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학송> 기자와 학생, 그 어딘가 (한성대신문, 548호)

    • 입력 2019-10-1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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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19-10-13 11:46

으레 학보 편집일정은 고되기 마련이지만, 이번 호는 유난히 험난했던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취재 아이템을 선정할 때는 학내에 이렇다 할 일이 없어 보도 면이 소위 ‘가뭄’ 사태를 겪었고, 추석 연휴가 겹치면서 생명과도 같은 취재 기간이 축소됐다. 고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겨우 마련된 아이템은 예상치 못한 이유로 불발돼 결국 마감 직전에 아이템이 확정 되는, 입사한 이래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좋은 소재가 없거나 취재일정이 촉박한 경우만 학보사 기자를 괴롭히는 것은 아니다. 학보사 기자로서 겪는 고충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 으뜸은 바로 취재원으로 인한 스트레스다. 다양한 취재원들을 만나다보면 학보사 기자를 ‘기자’로서 존중하고 예우를 갖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례한 발언으로 기자들에게 모멸감을 안겨주는 사람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이번 호만 해도 ‘본인과 인터뷰를 진행할 거면 효력이 있는 공문을 가져오라’는 취재원을 만난 기자가 있으니 말이다. 학보사 기자는 학우의 ‘알 권리’를 대변하는 자로서, 학내외 사안이라면 무엇이든 마땅히 취재할 권리를 가질 수 있다. 하물며 ‘한성대학교’의 일을 <한성대신문>이 취재하는데 공문이나 가져오라는 건 ‘넌센스’다. 또한 취재 도중 딴청을 피우거나 예의 없는 태도로 일관하는 취재원을 만나 속앓이를 한 기자도 있었다.

이같은 고충은 학보사 기자가 ‘기자’와 ‘학생’ 모두에 발을 걸쳐놓고 있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기자의 업무에서 학생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학생의 신분에서 기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높여 무례한 취재원들에게 항의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학보사 기자의 본분은 과연 기자인가, 학생인가? 둘 중 무엇이 우선하는 가치인가?

이 질문의 대답은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대답처럼 무엇이라고 특정할 수 없다. 학보사 기자가 자유로운 취재활동을 보장받는 기자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동시에 학업을 병행하는 학생이라는 것도 옳은 명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보사 기자는 ‘기자이자 학생’으로 정리할 수 있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취재할 때는 기자로서, 학업에 집중할 때는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학보사 기자의 존재 이유를 짚어보게 된다. 좋은 학점을 취득하기 위해 학교생활에만 충실한 것도 벅찬 마당에, 촉박한 편집일정 속 무례한 취재원을 만나며, 며칠씩 밤을 새워가며 고생하는 이유 말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그것은 바로 대학언론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 때문일 것이다. 물론 힘든 순간은 매번 신문사를 괴롭히지만, 대학언론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 좋은 학교를 만들어보겠다는 사명감은 신문사를 또다시 일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늘 편집일정이 순조롭게 조용히 지나가면 좋겠지만, 이리저리 치이며 신경쓸 것이 많은 학보사 기자의 숙명은 어찌할 수 없다. 그래도 어떻게든 일은 풀린다고 하지 않던가. 아무리 고되고 험난했다 한들, 어쨌든 우리는 이번 호도 무사히 발행했다. 이렇게 우리는 기자와 학생 사이 어딘 가에서 오늘도 내일도 달린다.

장선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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