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무브먼트 양소희 대표
"유난스러움이 세상의 표정을 바꾼다고 생각해요"
<편집자주>
편을 가르는 모습은 우리에게 일상이 됐다. 정치, 성별, 세대 등 어느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편이냐”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곤 한다. 나와 다른 시선을 마주할 때면 혈안이 돼 분노하고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혐오 포화 상태다. 이러한 포화 속에서 성숙한 공론장을 조성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유난무브먼트’의 양소희(30) 대표다. 갈등을 극복하고 비난보다 이해를 추구하는 그는 ‘단절된 사회’가 아닌 ‘소통하는 사회’를 추구한다. 양 대표가 추구하는 소통은 어떤 모습일까. 단절된 사회 속에서 다름을 이해하고 각자의 고유성을 존중하는, 그가 꿈꾸는 사회를 들여다보자.
김가현 기자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다
양 대표가 본격적으로 불평등을 경험한 순간은 청소년기였다. 전국 도시별 청소년 프로그램에서 고향인 제주시 대표로 선정돼 서울을 방문한 그는 수도권 출생 친구들과 대화를 하며 경험의 차이를 체감했다. 제주도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인프라를 서울에서는 일상처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불평등’의 개념이 자신의 삶에 밀접하게 연관이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아가 새로운 세상에도 눈을 뜨는 계기로 작용했다.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활동을 수도권에 사는 친구들은 매주 대중교통을 이용해 할 수 있었어요. 그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끼는 동시에 분노도 느꼈어요. 제주도에서는 전혀 모르던 세계였기 때문이었죠. 출생지가 사람의 한계를 결정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해봤어요.”
경험의 차이를 체감한 양 대표는 문화생활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정보 공유 창구를 개설했다. 그가 선택한 곳은 블로그였다. 서울에서 만난 인연을 통해 들려오는 각종 행사 및 공모전 소식을 블로그를 통해 전달하며 비수도권 친구들은 알지 못했던 정보를 알리고자 했다.
“금전적인 목적보다는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자 블로그를 운영했어요. 이용자로부터 새로운 경험과 기회를 얻는 데 있어서 제 정보가 중요한 자료였다는 말을 들으면 동기부여가 됐죠. 제가 남겨둔 기록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동기부여가 쌓여 블로그 활동을 오랜 기간 지속할 수 있었어요.”
양 대표는 블로그에서 더 나아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그는 고향인 제주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꿈 여행 장학 사업’을 진행했다. 꿈 여행 장학 사업은 청소년에게 서울 경험을 제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업이다. 서울에서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고향을 바라보며 제주도에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고안한다.
“제주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현금성 장학 사업은 이미 많이 있었어요.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는 장학 사업은 없었죠. 그래서 여행 비용을 전액 지원해 서울에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사업 진행을 희망했어요. 제주도를 벗어나 새로운 지역을 경험하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을 질문하기 바랐죠.”
각자도생에서 변화의 공동체로
블로그 활동을 이어가던 양 대표는 개인의 발전뿐만 아니라 세상의 발전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블로그라는 온라인 공간에서 벗어나 오프라인에서 같은 뜻을 가지는 사람들끼리의 모임을 추구했다. 그와 같은 뜻을 공유하던 블로그 독자들과 함께 그는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유난무브먼트’의 첫걸음이었다.
“블로그 독자분들과 모임을 가지면서 이분들이 블로그 커뮤니티 구성원으로만 활동하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목표를 설정하고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대화 모임을 만들어보고자 블로그 가입자 100분께 초대장을 보냈어요. 그중에 40분께서 관심을 표하면서 대화 자리에 참석하셨죠.”
2024년 9월 유난무브먼트가 공식 설립됐다. 양 대표는 ‘각자도생이 우리의 시대정신일 수는 없으니까’를 유난무브먼트의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청년들을 각자도생하며 이기적인 세대로 치부하는 사회적 시선을 뒤집고자 하는 양 대표의 바람이었다.
“유난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사전적 의미는 ‘남들보다 특별한 데가 있음’이에요. 사회적 고정관념을 바꾸기 위해서는 유난스러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유난무브먼트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청년 세대를 각자도생으로 내모는 사회에 대한 반박이기도 했고요.”
유난무브먼트는 그동안 없었던 대화의 장을 만들었다. 탄핵 정국이 장기화되며 정치 갈등이 심화되자, 청년 세대를 위한 말하기 장의 필요성을 깨달은 양 대표는 ‘나라걱정부’ 프로젝트를 고안했다. 청년들이 모여 현 시국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다른 정치색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각자의 생각을 나누며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채워 나갔다.
“상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 공격하지 않고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물어보는 힘을 기르는 거죠. 뜻이 맞지 않는 상대와의 대화를 경청한다면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대화 경험을 함께 만들었다는 점이 의미 있었어요.”
