, 623호)

    • 입력 2026-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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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6-06-08 00:00

처음 편집국장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맡았을 때, 필자의 마음속에는 막연한 걱정과 뜨거운 소망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그러나 어느덧 퇴임이라는 마침표 앞에 서게 됐다. 필자가 편집국장으로 활동한 지난 1년 가슴속에 품었던 단 하나의 다짐은 본지가 대학사회 속 ‘청년의 시선’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점차 개인의 진로와 성과에 몰두하면서 대학 공동체를 둘러싼 담론도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이 침묵 속에서 <한성대신문>만큼은 대학사회의 질문들을 지면 위로 집요하게 끌어올려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대학사회의 의제를 설정하는 공론장이 돼야 한다고 믿었다.

그 고민의 흔적들을 지면에 담아냈다. 본지가 주목한 ▲학생회 감사 경고 급증 ▲계약학과 학생 피해 ▲학내 배리어프리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퇴임을 앞둔 지금, 무거운 아쉬움 하나가 발목을 잡는다. 의제를 넘어 주장이 치열하게 오가는 공론장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의제를 설정하더라도 대학은 점차 질문을 기피하고 말을 숨기는 데에 열중했다. 대학본부와의 취재 과정에서 “왜 자꾸 물어보느냐”, “예민한 사안이다”라는 식으로 회피하는 일은 예사였다. 필자는 대학 자체가 대학언론을 그저 ‘눈엣가시’로 치부하고 있음을 뼈아프게 깨달았다.

하지만 대학언론은 본래 불편해야 마땅한 존재다. 통증이 몸을 괴롭히기 위함이 아니라 이상 신호를 알리는 ‘방어기제’이듯 말이다. 대학언론 역시 대학을 무작정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학이 외면한 문제를 드러내고 학생들이 느끼는 불편을 전달하는 것이다. 공동체가 놓치고 있는 미세한 균열을 공론장 위로 알리는 것 자체가 학보사라는 존재의 본질이다.

오늘날의 대학은 등록금 동결과 학령인구 감소라는 위기 속에서, 성과를 증명하고 수치를 남겨야 하는 상업적인 생존 경쟁의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대학본부가 눈앞의 실적과 지표에만 몰두할수록 시야는 좁아질 수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실제 목소리는 가려지기 마련이다.

불편하더라도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것이 대학언론의 숙명이다. 대학본부 역시 이를 단순한 성가심이나 소음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대학언론의 질문에 직면하고 답하는 과정이야말로, 대학이 학생들의 목소리를 직시하는 진정한 소통의 시발점일 테다. 질문과 답변이 거세된 공간은 필연적으로 고이기 마련이며, 대학언론의 존재 이유는 바로 그 침묵의 고착을 막는 데 있다. 대학본부가 대학언론의 필요성을 다시금 무겁게 인지할 때, 대학과 언론의 건강한 동행이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때로 누군가에게는 눈엣가시였을지언정,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던 학보사 기자로서의 여정을 마친다. 앞으로도 <한성대신문>이 던질 질문들에 본교가 책임있는 답변으로 응답하기를 기대한다.

이승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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