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에 올라> 마모되며 완성되는 삶의 미학 (한성대신문, 624호)

    • 입력 2026-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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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6-08-31 00:00

대학은 수많은 모서리가 부딪히는 거대한 연마기(硏磨機)와 같다.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 각기 다른 날을 세운 채 만난 우리들은, 4년이라는 시간 동안 필연적으로 서로의 삶에 생채기를 내곤 한다. 누군가는 그 과정에서 입은 상처를 ‘소모’라고 부르며 아파하지만, 졸업을 앞둔 내가 바라보는 마찰의 흔적은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서로를 깎아내며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서로를 온전히 안을 수 있는 ‘둥근 원’이 돼가는 중이다.

“우리는 서로의 모서리를 깎아내며 비로소 둥근 원이 되었다” 나는 이 문장을 보며 디자인 작업으로 수없이 다듬었던 오브제들을 떠올렸다. 날카로운 직선은 명확해 보이지만 때론 위태롭고 차갑다. 반면, 수만 번의 손길을 거쳐 부드럽게 마모된 곡선은 보는 이에게 안정감을 준다.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각자의 고집과 편견이라는 날카로운 모서리를 내세우지만, 함께 과제를 하고 밤을 지새우며 고민을 나누는 사이 뾰족함은 서서히 마모된다.

이 마모의 과정은 결코 고통스럽기만 한 손실이 아니다. 모서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유연함이 깃들고, 그 빈틈으로는 타인이 들어올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상대의 마음을 찌르는 대신 둥글게 맞물려 함께 굴러갈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대학 생활이 주는 진정한 성숙이다. 지우개가 몸을 깎아 문장을 정돈하고 연필심이 닳으며 선을 그려내듯, 우리도 스스로의 일부를 내어줌으로써 더 가치 있는 존재로 변모한다.

곧 우리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더 거친 세상이라는 연마기 속으로 던져질 것이다. 그곳엔 지금보다 더 예기치 못한 마찰이 기다리겠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지난 시간 우리가 배운 것은 깎여나가는 아픔 뒤에 오는 부드러운 단단함이기 때문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 세웠던 날카로운 각을 조금씩 내려놓을 때, 우리는 세상을 더 깊게 포용할 수 있는 원이 된다.

마모된다는 것은 나를 잃어버리는 과정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가장 아름답게 빚어가는 정교한 작업이다. 그러니 지금 삶의 현장에서 깎여나가고 있다고 느낀다면 스스로를 다독여주자. 당신은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우리가 만든 둥근 마음들이 세상의 거친 틈새를 메우는 다정한 온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송이(서양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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