양 대표는 사회적 담론으로도 눈길을 돌렸다. 그는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등 대형 참사를 반복해서 겪은 청년 세대였다.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해 반복된 사고로 또래 친구들을 잃고 무력감과 분노를 느낀 그는 서로를 위로하고 트라우마를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세월호 참사 11주기를 맞아 당시 참사를 목격한 이들이 그 기억을 갖고 10년 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다뤘다.
“사고들로 하여금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무너지거나 무력해지지 않기를 바랐어요.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메시지 전달의 필요성을 느꼈죠. 대형 참사를 접했을 때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에 관해 대화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사랑과 낙관’은 결국 돌아온다
양 대표가 유난무브먼트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낙관’이라고 말한다. 서로의 대화와 믿음으로 해나가는 일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꿈꾸는 활동이다 보니 더 나은 삶을 바라며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키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미래를 꾸려나가기 때문에 사랑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활동의 본질은 미움과 파괴보다는 사랑이라는 사실을 항상 되새기고 있죠. 낙관은 유난무브먼트의 직업 윤리와도 같아요. 더 나은 미래가 가능하다는 믿음 없이는 아무것도 출발할 수 없어요.”
또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유난무브먼트를 찾는 이유로 어떤 주제로도 재밌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모름과 다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즐겁고 편안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다는 점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 안에서 양질의 대화를 하기 위해 고민한다.
“유난무브먼트의 사훈 1번이 ‘노잼필패’에요. 무거운 주제를 다룰 때 조심성이 커지지만, 유쾌하고 재밌게 그 주제를 건드려보고자 해요. 그래서 대화를 할 때 해당 주제에 대해 잘 모르지만 재밌어 보여서 왔다는 분들도 종종 있어요. 그렇게 모임을 찾아주시는 분들께도 감사한 마음이 크죠.”
여러 대화의 장을 마련했던 양 대표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공간에서 말이다. 값진 대화를 경험한 청년들이 많아질수록 청년이 갖는 영향력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사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실패를 교정할 힘을 얻게 된다고 강조한다.
“온라인에서 하는 정치적 대화는 대화가 아닌 배설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정치 대화는 본인과 타인의 관점 차이를 이해하고 타협하는 방안이에요. 이렇게 함께 협력하고자 하는 대화를 경험한 시민이 전체 구성원의 3~40%가 된다면 청년이 기존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계속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자 하고 있어요.”
양 대표는 어떤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자 할까. 그는 성별이나 나이, 정치 등 민감한 주제를 가지고 건설적인 대화를 꿈꾼다. 나아가 현재 청년층만 국한된 모임의 참여 연령대를 높여 다양한 나이대 사람들과 공감하는 자리를 만들고자 한다.
“평소 이야기하기 힘든 주제에 대해 아예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다른 시대를 경험했던 중장년층 세대와의 교류도 고민하고 있어요. 같은 나라 국민이지만 선진국만 경험한 청년세대와 독재, 민주화 운동 등을 경험한 세대 간의 소통을 통해 서로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경험과 지혜를 교류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는 만큼 그는 민주주의의 필요성과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기술과 자본이 권력의 중심에 서면서 민주주의가 지닌 힘은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숙의와 포용의 공간을 마련해 주는 민주주의가 본질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그는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그 제도에 직접 뛰어드는 시민들을 돕는다.
“사실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포기하기 너무 좋은 사회로 가고 있어요. 똑똑한 사람 한 명이 빠르게 결정하면 되는 상황에서 왜 소수를 포용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거죠. 그럼에도 지금까지 인간이 나아갈 수 있던 건 민주주의를 통해 토론과 숙의가 활성화됐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주의는 인간에 대한 믿음 없이 지속될 수 없는 제도예요. 오류가 있더라도 인간 스스로 개선해 갈 수 있도록 믿는 수단이거든요.”
양 대표는 AI가 발전함에 따라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창작의 과정에서 필요한 고민을 AI를 통해 해결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책임과 판단의 영역까지 침범해 버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판단을 AI에게 떠넘기는 행위는 정말 위험한 신호예요. 심지어 각자 접하는 정보 환경도 다 다르죠. 공통의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적은 현대 사회에서 정보를 접하는 환경이 개별화되다 보니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어려워져요. 이러한 요소가 청년 세대가 성장하고 자리 잡는 데 방해 요인이 되고, 그 핵심이 AI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양 대표는 청년 세대가 건강하게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존중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특징과 가치를 존중받기 위해서는 타인을 먼저 존중해야 하며, 그 첫걸음이 소통이라는 전언이다.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남의 일’로 여기는 경향이 커져서 사람 사이에 단절이 이뤄진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결국 순환돼서 돌아오기 마련이에요. 타인이 마음에 안 들어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한 번 더 들어본다면 나중에 본인의 생각도 존중받을 순간이 올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