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데이터센터 건설 열풍에 제동이 걸렸다. 데이터센터는 인터넷, 생성형 AI 등에 필요한 데이터를 저장 및 처리하는 시설이다. 미국 정부는 치열하게 설립하려 했으나, 데이터센터 건설이 지연되며 대형 IT 기업들의 성장 속도가 둔화할 우려가 발생 중이다.
2008년부터 데이터센터는 지방 정부에게 지역 경제 활성화의 마중물로 기대받았다. 일자리 창출과 인구 유입을 통해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하 AI)이 주목받으면서 데이터센터는 더욱 주목받았다. 그 결과 많은 지역에서 데이터센터 유치전에 돌입하며 데이터센터 건설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2026년 8월 기준 미국에는 4,767개의 데이터센터가 있으며 앞으로 3,969개가 추가로 건립될 예정이다. 김갑성(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미국은 데이터 주권 확보를 위해 데이터센터 건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과 달리 미국 국민의 여론은 데이터센터 건립에 부정적으로 기울고 있다. 지난 5월 진행된 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71%가 거주지역에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것에 반대했다. 미국 전역 42개 주, 142곳의 도시에서 데이터센터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데이터센터 건립을 허가한 미주리주 내 페스터스 시의원 4명은 4월 선거에서 낙선하기도 했다. 황현진(한국데이터센터 에너지전환연구원) 책임은 “국회의원 입장에서 주민의 반대 의견을 쉽게 무시하기 어렵다”며 “유권자의 요구와 국가적 필요성 사이에 딜레마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지방 정부도 기존에 제공하던 지원과 규제 완화를 다시 축소하고 있다. 뉴욕주는 1년간 데이터센터의 추가 건립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시카고시도 같은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 이 외에도 애리조나주, 일리노이주 등 역시 데이터센터 유치를 위해 제공되던 인센티브를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진행 중이다. 황 책임은 “데이터센터는 지역 주민의 전기요금, 환경 오염의 부담으로 관련 규제가 다른 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센터에 대한 반감은 정치적 쟁점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번 11월 치러지는 중간선거의 주요 격전지 중 하나인 미국 오하이오주에선 민주당 후보가 데이터센터를 유치한 공화당 후보에게 데이터센터 반대를 내세우며 정치적 무기로 사용했다. 이유수(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공화당 내에선 연방정부와 지방 정부 간의 논리가 격돌 중”이라고 설명했다.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변화의 배경으로 막대한 전력·물 소비에 따른 물가 상승이 꼽힌다. 데이터센터는 가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 24시간 냉각 설비를 가동해 막대한 전력과 물을 소비한다. 이 과정에서 소비에 따른 비용이 전기·수도 요금에 반영돼 주민의 부담이 증가한다. 김 교수는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요가 늘어나면 일반 주민의 전기료 부담이 늘어나 반대 여론을 형성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생활환경 역시 소음으로 악화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냉각팬을 가동할 때 심한 소음을 동반한다. 실제로 미국 버지니아주의 데이터센터는 기차가 바로 옆을 지나는 수준인 약 105dB의 소음이 발생한다. 위스콘신주의 도시 스터티번트의 주민은 소음을 이유로 마이크로소프트에 집단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황 책임은 “사용자와의 지연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도시 가까이 데이터센터를 배치하게 된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저조한 일자리 창출 효과 역시 데이터센터 반대 여론을 키우는 요인이다. 지방 정부가 투입하는 금액과 부지에 비해 창출하는 일자리가 적어 지역 주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일례로 인디애나주에 건립된 메타의 데이터센터는 완공 후 300명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이는 한화로 약 457억 원을 투자해 일자리 하나를 창출해 낸 것과 같은 수준이다.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공방은 쉽게 식지 않을 전망이다. 중국과 AI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데이터센터 건립에 속도를 내기 때문이다. 이유수 교수는 “미국 정부의 기조는 중국과의 AI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혼란은 한국 반도체 업계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하는 반도체 제품은 데이터센터의 주요 부품으로 사용된다. 데이터센터 건립 지연은 국내 반도체 기업의 발주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이유수 교수는 “미국 내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은 한국산 반도체의 주문량 감소나 납품 연기로 이어져 단기 실적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우려 가운데 국내 기업들은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일례로 삼성중공업은 바다 위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부유식 데이터센터’의 설계 계약을 진행했다. 이는 전력, 용수, 부지 확보로 지연될 가능성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삼성과 LG는 물 소비량이 적은 액체 냉각 기술 개발에도 나섰다. 이유수 교수는 “기존의 공랭 냉각 방식을 벗어나 액체 냉각방식을 도입하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황수민 기자
